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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

세 가지가 큰 사나이

2011.03.03 01:54 719 12 0 0

본문

- 황기호를 추억하며-


저에게 황기호는 두 달 고참이었습니다.
65년생이라 저보다 몇 살 어렸지만 입대는 빨랐습니다.
입대할 때 동기들은 65년생이 가장 많았고 64년생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제가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그는 내무반 바닥 청소 담당이었고 저와 같은 분대였는데
처음부터 저를 굉장히 잘 대해 주었습니다.
같이 살다보니 금방 알게 되었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무척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제게 잘 대해 준 것이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서부 경남 출신이었고 중졸이었으며 산골에서 밭농사를 짓다가 자원 입대했습니다.
원래 그 연배의 병력 자원이 워낙 풍부했던데다 학력이 중졸이라
방위로 복무할 가능성이 많았지만 그는 애써 현역을 자원했습니다.
그는 군 복무를 통해 세상 구경을 좀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평생 첩첩산중 시골에서 살아가야 할텐데 이때가 아니면 언제 세상에 나가보나 했답니다.
서부 경남 지역에 그렇게 심심산골이 있는 줄은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합천군이나 산청군에 속한 몇몇 시골 말입니다.

황기호는 소대 배치를 받자마자 특기할 만한 신체적 특징 때문에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키가 168cm 정도였고 마른 체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뚱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세대에서는 평균에 거의 근접한 키였고 몸무게였습니다.
적어도 '신체 제원'(ㅋ)상으로는 아주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그의 특이한 외관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세 가지의 두드러진 신체적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뭐… 장애나 기형이 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그랬다면 입대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우선 그는 머리통이 몹시 컸습니다.
정면에서 봐도 엄청 크고 옆에서 보면 더욱 컸습니다.
당시는 방탄 헬멧의 보급이 충분치 않을 때라 소대원 대부분이 기존 철모를 사용했습니다.
철모 속에 플라스틱으로 된 '화이바'를 겹쳐 쓰는 형태 말입니다.
그런데 황기호는 화이바 속에 있는 조절 끈을 웬만큼 느슨하게 조절해도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머리통이 컸습니다.
그래서 화이바 조절끈들을 완전히 벌려놓고 간신히 철모를 쓰고 다녔습니다.
철모를 쓰고 있을 때면 그는 늘 크고작은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게다가 그는 발도 굉장히 큰 편이었습니다.
제가 사회에 있을 때 키 181cm, 발 크기가 275mm였는데 군에서는 11문 5짜리 전투화를 신었습니다.
그는 11문 7짜리 한 켤레와 12문짜리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신교대에서 최초로 전투화를 보급받았을 때 12문짜리가 워낙 귀하다보니
할 수 없이 한 켤레는 11문 7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11문 7짜리를 신으면 한두 시간 후부터 발이 조이고 아프기 때문에 휴가갈 때만 잠깐 신고,
평소에는 다 낡아빠진 12문짜리를 애지중지하며 신고 다녔습니다.
특히 훈련할 때는 반드시 12문짜리를 신었습니다.
그는 일상처럼 중대 보급계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12문짜리 전투화를 제발 좀 구해달라고 늘 하소연하곤 했습니다.
작은 키에 비하자면 발이 굉장히 큰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특이한 팔자 걸음을 걸었는데 그가 철모를 쓰고 오른쪽 어깨에 소총을 매고 왼쪽 팔을 휘저으면서
특유의 기이한 팔자걸음을 할 때면 그걸 보고 뒤로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해학적이었습니다.
꽉 끼는 작은 철모를 쓰고 총을 맨 채 팔자로 걷는 '도달드 닥'이라…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신체적 특징은… 그의 '양물'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 그와 함께 목욕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그의 엄청난 물건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포스에
입을 딱 벌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진짜로… 허벌나게 컸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거의 다리 하나가 더 있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20대 청년들이 발기한 상태였을 때보다 훨씬 컸습니다.
형태도 보통 사람과는 좀 달랐습니다.
그 형상을 뭐라 형용하기가 좀 어렵습니다만, 다소 무리해서 표현해보자면,
마치 큰 '개불'이 한 마리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ㅋ

