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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

한 때는 동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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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도록 및 포스터, 엽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지간하면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일을 해 주고 좋았 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허나 어쩌겠습니까.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닙니다.
그 덕에 요 며칠간 난감하고 지랄맞은 일들의 연속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 역시 전공이 '순수회화'입니다.
순수라는 말이 참 우습게 들리지 않으시나요?
마치 미대 내에 '불순회화'라던지 '발랑까진회화'같은 과가 있는 것 같은 느낌.
공예나 디자인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은데 참 싸가지 없는 단어입니다.
쿨럭;; 본론으로 돌아가죠.

여하튼 한때나마 몸을 담갔던 계통에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게
왜 싫으냐면 그 사람들이 대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개념이란 사람을 대하는 매너나 일처리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그림을 바라보는 관점, 시각 언어를 해석하고 생산하는 자세를 얘기하는 겁니다.

앞서 얘기했듯 '순수회화', '회화과', '서양화과'(말은 다르지만 같은 과입니다)에
재학중이거나 졸업을 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근거없는 우월의식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캔버스에 천을 동여메고 기름으로 그려낸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평면에 손으로 그려내 오려내고 붙여낸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작가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낸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이 양반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시각언어를 저렇게 일도양단 하듯 잘라내어
한 쪽은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심오한 가치가 있다는 듯 떠받들면서
다른 한 쪽은 쓰레기와 다름 없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있을만 한 정도라고 판단을 합니다.

작업이 탄탄하고 완성도가 뛰어나다면 그저 깨갱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엿보인다면 힘든 세파에 굴하지 않는 모습에 고개 숙일 수도 있습니다.

한데 그게 아닙니다.

사무실에 찾아와 대뜸 '띄워보세요' 이럽니다.
포스터, 엽서, 도록을 띄우면 이리 저리 훑어보면서 한다는 말이

"인쇄하시는 분들 보면 그림을 너무 막 다뤄요."
"이걸 그리려고 얼마나 고생들을 했는데 이렇게 작게 넣으면 어떡하나요."
"포스터 시안이 너무 디자인(?)적이라 생각치 않으세요."

마음 속으로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암송을 하며 견딥니다.
하라는 대로 해 주고 무슨 소릴 하든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공무원이나 여타 거래처 사장, 친구 녀석들이 주절거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도 '시각언어'를 공부했고 연구한다는 사람들인데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저로서는 고문이나 다름 없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이 그림을 보면 무슨 생각이 떠 오르세요? <상념 속으로>라는 제목인데
그 보다는 <추억을 넘기며>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기본적인 조형원리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고 지 휘갈기고 싶은대로 아무 물감이나 쳐 바르고서는
캔버스 엣지가 너덜너덜 땟국물이 묻어있는 걸 보고 무슨 상념이네, 추억이네...

-<개념을 찾아서>가 어떠세요. 비구상 회화는 조형으로 완성하고 조형으로 말을 해야지.
여기에다 대고 상념이니 추억이니 해 버리면 당신이 그렇게 저주해 마지 않는 디자인적 요소가 가미되어
싸구려 책표지가 될 것 같은데요.

라는 말을 내뱉으려다 참을 인자를 그려야 합니다.

그 양반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 역시 전공자인 관계로 그들의 그림을 화면에 띄우고 보면
거슬리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짜증이 밀려옵니다. 과연 이 사람들이 내가 명함을 만들 때만큼이나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걸까 싶습니다.

실물은 뭔가 좀 다를거야하고 전시장에 가보면 가관입니다. 사진이 훨 낫습니다.
쪽팔려서 제가 다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입니다. 그래도 고개를 굽신 거리며 수고하셨다고 꽃다발을 건네줍니다.
이 사람들 꽃 무지하게 좋아합니다.

여하튼 그렇게 설렁설렁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가는데 사무실에 찾아와 질펀한 개그를
펼쳐주셨던 분이 저를 부릅니다.

"저... 회화과 나오셨다면서요? 왜 말씀 안하셨어요. 전 그것도 모르고..."

-_-;;

일 하면서 어느대학 무슨 전공이다라고 광고하는 사람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비전공자 앞에서는 그렇게 하고
전공자 앞에서는 전혀 다른 포스를 보여주시겠다는 뜻인데 세상 참 힘들게 사는 듯;;

오늘도 오후 1시 미팅을 앞두고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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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2 0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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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9

윤선파호님의 댓글

  손님은 왕~~~ 나는 기생~~~~
손님이 웃으라면 웃고~~~ 울라면 울지요~~~~
이젠 경력이 붙어서 손님이 이상한 소리하면~~~
먼저~~~ 엡~~~ 고쳐서 올릴께요~~^^ 합니다.~~~
성질 내면 수입이 줄더라구요~~^^

알럽핑크님의 댓글

  ㅋㅋㅋㅋ
그림이 작게 보여야 완성도가 뛰어나 보이지 않을까요???
라고 말고싶엇던 1인중에 하나입니다..ㅋㅋㅋ

저역시 고등학교 입시미술부터 회화전공을 했던 터라 다떨어지고 간 동네학교 디자인과에서 허세를 부리며 학교를 다녔드랬죠...
알고보면 멍청한 1인 이였던,ㅋㅋㅋ

에휴 날씨도 더운데 정말 고생이 많습니다..ㅜㅜ

Bluenote님의 댓글

  네... 글을 이렇게 적어놨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러 이곳 유부방에 한풀이를 하는거죠.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합니다. -0-;;

알럽핑크님의 댓글

  그마음 알아요,,ㅋㅋㅋ

마음으로 외쳐보는 !@#$%^&*()_+ㅋㅋㅋㅋ

Bluenote님의 댓글

  사실 저도 재학시절엔 그런 우월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자인과 학생들이 교내에서 전시를 하면 재미있게 보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

알럽핑크님의 댓글

  그러면서 컴퓨터 일러 패쓰따는걸 배우면서 피눈물 흘렸습니다..
그땐 처음으로 컴을 배워서 마우스질도 시원찮을때였거든요..

