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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

해거름 그 골목엔 지금도 무그올갠이 흘러나올까?

본문

새벽종이 울리고 새 아침이 밝았고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던 그 때
내가 살던 동네는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위 노가다를 하는 이웃이 두엇,
풀빵 장사를 하는 광식이네 집.
며느리가 집을 나간 후 아들과 손녀와 살면서
남의 밭일을 하는 할매네 한 집…… 등
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인 이들이 웅숭그리고 살았다.

그 시절 내 소원은 만화책을 실컷 보는 것과
학교를 오가는 길목에 있는 설탕과자를 먹는 것이었다.
연탄불에 설탕을 녹여 약간의 소다를 첨가,
누렇게 부풀어 오른 내용물을
덴뿌라 기름칠한 철판에 팍, 쏟아부은 다음,
기름칠한 철판으로 꾹 눌러 먹던 설탕과자가,
그 설탕과자를 먹는 것이었다.

매캐한 연탄불 위의 쇠국자에서 누렇게 부풀어 오르는 설탕과자는
그토록 먹음직했고 보암직했지만
딱 그만큼 내겐 슬픔이기도 했다.
리어카에 채소를 실어다 파는 우리 어매는,
병 든 아부지 대신 살림을 꾸려가는 우리 어매한테서
십 원을 얻어내는 일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비슷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만치에서 연탄불 위의 쇠국자에서
노오랗게, 탐스럽게 부풀어 오르는 설탕과자를
이만치서 눈으로만, 눈으로만 어루만지기를 그 얼마나,
길바닥에 질펀한 노을을 질퍽질퍽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 쓸쓸하던지.
우리 집이 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골목 가득 기다란 내 그림자는 왜 그리 길던지…….

그런 날이면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나는 책가방을 발치에 놓고
후자네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그런 내 귓가엔 우리집 앞, 영우네 집 전축에서 새나온
무그 올갠 소리가 자욱하다.

아마도 춤바람 났다는 영우 아부지와
이름 모를 아줌마들이 춤을 추고 있을 거다.
영우네 엄마는 그 꼴 보기 싫다며 시내 어디로 나가버렸을 거고.
나는 가만히 가사 없이 노래만 나오는 경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아마도 라음파 악단이거나 이봉조 악단이겠지.
가다마이를 입고 넥타이를 멘 아저씨들이 손풍금을 들고 있거나
섹서폰을 입에 문 이봉조 악단이거나.
나는 눈을 감고 언젠가 영우가 보여주었던 전축판들을 떠올린다.
쿵……쿵… 저음 반주와 함께 물이 쏟아지듯 흘러나오는 무그 올갠 소리.
나는 그 경음악이 배호의 노래 파도라는 걸 알고 가만히 가사를 떠올린다.

부딪혀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 사람을 못잊어 웁니다

가사를 떠올리면 어느 날 들었던 배호 아저씨의 목소리처럼,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골목 안처럼 어둑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어른이 되면 이상해 지는 걸까?
어째서 이런 슬픈 노래에 춤을 추고 싶은 걸까?
가사가 없는 경음악이어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무그 올갠소리는
듣다보면 나는 가슴이 뻐근해지는데
영우 아부지와 아줌마들은 신이 나는 모양이다.

저물어 가는 골목 안에 자욱한 무그 올갠 소리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가슴 어디로 우수수…… 쓸쓸한 바람이 지나간다.
시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실 우리 엄마 리어카에 실린 채소들은
지금쯤 다 팔렸을까? 다 팔렸어야 하는데,
덜 팔았다면 떨이를 하느라 밤이 되어야 올 텐데.