그는 논산 군번이 아니고 의정부 군번이자 사단 신교대 출신인데,
그의 거대한 물건은 신교대 시절부터 이미 사단 내에 소문이 자자했다고 그의 동기들이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체 목욕을 시키던 조교들을 통해 교관들에게 알려졌고
교관들을 통해 신교대의 간부들에게도 아주 널리 알려졌으며
다른 외관상의 특징과 아울러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 소대원들이 그 말을 실감한 것이, 당시 우리 대대장이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연병장에서 전 대대병력이 집결한 채 대대장이 사열대 위에서 연설할 때나,
외부 훈련 중 행군하면서 대대장 짚차가 우리 중대 대열을 지나갈 때에도,
대대장은 늘 우리 쪽을 향해 '황기호! 요즘도 물건은 이상없지?' 하면서 지나가곤 했습니다.
이러니… 다른 간부들은 물론 신임 대대장도 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해 초봄에 우리 연대는 1년 간의 방책선 경계 근무에 투입되었고
우리 소대는 2개의 주간 초소, 5개의 야간 초소, 4개의 허수아비 초소 및 한 개의 분침호로 이루어진
대략 1.4km 정도의 경계 정면을 할당받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별도의 단독 소대 막사와 취사장, 탄약고 및 '제논 탐조등' 탑재 차량 및 격납고도 관리했습니다.


일상이 워낙 단조롭다보니 그땐 시간이 굉장히 더디게 흐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더디지만 시간은 흘러갔고…
방책선 경계 근무에 투입된지 여덟달 정도가 지났을 초겨울 무렵이었습니다.
누구나 겪듯이 그렇게 최전방 보병 경계 병력으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날 후반야!
우리 소대에서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때 전반야 근무를 마치고 소대로 돌아와 있었는데,
그날따라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가 상황실로 들어갔습니다.
평소 꽤 친했던 소대 상황병 최병장이 타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때론 최병장 대신 상황 근무도 하면서 이 초소 저 초소에 연결해서 초소 근무자들과 농담도 하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후반야 근무가 시작된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02시 30분 경이었습니다.

갑자기 '꽈광'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습니다.

소대 막사가 통째로 살짝 위로 들려 올려졌다가 가라앉는다고 느낄 정도로 큰 소리였습니다.
이전에 '전장 실상 체험 훈련'을 할 때, 105mm나 155mm 포탄이
우리가 들어가 있던 토치카 근처에 바로 떨어지는 소리도 여러 차례 들어봤고
M15 대전차 지뢰 터지는 소리도 들어봤지만 그날 밤처럼 큰 폭발 소리는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막 잠이 들었던 전반야 근무자들이 혼비백산해서 전부 뛰쳐 일어나 우왕좌왕하던 차에
전반야 근무 지휘자였던 소대 선임하사가 자기 방에서 뛰어나와 내무반에 대고 큰 소리로
전 소대원을 기상시키면서 복장 갖춰 빨리 탄약고로 집결하라며 다급하게 외쳐댔습니다.

저도 상황실을 나와 탄띠 차고 철모 쓰고 개인 화기 들고 탄약고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마침 저를 본 선임하사가 말하길,
"너는 탄약 수령 후 후임병 하나를 데리고 소대 주둔지 경계 임무를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분대에 막 전입 온 초짜 이병 녀석을 하나 뽑아서
그와 함께 소대 막사 주변과 '제논' 진지 주변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다른 소대원들은 탄약과 수류탄, 기타 장비를 수령하자마자 선임하사의 인솔 하에
좁고 비탈진 투입로를 따라 방책선 쪽으로 나는 듯 달려 내려갔습니다.

