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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

'조용호'를 추억함.

2011.08.11 13:44 990 31 0 0

본문

나른하고 심심한 오후입니다.


MBC의 지상파 채널을 통해서 방영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MBC 드라마넷이나 every1, LIFE 등을 통해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중에 '히스토리 후'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 우리 사회의 의미 있는 사회 현상이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충격적인 사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뚜렷한 흔적을 남겨놓은 인물의 활동을 되짚어보면서
그 현재적 의미를 차분하게 추적해 들어가는 괜찮은 프로그램입니다.

며칠 전 케이블에서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조용호'에 관한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어서 관심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조용호는 바로 '김정호'의 본명입니다.

이 가수를 방송에서 처음 본 것은 1973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MBC에서 변웅전씨가 진행하던 '금주의 인기가요'인가 뭐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이름 모를 소녀'를 부르는 장면을 보았는데, 초등학생이던 제가 보기에도,
음울하고 염세적이며 무언가 깊은 한이 맺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초반에는 주로 어니언스의 노래를 만들어준 작곡가로 알려졌고
가수로 방송 무대에 데뷔한 후에는 독특한 느낌의 자작곡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순식간에 당대 일류 가수의 반열에 뛰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75년에 대마초 파동에 엮이면서 활동이 정지되었고
오랜 재야 생활 끝에 '80년 무렵 다시 음반을 취입하고 활동을 시작했으나
평생을 안고 싸워왔던 폐결핵이 악화되어 198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70년대 한국 대중 가요의 역사에서 걸출한 두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배출되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송창식이고 나머지 한 사람이 바로 김정호라고 생각합니다.
'70년대 초반, 대학가나 대도시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수용 기반을 넓혀가던 포크 음악을,
수용 기반이 넓어지는 한편 특정 부류의 음악으로 고착되어가는 면도 생겨나던 포크 음악을,
계층적, 연령적, 지역적 한계를 돌파해서 사회의 기성 세대나 농촌 중소도시의 평범한 청년들에게까지
열정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했던 핵심적인 역할을 한 가수가 바로 김정호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포크 음악의 대중적 지평을 크게 확장시킨 가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김정호가 위대한 음악가라고 생각합니다.
먹물 냄새 나는 당시 포크 가수들의 어딘지 부조화스럽고 젠 체 하는 정서로는 감히 꿈꾸기 힘든,
당대 우리 사회 대중의 문화적 감수성의 핵심을 포착해내고
그걸 대중 음악의 영역에서 제대로 구현했던 시대의 진정한 음악 예술가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당대 학원가,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일류 포크 음악'(ㅋ)과 비교해 보자면,
그러니까… 김민기, 송창식, 한대수 등의 노래 가사와 비교해 볼 때,
김정호 노래의 가사를 들여다보면서 가장 먼저 받게 되는 인상이라면,
어딘지 약간은 촌스럽고 표현이 상투적이며 심지어 꽤 조잡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만,
또 포크 음악의 특성상 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런 정서적인 면에서의 통속성이나 표현 기법 면에서의 상투성이나
뭐 이런 걸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깊숙하고 끈끈한 감정이나 초월적인 의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대의 신흥 사조인 포크 음악적인 가사 표현보다는
기존의 전통적인 대중 가요나 국악적인 감성을 많이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점이 김정호의 독특함을 구성하는 한 가지 요소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누구나 들어보면 느낄 수 있듯이,
그가 만든 노래의 구성이나 편곡, 노래를 부르는 그의 창법 자체에서도 이런 전통적인 체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언뜻 들어보면, 당시 '포크 트로트', '락 뽕' 계열의 노래를 불렀던 일부 다른 가수들처럼,
김정호의 노래에도 역시 트로트적인 감성이 녹아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또 그만큼 전통 국악 창법과 트로트 창법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아주 틀린 판단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훗날 '80년대에 이루어 놓은 그의 후반기 작품을 접하다보면
역시… 그의 음악 창작 활동에는 우리 민족 음악의 역사적 전통에 대한 목적의식적인 계승 노력이
진하게 담겨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의 외가 쪽이 국악인 집안이라는 내력도 분명히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의 노래를 찬찬히 들어보면
트로트적인 느낌보다는 어딘지 더 묵직하고 깊숙하며 유장한 맛이 있어서
국악의 '정가' 창법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얼마 전에 마봉춘 '나는 가수다'에서 조관우가 '하얀 나비'를 불렀을 때,
국악적인 창법과 감성을 담아내서 부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또 그런 의지가 반영된 노래를 실제로 부른 적이 있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이 노래 자체가 원작자이자 오리지널 곡을 불렀던 김정호의
전통 음악에 대한 이해와 태생적인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곡이었기 때문에
조관우의 노래가 더 자연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호가 세상을 떠나고 그 다음 해인 1986년에 당시 여러 명의 유명한 가수들이 함께 모여
김정호를 추모하는 앨범을 제작했는데, 거기서 김정호의 운명을 암시한 노래로 유명했던 '님'을 부른 가수가,
다른 사람도 아닌  '김현식'이었기 때문에
그도 요절할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는 가당찮은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원래 그의 노래 중에서, 들어보면 누구나 알 만한 노래가 서른 곡은 훌쩍 넘어갑니다만,
지금 유투브에서 찾아 들을 수 있는 곡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아쉽습니다.


