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넷에 돌이켜 보는 연애 실패담 1
본문
옆에 앉은 짝궁을 좋아했습니다. 교실문을 열었을 때 새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애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좋아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내 나이 열 두살...
그 나이 또래 남자애와 여자애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놀이문화가 극히
드뭅니다. 여자애가 말뚝박기나 딱지치기, 자치기를 하는 걸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남자애가 고무줄 놀이나 소꿉장난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간혹 소꿉장난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애들에게
들켰다가는 집중 놀림감이 되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됩니다 -_-;)
결국 고무줄을 끊거나 '아이스께끼~'를 하는 것으로 관심의 표현을
해 봅니다만 아시다시피 서로 웬수되기 딱 좋은 일이죠.
2. 내 나이 열 여덟살...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사는 나이입니다.
길 거리를 오가는 또래 여자애들부터 도서관에 서성거리는 대학생 누나들까지
머리 길고 가슴 볼록하고 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든 이들로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필'을 받습니다. -_-;
제법 TV나 야시시한 연애소설을 통해 '이성의 관심사'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착각하지만 대부분은 혼자 가슴앓이를 하기
마련입니다.
더러는 용감하게 대쉬를 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잘되는 경우는 드물게 마련이죠.
3. 내 나이 열 아홉살...
방 한켠을 빼곡히 채운 오래된 책 중에 절대 꺼내보고 싶지 않게 생긴 시리즈 물이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책인데... 대략 속아서 구입한 전질류입니다.
10권짜리 두꺼운 양장본 중 한권 속에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지금 보면 평범하기 그지 없는 여고생의 독사진...
내 모든 걸 새까맣게 태우며 사랑했던 여자아이의 사진입니다.
혹 기억하십니까. 1980년대 말 참고서 첫 페이지를 걷으면 인사말에
전국 '250만 수험생 여러분'이라는 말이 가슴을 짖누르던 그 시절...
(지금은 5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입시에 대한 공포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 줄 나긋나긋한 상대가
필요로 했던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성에게서 '육체가 주는 욕정'이 아닌
서로에 대한 배려와 가슴 따듯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5.7대 1이라는 초유의 대학입시 관문을 뚫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 앞에서
모든 것을 무기한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던 열 아홉살의 굴레앞에 첫사랑의 감정이란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입시의 관문을 마치고 나자 우리는 그전처럼 서로에게 해 줄 것이 없었습니다.
스무살의 호기심에 조금씩 서로의 육체를 탐할 뿐... 가족이기주의와 학벌이기주의에
여기 저기 생채기가 생긴 가슴으로는 더 이상 서로를 보듬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받은 상처로 오래도록 사랑이란 감정과는 담을 쌓고 지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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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재미솔솔*promotion*님의 댓글
잼나게 사시네요..부럽습니다..ㅋㅋㅋㅋㅋ
한영기님의 댓글
저랑 같은 연배시군요.. 반갑습니다...
켄님의 댓글
과거가 없는 제게는 부러운 일이네요.
박성준님의 댓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