저는 소대 막사 주변을 잠시 어슬렁거리다 상황이 궁금해져서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가 상황실로 들어서면서
상황병 최병장에게 방책선 근무자 쪽에서 상황 보고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물었습니다.
최병장이 말하길, 초소 근무자들로부터 폭음 청음 사실에 대한 보고는 빗발치고 있지만
현장을 제대로 목격하고 보고한 내용은 아직 없다고 했습니다.
북쪽의 인민경비대 방책선 경계등이 일제히 켜졌다는 보고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후반야 순찰 근무를 하던 소대장도 너무 놀라서 소대 섹터를 좌우로 뛰어다니면서
초소 근무자들을 챙기고 전방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중대 일직 사관으로부터도 사태 파악해서 신속하게 보고하라는 지시가 이미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속히 중대 쪽으로 보고는 해야겠는데 뭐… 파악된 사실은 전혀 없고…
최병장도 얼굴이 시퍼렇게 굳어서 그저 망연자실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둘이서 넋놓고 앉아 있던 중, 문득 나직한 목소리가 상황실 폰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소대 섹터 맨 동쪽, 그러니까 옆 소대 섹터에 속한 초소이지만,
교차 근무 방침 때문에 우리 소대가 경계 임무를 맡고 있던  X25 초소의 근무자가
상황실로 연락을 해온 것이었습니다.

두 명의 근무자 중에서 후임이었던 신일병이었는데 그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하길,
"저… 에… 그… 저희 초소에 있는 크레모아가 격발되었습니다.
그래서 초소 전방에 설치되어 있던 크레모어가 전부 터져 버렸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신일병을 다그쳐 그 자세한 정황을 물었더니,
그가 조심스럽게 말하길, "황기호 상병님이 만지다가 그만…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진상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초소 선임 근무자였던 황기호가 격발기를 만지작거리면서 장난을 하던 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격발기를 눌러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초소는 남에서 북으로 작은 계곡이 열려 있고 물이 흐르는 '취약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취약지역'은 옛날에 인민군 특수 부대가 그리로 침투한 적이 있는 곳입니다.)
워낙 시계가 불량하고 침투에 용이한 지역이다보니
적 침투 예상 경로를 따라 총 다섯 발의 크레모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기폭을 위한 연결선이 후방으로 초소까지 길게 지중 매설되어 초소에 그 격발기가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초소와는 달리 다섯 발의 크레모아가 한 번에 동시에 격발되도록 고안된
육각형 모양의 격발기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대략… '팔주령'과 비슷한 형상인 격발기였습니다.

속칭 '크레모아'는 'M18 클레이모어 (지향성) 대인지뢰'가 정확한 명칭에 가깝습니다.
직접 만져보고 설치 조작을 해보지 않은 분들께는 설명하기가 좀 난감합니다만,
또 워낙 오래되어서 정확한 기억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간략한 설명을 추가해 보겠습니다.

크레모아는 일단 그 외관이 기왓장 비슷하게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M14 폭풍지뢰(소위 '발목 지뢰'), M16 대인지뢰, M15 대전차 지뢰 등과는 달리
땅 속에 묻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한 지점에 약간의 둔덕을 만들고 거기에 기대거나 세워 설치합니다.
당시로선 강력한 신형 폭약인 컴포지션-4가 사용되었다고 들었고 대략 칠백여 개의 파편이 들어있는데다
지향되어 있는 전방은 물론이고 후방으로도 상당한 후폭풍이 있기 때문에
설치와 관리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지뢰라고 했습니다.
크레모아 설치 작업을 해보신 분들이야 뭐… 이 내용을 잘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물론 크레모아는 안전 사고의 위험성이 아주 크기 때문에
실수에 의한 격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격발기 중간에 안전 고리가 장치되어 있고
일선 부대에서는 추가로 나무 토막을 깎아 격발기 틈에 끼워넣어
이중 삼중으로 격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해놓는 것이 당시의 통상적인 관리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날 결국 사고가 나고 만 것이었습니다.

X25 초소로부터 보고를 듣자마자 상황병(최병장)은 신속하게 소대장에게 보고했고
소대장은 지금 바로 X25 초소로 이동하겠노라고 말하면서
이 내용 그대로 중대 상황실에 빨리 보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최병장은 중대 상황실에 간단한 초기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6하 원칙 중에서 한 가지 사항은 (의도적으로) 빼먹은채…

한편, 옆에서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저는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둘러 X25 초소를 다시 호출했더니 신일병이 받길래,
속히 황기호 상병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황기호 상병이 인터폰에 대고 말했습니다. "… 나다… 내가 그랬다…"
뒤이어 제가 말했습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없어…멀쩡해..."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습니다.