연탄불 위의 쇠곡자에 탐스럽게 부풀어 오르던 설탕과자...
하지만 십 원만 달라고 하는 말은 오늘도 하지 말아야 한다.
어둑한 골목 가득 무그 올갠 소리……
나는 후자네 담벼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가만가만 노래를 따라부른다.
속으로만, 마음 속으로만……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 사랑을 맺을 수도 있으련만
밀리는 파도처럼 내 사랑도 부서지고 물거품만 맴을 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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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0

오브라디오브라다님의 댓글

  풍소소님이 옆구리 찌른다고 날린 글 다시 재생해 봅니다.
저 땔 떠올리면 가슴이 뻐근하긴 해도
내게 있어 참 아릅다운 추억입니다.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
La-la how the life goes on~~~~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5.02 01:21

  눈물 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역시... 가난하게 사셨군요.

저는, 태백 산맥 깊은 곳, 화전 일구던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장 가까운 옆집이, 걸어서 10분도 더 걸렸던....
마을이라고 해봐야 몇 가구 되지도 않았지만...
지금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곳입니다.

제 고향 마을은 울진 삼척 지구 무장 공비 침투 사건(1968)을 기점으로
정부의 이주 정책에 의해 결국 없어졌습니다.
우리 동네에 무장 공비가 들어왔었거든요. 크크~
지금은 수목이 우거져 가볼 수도 없습니다.
거기 어린 여동생이 누워 있는데...

그래서 저는 고향이 없습니다.
그리고 생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설탕 과자'라는 아주 '문화적인'(ㅋ) 표현을 쓰셨는데
실제로 옛날에 그 동네에서 부르던 이름이 있을 것인데요.
예를 들어, '달고나'라든가, '똥과자'라든가, 뭐 이렇게 말입니다.
'뽑기'는 '달고나' 혹은 '똥과자'를 팔아먹는 방법에 관한 명칭이고...
일곱 살 무렵부터 살았던 도시의 저희 동네에서는 '똥과자'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의 몹시 강경한 주장에 의하면,
'똥과자'와 '달고나'는 제법이 약간 다르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흐흐

그때는  부모에게 용돈을 얻어 저런 걸 사먹는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동무놈들은 평소에 열심히 공병이나 쇠붙이, 구리 전선, 기계 부품 등을 주워모아
그걸 돈으로 바꾸거나 해서 사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중 팔자가 좋은 경우는, 일찍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벌러 다니는 언니 오빠를 둔 놈들이
그들로부터 부모 몰래 용돈을 조금 얻어 그걸로 군것질을 하는 일입니다.
동네 친구의 그런 형 누나들을 보다보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기 형, 누나가
정말 영양가 없어 보일 때가 많고, 그저 돈 잡아먹는 귀신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열한 살인 제 친구가 탄식하면서 저에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더 팔자가 좋은 놈들은, 점포를 열어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수시로 몰래 돈통에 손을 넣어 거기서 '쎄빈' 돈으로 저런 걸 자주 사먹을 수 있었던 놈들입니다. ㅋ

저는 어릴 때 '똥과자'를 먹고싶다는 생각이 거의 없었습니다.
여름이면 어린이가 제일 먹고싶어 하던 '코롬방 하드'도 별로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치고는 좀 이상하게도, 본래부터,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춤바람은, 제 기억으로는, 1970년대 후반에는, 거의 전국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저때 지방 중소도시나 농촌 마을에서 춤바람이 나서 가출했던 사람들이 엄청 많았더랬습니다.
특히 아주머니들....




오브라디오브라다님의 댓글

  소소님도 ... 각별한 곳에 사셨군요.
제게 있어 울진...삼척. 이 고장 이름은
늘 무장공비란 단어가 같이 따라다니는 곳이었습니다.
무서운 느낌과 이상하게 조금은 슬픈 느낌이 나는 그런...

아, 그리고 설탕과자는 순전히 다른 분이 모를까봐 쓴 거구요...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파짜꼼' 이라 부르더군요.
또 동네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똥까자, 달고나, 국자, 8자(왠지는 짐작가시죠?) 등등...
그야말로 동네에 따라 천차만별이더군요.

좌우간 저는 '똥가자'와 함께 '쫀디기' 라는 것도
참 먹고 싶었었습니다.
어릴 때의 기아심리 탓인지 사십 대 중반을 지날 무렵
국자에 설탕 녹이고 소다 넣어서 만들어 먹은 적이 있습니다.
소원을 풀긴 푼 거죠.
연탄불과 시커멓게 그을린 국자 대신
가스레인지에 말쑥하고 반짝거리는 국자로...