---------------------------------------------------------------------
01. 이름 모를 소녀
02. 저 별과 달을
03. 하얀 나비
04. 사랑의 진실
05. 나그네
06. 날이 갈수록
07. 별리
08. 지난 겨울엔
09. 밤은 가고
10. 하얀 천사의 노래
11. 작은 새
12. 빗속을 둘이서
13. 외길
14. 인생
15.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
16. 님
17. 사의 찬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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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1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03

  김정호의 노래 중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뭡니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04

  나는 옛날부터 '나그네'와 '빗속을 둘이서' 이 두 곡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하얀 나비'는 워낙 유명한 노래라서 특별히 갈증을 느끼진 않습니다만,
'나그네'는 좀처럼 방송에서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좋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 정말 죽입니다!

'빗속을 둘이서'는 김정호 본인이 부른 것보다는 '투에이스' 버전이 더 좋습니다.

'90년대의 어느 때쯤 당시 어떤 매체에서
'70년대 가요 중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조사했는데,
'하얀 나비'가 2위로 꼽힌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얀 나비'와 '빗속을 둘이서'는 우리 나라 대중 음악사에 길이 빛나는 명곡입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11

  '하얀 나비'가 2위였다면 당시 1위는 뭐였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13

  그게...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마도... 용필이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던 거 같기도 하고...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35

  오로지 음악 얘기만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음악 다방은
실로 오랜만에 열어놓은 것인데도.
쌍화차, 미숫가루차 등 재료도 빵빵하게 준비했는데도,
손님이 통~ 없네 이거...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37

  일단 노래가 너무 칙칙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37

  그래도 그렇지.
장사가 무척 안 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38

  역시... 자영업의 일대 위기 국면임이 틀림 없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4:50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자영업의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은 나라인데
앞으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경제 활동 인구 중에서 자영업자의 비중이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내가 예전에 듣기로는, 우리 나라의 경우, 경제 활동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비중이 23~25% 정도라고 하더이다.
OECD 평균이 대략 13~14% 정도라는 통계도 본 적이 있습니다.
평균과 비교하면 우리 나라 자영업자의 비중이 대단히 높은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영업자의 천국처럼 보이는 일본조차도 아마 15% 전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지난 정권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고용 시장 쪽의 사정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신규 창업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그래도 별 수 없을 겁니다. 줄어드는 추세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겁니다.
우리 나라는 지급 급격한 자영업 구조 조정의 흐름에 휘말려들어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라는 거.

그러니... 음악다방이라고 뭐... 별 수 있겠습니까! ㅋ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5:55

  아따~ 시간 많이 걸립니다.
노래 검사가 이제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거... 손님은 여전히 없네. 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5:56

  일단 쌍화차 값을 내려볼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5:57

  매장을 복합화하는 건 어떻소?
예를 들어, 쫄면, 라면, 떡볶이를 메뉴에 추가한다던가.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6:02

  나는 그... 쫄면 먹는 사람들의 입맛을 정말 모르겠더란 말입니다.
예전에도 여기서 말한 적이 있지만, 그거 무지하게 맛 없던데... ㅋㅋ

얼마 전에 TV에서 쫄면의 기원에 대한 얘기를 하더군요.
1978년인가 그 무렵, 인천 쪽에서 냉면 면발을 뽑다가 실수로 굵은 면발이 나왔는데
그걸 그냥 삶아먹기 시작한 것이 쫄면의 기원이라 하더이다.
내 기억에도 분명히 1970년대 중반까지는 쫄면 이라는 것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추장 넣은 떡볶이도 역시 '70년대 중반인가 그 무렵, 대구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만들어 판매한 것이 처음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역시 내 기억에도 '70년대 중반까지는 저런 떡볶이가 없었던 것이 확실합니다만...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6:10