제가 다시 서둘러 말했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소대장이 그리 갈 것이고 곧 중대장도 그리 갈 겁니다.
그들이 와서 상황을 추궁하면 반드시 이렇게 얘기해야 합니다.
'전방을 주시하던 중 이상한 움직임이 보였는데 그게 사람인지 짐승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두 번 움직이다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슬쩍 일렁거리다가 한 일이분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그러다가 또 슬쩍 움직이고…
아무리 봐도 수상쩍어서 한참을 계속 살폈지만 도저히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그냥 즉각조치 준비를 하고 계속 주시하고 있던 중
너무 긴장했는지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서 격발기를 눌러버렸다' 이렇게 말입니다.
흔들림없이 눈에 힘을 주고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설령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과실 여부를 강하게 추궁해도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꼭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 알았다. 내 그리 할께… 고맙다."
제가 다시 신일병을 호출했습니다.
"지금 내가 황상병님께 말하는 걸 들었지?
너도 입을 정확히 맞춰야 한다!
만약에 실수가 있으면 나중에 나한테 뒈진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꼭 그리 하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지금 소대장이 X21 초소를 통과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으니
앞으로 3분 후면 도착할거다. 잘 해라!
그럼 이만 들어가라. 수고해라"

그리고 나서 저는 상황실을 나와 소대 막사 바깥문 바로 옆에서 눈 부릅뜨고 근무서고 있던
이등병 녀석에게 상황실에서 들은 얘기를 간추려 해주었습니다.
그는 잔뜩 쫄아 있다가 그 얘기를 듣고 갑자기 맥이 풀리는지
총을 벽에 기대놓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담배를 꺼내 물면서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방책선으로 막 자대 배치를 받았던 신병이다보니 뭐…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이 쉐키가... 하늘같은 고참 앞에서 허락도 받지 않고 담배를 꺼내 물다니… ㅋㅋ
속으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 내색 없이 그가 진정되길 기다렸습니다.

한 이십여 분 정도 흘렀을까... 멀리 투입로 쪽에서 병력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급하게 비상 투입을 했던 선임하사가 인솔하는 병력이었습니다.
아주 멀리서도 투덜거리는 소리가 밤하늘을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황기호 때문에 날 다 샜다는 둥, X25 초소 근무자 둘 다 영창가게 생겼다는 둥,
황기호는 그렇다쳐도 신XX는 뭔 날벼락이나는 둥, ...

그들은 놀라운 속도로 탄약을 반납하고 바람처럼 내무반으로 달려들어가 다시 취침에 들었습니다.
저는 X25 초소 근무자에 대한 처분이 궁금해서 복장을 풀고나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황실로 들어가 방책선에서 들어오는 추가 상황 보고를 예의 주시하면서 듣고 있었습니다.
소대장은 이미 X25 초소에 도착했고 사태 파악 후 대기하던 중, 곧바로 중대장이 달려왔고
초소 근무자들에게 강도높은 추궁과 질책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대대장이 소대 상황실로 직접 연락을 해왔습니다.

상황 보고는 이미 충분히 받았을텐데 뭐가 문제라고 정식 계통도 밟지 않고
이리 급하게 일개 소대 상황실로 직접 연락할 일이 있단 말인가?
최병장과 저는 이를 굉장히 이상하고도 심각한 일로 여기면서
대대장의 호출에 응대하던 중, 대대장이 대뜸 말하길,
"X25 초소 근무자는 지금도 그 초소에 있나?"
최병장이 보고하길, "아닙니다. 지금은 밀조가 되어 이동 중입니다."
대대장이 말하길, "지금 이동하는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초소에 들어가 내 호출을 대기하라고 해!"
최병장이 말하길, "예! 알겠습니다!"하고 나서
즉시 전 소대 초소 근무자들을 동시에 통신선상에 불러낸 다음,
이동하는 밀조를 보면 빨리 초소로 붙잡아들여 대대장 호출에 대비하라고 전달했습니다.