ㅠㅠ

오렌지 단면을 색변화 있게(알갱이 하나 하나 색이틀리게 그라데이션) 교수의
입맛에 맞춰서 과제를 하느라 밤센적도,,,울면서 햇죠,,,ㅋㅋㅋ
그리면 1시간이면 충분한데를 외치며 말이죠~ㅋㅋㅋ

성진홍님의 댓글

  ㅎㅎ....
나름대로의 작가의식이라는 거겠지요.
뭐..보는 사람입장에서는 그림이나 좀 똑바로 그리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거지만서두.....
전 뭐 도록작업을 안하지만, 울 회사 포트폴리오 만들때마다 겪는 일이니....후우....
그래서 울회사 포트폴리오 버젼이 7이 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인쇄를 못나가고 있다능.....
주변에 디자이너 냥반들은 이 포트폴리오들 보면 출판해서 책으로 팔아라라는 얘기까지 나오는디......ㅎㅎㅎㅎ

玄牛님의 댓글

  blue//쿨럭...
비전공예 취미로 그림을 시작한 입장에서..!!

40을 훌쩍 넘기고서
그림을 시작한 입장에서 보면
대학 시절  체계적으로
회화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부러운것이 사실입니다.  ^^

Bluenote님의 댓글

  /성진홍

그렇죠. 작가의식.
이게 없으면 한달도 못 견디고 쓰러지는 일이란 건 저도 잘 알지요.

그런데 제 주변에 있는 양반들은 이상한 쪽으로만 작가의식을 찾는 것 같습니다.
아니 무슨 작가가 전시를 코 앞에 두고 편집 디자이너에게 그림 제목에 관한
조언을 구한답니까. -_-;;

미디어 란에 분명히 석판화라고 써 논 작업을 막상 전시장에서 직접 보니
여기 저기 핀트가 나가고 어색한 부분에 붓질로 땜빵을 해 놓는 만행하며;;

그러니까 이런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 같아요.
작가 = 학부모, 작품 = 자식

자식 졸업식이라고 졸업앨범을 신경써서 만들고
자신도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어 학부모들끼 하하호호 사진도 찍었는데
정작 자식새끼는 세수도 안 시키고 거적대기를 입고 있는 풍경.

Bluenote님의 댓글

  /현우

우리나라 미술대학 커리큘럼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특히나 회화과의 경우는 전혀 체계적이지 않고 자신이 직접 씨뿌리고
잡초 메며 거두어 들이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못하고 졸업하기 쉽상이죠.

대학에 다니면서 제가 얻었던 건 개중에 빠릿빠릿 그림을 그리는 동기나
선배에게서 자극을 받고 열심히 따라다닐 수 있었다는 정도인 듯 합니다.

현우님은 잘 하고 계십니다.
위에 적은 내용과는 반대의 경우에 가까운데 단기적으로는 무척 고통스럽고
답답할 수 있으나 어느 순간 확 풀리면서 레벨이 달라지게 되실겁니다.

주위에 있는 분들로부터 그 비슷한 얘기를 듣지 않으시는지요.

玄牛님의 댓글

  blue//
위안이 되는 말입니다. ㅋ
사실 요즈음 막막하기 짝이 없었거든요  ㅋ~

Bluenote님의 댓글

  설익은 대로 조언을 드리자면
그림에서 형상이라는 걸 단계적으로 지워 나가는 작업을 해 보시면 어떤지요.

사과라고 인식하는 순간 손은 사과의 테두리 부근에서 멈칫거립니다.
자기 붓질이 나오지 않게 되는데 그렇다고 아무런 형상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막막하죠.

해서 구체적인 형상을 조금씩 없애거나 크게 구애받지 않는 식으로 트레이닝
하게 되면 짧은 시간에 붓질의 밀도나 질감이 부쩍 좋아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절친하게 지냈던 선배로부터 들었던 방법인데요.

사물을 보고 그리되 자신의 그림은 보지 않고 그림을 그려보세요.
위에 적은 것처럼 형상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는
막막함 없이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답니다.

Bluenote님의 댓글

  물론 위와 같은 작업을 하면서 사실적인 구상에도 뜻이 있다면
집요하게 형태를 찾아가는 방법도 병행해야 합니다.

phoo님의 댓글

  이미 집을나설때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집에 두고 나와야 한다는 어느분의 말씀이새삼 다가오네요 ^^;;

玄牛님의 댓글

  blue//알듯 말듯하군요
작업을 해 나가면서 다시한번 더
blue님 말을 생갓해 보도록 하지요 !!

감사합니다. ^^

씨소님의 댓글

  에세이집이라도 공동으로 출판하면 '망하겠지요?' ^^

music님의 댓글

  헐.. 이글은 블놋님밖에 쓸수 없는 글이네요..
불순미술을 공부한 저희로서는 감히 하고싶어도 할수 없었던 이야기거든요..ㅎㅎㅎㅎㅎ
아무튼 시원합니다. ^^;;
음 제품디자인을 공부한 저는 불륜미술..?;;;

페다리님의 댓글

  사는 것이 다그래요. 그래도 시원하게 써주시니 좋네요

성진홍님의 댓글

  /music님
제품디자인이면.....
3D 미술 아니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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