꿈처럼 달콤하던 기억 속의 똥까자는...
나이에, 세월에 바래버렸는지 달짝씁쓸하더군요.
소소님의 동네가 우거진 수풀 속에 잠겨버렸듯...
제 어린 날도 그렇게 수북한 기억 저편에 묻혀버린 모양입니다.

아, 그리고 춤바람 이야기 말인데...
영우네 아부지의 춤바람 덕분에 이런저런 음악을 많이 들었습니다.
비록... 바람직하지 못한 어른들의 문화였지만
제게는 매우 중요한 자양분이 된 셈이거든요.
그 이야기는 또 나중에....

允齊님의 댓글

_mk_쫀드기는 지금도 팝니다
가끔 딸아이가 사오긴하는데 연탄불이 아닌 가스불에 구우니 맛이 없었습니다
딸아이에게 더이상 사오지 말라했습니다
저희집에는 달고나를 인터넷에서 주문해 먹어봐서 그 국자가 있습니다
아주 가끔 설탕으로 딸아이가 놀이삼아 해먹습니다
저는 어릴적에 달고나보다 소다빵을 좋아하는데 기억하는 이가 없더라구요
제조법이 기억이 잘안나 해먹어보지를 못하지만 물을 부어 끓음 소다를 마지막에 넣어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ohnglim님의 댓글

  먼저 올려주신 글도 그렇고
이 글 역시 몹시 정감이 가고 반가운 글입니다.

부디 어떤 이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어떤 이에게는 잔잔한 그리움이 될법한
오브라디 오브라다님의 감성적인 글을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ohnglim님의 댓글

  저희집에도 달고나 만드는 국자랑 철판 있어요..
신랑이 애들 만들어준다고 샀는데
어쩜 그렇게 똥처럼 만드는지..ㅋㅋ
그저 솜씨는 제가 젤 낫더라는거..ㅎㅎ

ohnglim님의 댓글

  흐~ 담벼락에 기대앉아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마침 해질녁이었지 않았을까 싶구요..ㅎ

저도 연식은 그리 안됐지만 깜장고무신 세대랍니다.ㅋㅋ

저희 형제가 자매로 넷인데 제가 그중에 막냅니다.
그런데 이 언니들이 밤중이면 어딘가로 마실을 가는데
조무래기인 셋째언니랑 저는 죽어도 안데리고 가더라 이겁니다.
할머니는 일찍 주무시지 밖은 칠흑같이 어둡지..
지붕위에서 쥐라도 돌아다닐라치면
셋째언니랑 저는 검정고무신을 제대로 신지도 못하고
두 손에 들고 동네 한가운데 있는 공터까지 맨 발로 뛰어나와
훌쩍거리며 언니들을 기다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동네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던 집 담벼락 밑에 앉아서
화면 없는 사운드만 즐기곤 했지요..ㅋㅋ

아.. 아침부터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홍똘님의 댓글

  음~ 읽으며 옛날 생각해보는데, 기억에 남는게 별로 없어서 슬퍼지고 있습니다~
뇌가 고장난건지, 추억이 없는건지... 참~

오브라디오브라다님의 댓글

  允齊 /
윤제님고 달고나를 제조해 보셨군요.
별 것 아닌 재료지만(영양적으로도 별 것 아닐 테구요)
따님에겐 멋진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네요.
ohnglim /
음... 저, 나이 아주 많진 않습니다.
풍소소님보다 아래일 겁니다.
검정고무신을 아신다면 저와 비슷하실 듯...
그리고 어찌보면 요즘 세태에선 '아름다운 추억' 보다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글인데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똘/
추억은 무슨 추억요... 눅눅한 이야기일 뿐인데요...

ohnglim님의 댓글

  아닙니다.. 저 보다는 훨~~~~씬 위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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