한 이삼 분 정도 지났을 때, X19 초소에서 황기호 상병과 신일병이 대기 중이라는 연락이 왔고,
최병장은 즉시 대대 상황실로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직 사령도 거치지 않고,  대대장 목소리가 바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황기호를 바꿔봐!"
상황병(최병장)이 X19 초소를 연결해 주자마자 대대장이 대뜸 말하길,
"황기호! 네 이놈!"
그러자 황기호가 의외로 쾌활한 목소리로 "예! 상병 황기호!" 하니까,
대대장이 말하길, "너 이번에 사고 한 번 오지게 쳤구나~"
황기호가 씩씩하게 답하길, "죄송합니다!"
대대장이 다시 말하길, "이게 다 니가 너무 근무를 열심히 서다보니 일어난 일 아니냐!
상황은 보고를 통해 들었다! 니가 제일 많이 놀랐겠더라.
즉각조치 한 번 화끈하게 했다고 생각하고 털어버려라!"
그러자 황기호가 (버르장머리 없이) 약간 키득거리면서 말하길, "니예! 알겠습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말하길,
"조만간 저희 소대에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 대대장님 뵌지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대대장이 껄껄 웃으면서 말하길, "그래! 내가 이임하기 전에 한 번 갈게. 그럼 수고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상황병은 황기호가 입창 조치내지는 최소한 군기교육대라도 입소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 때문에
꽤 불안해 하던 중 대대장과 황기호의 대화를 듣고 한시름 놓게 되었습니다.
상황병은 대대장과 황기호의 대화 내용도 곧바로 소대장과 중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들도 역시 안심이 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중대장은 (황기호의 과실에 의한 사고라는)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나중에 소대장에게 말하길, 그를 부적격자로 판정해서 후방으로 전출보낼까하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건 당시에는 그래도 자기 부하이다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라…
결국 중대장도 별 조치 없이 이 사건을 덮고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크레모아가 격발된 지점 바로 뒤에 있는 방책선 통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중 철책선 및 그 상단부의 철조망과 그 안팎의 흔적지,
크레모아 설치 지점 및 그 전방 지역을 정찰하면서 피해 정도를 파악하고 난 다음,
재차 크레모아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또 흔적지 복원작업을 하고
추가로 사계 청소까지 새삼스럽게 하고 나온 옆 소대 놈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특이 사항은 없는데 다만, 방책선의 둥근 철제 기둥에 구멍이 여러 개 생겼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주간 근무를 하면서 저도 그 지점에 일부러 찾아가서 철제 기둥의 구멍을 확인했습니다.
후폭풍에 의한 손상이 저 정도라니… 거리도 상당한데…
역시 크레모아가 무시무시한 건 확실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황기호의 크레모아 오발 사고는 생각보다 굉장히 조용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훗날 황기호는 이 유명한 사고에 대해 묻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목에 힘을 주고 한결같이 주장하기를,
정석대로 즉각조치를 하다 일어난 일일 뿐이지
자기가 쓸데없이 장난하다가 실수로 격발한 것이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가 실수로 격발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투가 워낙 어리숙하다보니 거짓말하는 것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황기호가 '죄질(ㅋ)'에 비추어 별다른 처벌이나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그 사고가 황기호에 의해 저질러졌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매우 지배적이었다는 점입니다.
만약 다른 놈이 그랬다면 틀림없이 사단 영창밥을 먹었으리라는 우리 부대 장사병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평소 부대 간부들이 황기호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또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매우 선량한 사람이며 남다른 친근감을 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간부들도 그를 견책하지 않고 그냥 덮었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결국 우리 부대의 지휘관, 간부 대부분이, 600여 명의 우리 대대 사병 중에서도,  
유독 황기호라는 인물을 평소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그들이 왜 황기호를 잘 알고 있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그건 바로 그가 '자지가 몹시 큰 유명한 병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몹시 큰 황기호'는 이런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군복무를 하면서 자칫 오점을 남길 수도 있었던 일에서 비켜나와 무사히 전역할 수 있었습니다.

'자지가 몹시 크면 영창도 비켜간다!'

이상, 이십 수년 전에 있었던 '큰 사나이 황기호'에 관한 일화였습니다.