  고추장 떡볶이를 최초로 개발, 보급시킨 그 아주머니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6:10

  나도 그리 생각하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6:28

  그런데 요즘은 '쫄면'의 인기가 많이 사그러들었더군요.
저걸 파는 분식집이 옛날보다 확연히 적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도 풀무원에서 파는 '쫄면'을 마누라 때문에 몇 번 사다 삶아먹은 적이 있긴 한데... ㅋ
전체적으로 봐서 옛날 여중고생들의 열렬한 선호 음식이었던'쫄면'은 이제 사멸되는 추세로 보입니다.

그런데 1980년 이전에 청소년들이 선호하던 간식이 뭐가 있었는지 혹시 아십니까?
라면도 사실... '70년대 중반까지는 선호도가 별로였습니다.
'70년대 후반에 쇠고기맛이 나는 얼큰한 육수가 개발되면서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이지,
그 이전, 닭고기맛이 나는 간장 육수였던 시절에는 싫어하는 사람도 무척 많았습니다.

쫄면, 라면, 떡볶이가 없었던 그 시절엔 뭘 먹었을까! 크흐흐~
풍소소씨 당신은 저 시절에 뭘 먹고 살았소?

향기님의 댓글

향기 59.♡.215.78 2011.08.11 17:34

  아싸~~ 여기 쌍화차 한 잔이요~~

지금 막 시안을 쏴버렸으니 느긋하게 한 잔 하며 감상하겠습니다~ 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59.♡.215.78 2011.08.11 17:58

  제가 떡볶이를 처음 먹은게..... 

강원도에서 서울 올라온 이듬해였으니까 1979년도였을겁니다.
70년대 중반이라면 보급된지 몇 해 안지나 먹어본거네요.
그 아주머니의 떡볶이는 아직도 그 맛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첨가물이라곤 오로지 고추장과 설탕 한주걱이었는데....
어찌 그런 맛이 날 수 있는지...
그 성분에 대해 심오한 생각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ㅋㅋ

향기님의 댓글

향기 59.♡.215.78 2011.08.11 18:00

  맨날 50원어치만 사먹으며
옆에서 접시 한가득 200원어치를 먹고 있는걸 보고 많이 부러워했었는데... ㅎ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8:57

  아싸~ 손님 오셨네요~ ㅋ

그런데 50원어치라면 도대체 얼마만큼 주는 거랍니까? ㅋ

저는 중학교 시절에 시내 시장의 분식집에서 저 떡볶이를 파는 걸 처음 보았는데
웬지 처음에는 별로 사먹고 싶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 시절엔 저걸 사먹기보다는 주로 집에서 비슷하게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많습니다.

서울에서 중고교를 다닌 분들은 다 잘 아시겠지만 신당동 쪽에 즉석 떡볶이가 유명하잖습니까.
그쪽 업주들 말로는 6.25 직후부터 그런 떡볶이를 만들어 팔았는데 그게 빨간 떡볶이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더군요.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대구 쪽에서 올라온 고추장 떡볶이하고 신당동 즉석 떡볶이는 약간 제조법과 맛과 느낌이 다르단 말입니다.
이런 걸 구별해서 생각하자면, 양쪽의 말이 다 맞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 어린이들이 분식집 매대에서 즐겨 사먹던 떡볶이는
굳이 따지자면, 신당동 떡볶이보다는 고추장 떡볶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ㅋㅋ

아참!
요즘은 노점이나 휴게소나 이런 곳에서 많이 팔고 있는 어묵 꼬치도
제가 어릴 적에는 거의 보지 못하던 음식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어묵 꼬치도 그게... '70년대 후반쯤에 지방 중소도시에 급속하게 퍼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어묵은 그 훨씬 전부터 있던 것이지만,
요즘처럼 맛을 낸 국물에 어묵 꼬치를 담가놓고 파는 방법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훨씬 나중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큰 항구 도시나 대도시에서는 그 전부터 이미 저렇게 만들어 팔고 있었는지는 제가 잘 모릅니다.

1978년 무렵, 강원도 원주에 갔을 때,
이 어묵꼬치가 너무 신기해서 형더러 한 냄비 사달라고 해서 먹어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맛이 좋아서 그 뒤로도 겨울에 원주에 갈 때마다 그 집을 찾아가 몇 번을 더 먹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뒤로 삼십 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어묵 꼬치를 전혀 먹어보지 못했다는 거!
그 시절 몇 번 먹어본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흐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9:22

  이왕 먹는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풀어봅니다.

