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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

서른 넷에 돌이켜 보는 연애 실패담 2

본문

4. 내 나이 스물 여섯살...

조금은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사랑한다면 국경도 초월한다는 말이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태어나서 손에 물 한번 묻혀 본 적 없는 아이...
삼겹살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
학교 화장실과 집 화장실을 제외하곤 가 본적이 없다는 아이...
스스로를 부르조아의 딸이라 부르는 아이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보험을 들기에는 너무 이른 거 아니니?'

서른 다섯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15평이 채 안되는 조그마한 화실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선배가 제 연애 소식을 듣고
던진 첫마디였습니다.

꽤재재한 자취방을 정리하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제법 뽀대나는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녀의 개인 작업실인 셈인데...
뭐... 뭐라 불리든 별 상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4개월 여간의 동거생활에 들어갔습니다.

제 개인의 흔적을 남겨서는 안되며 전화를 받아서도 안되는 이상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간혹 오밤중에 비상이 걸리면 그녀가 건네준 만원짜리 세장을
호주머니에 꾸깃 꾸깃 넣어두고 근처 여관을 서성거려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묘하고도 이상한 동거였습니다.

그 수많은 밤을 보내면서도 그저 알몸이 되어 질펀하게 서로의 몸을 탐할 뿐 정작
그녀와 나는 한 번도 살을 섞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거부를 한 것도 아니었고...
제가 하기 싫었습니다.

훗날... 부잣집 따님을 놓친 바보 소리와 함께 그래서 깨진거라 비아냥 거리는 친구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때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하루를 불안하게 이어가던 동거생활을 접고나자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습니다.


5. 내 나이 스물 아홉살...

회사를 다닐 때였습니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제법 귀여운 아이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 씀씀이가 착하고 매사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제법 진도가 빨리 나가 한 때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습니다.
반 년 가까이 만나면서 유독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만나주지 않는 겁니다.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인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러겠지 하고 별반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다...'란 말로 시작해 구구절절 그녀의 사랑고백으로 채워진
메일을 보고 저는 머리 속이 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날은 수요일이었고 그녀는 '실수로' 저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대학생이었던 그녀가 '수요일'과 '토요일'에 만나는 '애인'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된
저는 도대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삼.각.관.계.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녀 역시 버튼을 잘못 누른 걸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그 놈이냐... 나냐...'

제 정신으로는 뱉기 힘들어... 소주 한병을 들이키고 나서야 겨우 물었습니다.
일말의 자존심마저 남아 있지 않았었는데...

'그 애에겐 제가 필요해요... 미안해요...'

죽어도 다시는 연애를 하지 않겠다 맹세했습니다.


6. 내 나이 서른살...

맹세란 깨뜨리기 위해 하는 것... -_-;;

지금 제 곁에서 매일 밤 품에 쏙 들어와 잠을 청하는 사람과 만났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다시는 연애를 하지 않겠다'란 얼토당토 않은 맹세 따위는
더 이상 저를 붙들을 수 없었습니다. -_-;;

그녀와는 같이 당구도 칠 수 있었고 고스톱, 게임... 많은 걸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능력이나 재력으로 상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를 믿는 일...

알고 보니 이렇게 쉬운 일인데...

왜 그렇게 에둘러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

'독수공방'에 올라 있는 글을 읽다가...
글을 남겨볼까 하고 텍스트 에디터로 끄적여 놓고는...

너무 '잔인한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부클럽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유부클럽의 '일기장'화가 되는 것 같아 자못 부담스럽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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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2 01: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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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이형규]빨간머그님의 댓글

  으음... 잔인하시군요. 마지막에 염장 날려주시네요 ^^;; 결국 연애 성공담이군요. 흘흘

잿빛하늘님의 댓글

  '다시는 연애를 하지 않겠다'라는 그 맹세... 저도 했었고
결국 그 맹세를 깨는데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평생 서로를 아껴주고, 위로하며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지키는 중입니다.

재미솔솔*promotion*님의 댓글

  잼나게 사세요.. 다른 여자 다른남자 처다보지 마시고.. 제가 젤 싫어하는것이 그것입니다.. 여하튼.. 불륜하는넘연들은 다 죽여야 합니다..

박성준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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