참고로…
이 내용은 인물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실임을 강력하게 보증하는 바입니다. 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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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2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3.03 02:15

  전역 후 그 사람을 다시 만난 적이 있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3.03 02:20

  내가 전역한 후 10여 년쯤 지났을 때,
그를 한 번 찾아볼까 해서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소.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다보니 그가 새삼 그립고 그렇소.

允齊님의 댓글

  출근길 에세이를 한편 읽은 느낌이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읽다보니 장편을 읽은것 같습니다

쎈자님의 필력은 늘 대단한것 같습니다.

모모님의 댓글

  길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그새 레벨6이되시믄 만년6레벨인 저는 어쩌라구요....^^

홍똘님의 댓글

  오지게 짜릿한 군생활이었군요~ 흐흐. 전 UDT 라서 저런 상황은 상상불가~ ㅋ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59.♡.215.78 2011.03.03 11:28

  수필집 하나 읽는거보다 낫네! ㅋㅋㅋㅋ


신체적으로 우월(?)하면 그 운명도 달리하는 건가요?
세가지 다 충족되는...너무나도 비슷한 형질의 소유자가 있습니다.
제 친구놈들 중 한명입지요. ㅎ

참고로…

세가지 중 두가지는 안부럽습네다.
유부남 님들! 다들 그러시죠? 흐;;

ohnglim님의 댓글

  아범님 머리 크고 싶으시군요..ㅋㅋ

그나저나 그분 실명이 뭘까요...급 궁금합네당~ 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59.♡.215.78 2011.03.03 13:29

  머리는 소싯적부터 컷슴.  -,.-
더 캐지 마삼.
남사스럽게시리… 

실명도 궁금하지만 필명도 기가 막힙네다. 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3.03 16:17

  모모님!
앞으로 최선을 다해 레벨 6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레벨 6의 딱지 컬러가 제일 좋습니다.

제가 아무리 전방 보병 사단에 근무했다 하더라도
해군 특수전 여단에서 복무한 분들만 하겠습니까.
그런데 UDT/SEAL은 도대체 정원이 몇 명이길래...
거기 나왔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드물더란 말입니다.
제가 알기론 주로 바닷가에서 살던 분들이 지원해서 가던데,
내륙 출신인 동네 선배 하나가 거길 갔다고 해서 신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머리 큰 사람이 흥하는 세상이 빨리 와야 할텐데…
뱀대가리들은 물러가고 대갈장군들이 기를 펴고 사는 세상을 소망합니다!

황기호의 실제 이름은 가명에서 그리 멀지 않습네다~ ㅋ

황기호는 위에서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신체 특징 외에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목소리가 정말 특이했습니다.
그와 비슷한 목소리는 주변에서, 특히 젊은 사람 중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꼽아보자면,
7,80년대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가르쳤고 한국 근대 사회 사상과 독립운동사를 전공했으며
가끔 방송 매체에도 출연해서 주로 근대사와 친일 문제에 관한 자문과 토론을 하곤 했던
신용하(愼鏞廈) 선생입니다.
혹시 이분을 알고 계신 분들은 황기호의 목소리가 바로 이분의 음성과 흡사하다고 여기시면 되겠습니다.
보통의 20대 초반 젊은이가 갖기 힘든 특이한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신용하 선생은 요즘 뭐하고 계시나….

홍똘님의 댓글

  제가 다녔던 UDT 는 '우리 동네 특공대'였다는~
신용하 선생이 우리 동네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그분의 학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놔서~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3.03 16:32

  뭐시라!
홍똘님이 바로 그 유명한 방바리 출신이란 말입니까!
사실 나도 눈이 아주 조금만 더 나빴으면 평소 선망하던 동방위가 될 뻔 했는데 말입니다.

신용하 선생은 저희 대학 초년 시절에 이곳저곳에서 학술제를 할 때,
강연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당시 근대사 분야에서 유명했던 사람들이 천관우, 신용하, 안병직(ㅋ), ... 등이었습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3.03 16:38

  그리고 기억이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이화여대에서 가르쳤던 진덕규 선생, 국민대에서 가르쳤던 조동걸 선생,
친일 연구로 유명한 임종국 선생, .... 그리고 몇몇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 지나다보니 이젠 가물가물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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