바로 '순대' 얘기입니다. ㅋ
요즘 시중의 노점에서 많이 파는 시커먼 공장 순대도 옛날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도 제 기억으론 '70년대 후반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부터 이미 있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하여튼 제 눈으로 저 공장 순대를 처음 본 것이 고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처음엔 기존에 제가 알고 있던 순대에 비해 정말 흉칙하고 맛 없게 생겨서 영~ 손이 가질 않더란 말입니다. ㅋ

옛날에는 순대가 지금보다 더 귀했습니다.
물론 강원도 북부나 경기, 서울 지역에서는 어떠했는지 잘 모르지만
제가 주로 살던 지역에서는 흔하게 접하는 음식은 전혀 아니었고
큰 시장에나 가야 순대국밥집이 겨우 두세 집 눈에 띌 뿐이었습니다.
일반 시중의 음식점으로 순대를 취급하는 곳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의 순대는 요즘 보는 공장 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근래에 흔히들 말하는 '아바이 순대'나 '병천 순대'처럼 생긴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모름지기 '순대'라고 하면 당연히 그런 모습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찹쌀 혹은 멥쌀에 파, 배추, 당근, 부추, 숙주 뭐 이런 여러 가지 채소를 다져넣은 다음
돼지 선지를 섞어 잘 씻은 돼지 곱창 안에 우겨 넣고 삶아먹는 방식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서 보니 길거리에서 파는 순대가 전혀 다르게 생겼더란 말이지요. ㅋ
물론 직전까지 살던 지방에서도 공장 순대를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심지어 그걸 몇 번에 걸쳐 먹어본 적도 물론 있었지만,
그래도 시중에서 파는 순대의 거의 전부가 공장 순대인 서울의 풍경을 접하곤 정말 놀랬더랬습니다.
'저렇게 맛없는 가짜 순대를 뭐하러 돈 주고 사먹는다냐'하면서 말입니다. 크흐흐~

그런데 요즘 팔고 있는 '진짜 순대'는 값이 더럽게 비싸더군요.
그래봐야 맛도 별로 없던데...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1 19:32

  '가짜 순대'라는 말을 듣고 생각나는 겁니다만,
옛날에 상경해서 대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내 친구놈이 기숙사에 저 공장 순대를 잔뜩 사들고 놀러왔었는데
둘러 앉아 순대를 안주 삼아 소주를 먹던 너덧의 친구 중에 한 놈이 말하길,
저 공장 순대에 쓰인 곱창은 진짜 돼지 곱창이 아니라
식용 재료로 만든 인조 비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더이다.

심지어 그 자식은 순대에 함께 딸려온 돼지 간이나 머릿고기조차
인조로 만든 것이라 강변하더이다.

우리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어느 정도 그 말에 귀가 솔깃하기도 했다오. 흐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00:00

  자정입니다.
오늘은 따로 할 얘기가 별로 없었는지 먹는 얘기만 하다가 하루를 보냈습니다. ㅋ
라면, 쫄면, 고추장 떡볶이, 순대, 어묵꼬치 얘기였습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00:01

  기왕 하는 김에 오늘은 먹는 얘기로 끝을 보자구요!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00:10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오.
일단 청소년이 되기 전인 어린이 시절, '맛나는 거' 사먹던 얘기부터 해봅시다.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 쯤부턴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친구들끼리 어울려
저런 음식을 군것질 삼아 사먹는 어린이, 청소년들을 자주 보았습니다만,
세월이 많이 흘러 그때의 어린이들도 이제 마흔 살 언저리에 올라 있겠군요.
'80년대 초반에 상경해서 서울의 어린이, 청소년들의 저런 모습을 보고 꽤 신기하게 여겼더랬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 따로 용돈을 받는 경우가 정말 드물었습니다.
한 반 친구 칠십여 명 중에서 아마 열 명도 채 되지 않았을 걸로 생각합니다.
위에 있는 어떤 댓글에서, 쫄면, 라면, 떡볶이가 없던 시절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놓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그 시절엔 저런 것이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그걸 사먹을 수 있는 어린이는 아주 드물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ㅋ

기껏해야 어쩌다 받은 십원으로 코롬방 하드(아이스크림)나 사탕, 껌이나
아니면 쫀드기나 달고나나 뭐 이런 걸 먹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그 시절('70년대 전반기)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많이 사먹었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도 찬란한 '엿'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엿을 무지하게 많이 먹었습니다.

'단것' 중에서 가장 흔한 음식이어서만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라면이든, 사탕이든, 빵이든, 껌이든 간에 반드시 돈을 갖다줘야 살 수 있었지만,
'엿'은 꼭 돈이 아니더라도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엿 바꿔먹는 방법' 중에 어린이들이 하기 쉬운 가장 흔한 방법은 공병줍기와 쇠붙이, 구리 전선 모으기였습니다. ㅋ
하교 후에 시간만 나면 친구들끼리 어울려 사방으로 저걸 주으러 다니곤 했습니다.
때론 주인 있는 물건을 훔쳐와서 '엿 바꿔먹기'도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도시의 남쪽 외곽에 살았는데
우리 동네 옆의 개울 건너편 넓은 논을 지나면 아주 큰 자동차 정비 공장이 있었습니다.
거긴 일반 승용차를 정비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주로 대형 상용차나 건설 기계를 정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때야 뭐 굴러다니는 승용차 숫자가 원체 적다보니 정비 공장에 입고된 승용차도 매우 드물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주로 그 정비 공장에서 '엿값'을 조달했습니다.
그런데 공장 쓰레기장을 뒤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같이 찾다보면 소득이 영~ 시원찮아지다보니
결국엔 어른들 눈을 피해 공장 구석에 쌓아놓은 기계 부품이나 큰 쇠붙이를 훔치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거.
그거 훔쳐다가 엿을 많이 바꿔 먹었습니다.
정말 은혜로운 정비 공장을 동네에 내려주신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몹시도 컸습니다.

그런데... 그밖에도 '엿장수'가 받아주는 물품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그중에 특이한 것이 바로 '고추씨'였습니다.
당시에는 꼭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대개 건고추를 직접 구입하거나 농사짓는 형제, 친척으로부터 얻어서 사용했는데
마른 고추를 잘라 씨를 발라낸 다음에 고추 가루로 빻기 때문에
집집마다 고추씨 모아 놓은 것이 항상 있었습니다.
이 '고추씨'를 엿장수가 받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고추씨'를 훔쳐다가 엿 바꿔먹는 놈들도 꽤 많았습니다. 크흐흐~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00:38

  하지만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 시절에는 엿을 꽤 잘 먹던 놈들도 중학생이 되면 엿을 잘 사먹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아주 안 먹는 것은 아니고...
그... 흰 가래엿이나 콩엿이나 뭐 그런 걸 잘 안 먹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때는 나이에 걸맞게 '갱엿'을 '깡다구 있게' 부숴먹는 경우가 꽤 많아집니다.
'갱엿'은 초등학생의 경우에 일부 포악한 놈들을 제외하고는 그냥 빨아먹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빨로 깨물어 부숴먹는 일은 상당히 버거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이빨이 상할 정도로 갱엿이 아주 딱딱했습니다.

원래 '갱엿'은 엿물을 다리다가 걸죽해진 것을 틀에 담아 놓으면
식어가면서 굳어져 생기는 최초의, '원시적인' (ㅋ) 형태의 엿을 말합니다.
옛날에는 이 갱엿이 굳기 전에 한 주먹씩 떼어 아주머니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손으로 늘리고 당기면서 점점 가래엿으로 만들어내는 걸 가끔 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엿장수가 전용 날을 엿에 대놓고 그걸 가위로 때려 떼어내는 엿이 바로 '갱엿'입니다.
그 무렵 엿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지금도 저는 엿이 전혀 그립지 않습니다.
나는 엿 안 먹습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00:43

  나도 엿 먹기 싫습니다!
이젠 더덕구이가 더 좋습니다!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12:18

   
 ------------------------ 날짜 구분선 ------------------------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12:20

  금요일 정오입니다.
하늘이 탁합니다.
휴가 중에 빈 집이 털린 13층엔 경찰 감식반이 들락거리고 있습니다. ㅋ
날씨도 찌는데 감식반원의 '과학수사' 조끼가 꽤 더워보이네요~

향기님의 댓글

향기 125.♡.174.103 2011.08.12 12:24

  고르지 못한 날씨에 아이들 데리고 휴가를 보내면서 고생하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현관 문을 열었는데,
그새 도둑이 들어 온통 난장판이 된 걸 발견하는 사람의 참담한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소? ㅋ

금마니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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