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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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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 만들기

하늘이 낮다. 사랑이 떠난 직후, 홀로 남은 남자가 입에 문 담배 연기색이다. 어제저녁 고단함에 함부로 벗어 바닥에 던져두었던 개털 모자를 털어 쓴다. 방바닥의 온기가 남아 따스하다. 솜털 외투를 입고 목장갑을 낀다. 오늘은 화목난로에 쓸 장작을 조금 마련해야 한다.

현관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헤치고 달려든다. 만만치 않은 추위다. 외투 자크를 턱 밑까지 올리고 계단을 내려간다. 복순이가 오늘은 개집에 들어가 있다. 평소라면 동그랗게 파놓은 땅바닥 자리에 꼬리를 틀고 반긴다. 개집을 들여다보니 개구멍에 코만 내놓고 살짝 미소를(내가 보기엔 분명히 미소다) 짓는다. 복순이는 이제 완연한 아줌마다.

마방 뒤에 쌓여 있는 마른 나무들을 살핀다. 지난봄에 베어 두었던 나무들이다. 가지를 꺾어보니 탁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난로 안에서도 비슷한 소리를 내며 타오를 것이다. 나무 둥치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전선 뭉치를 끌어 온다. 전선은 추위에 얼어 뻣뻣하다. 차가우면 딱딱하게 얼고, 따스하면 부드럽게 녹고. 사람들이 풀어가야 할 인연을 전선이라는 무생물이 더할 수 없이 간략히 설명해 준다.

전기톱을 꺼내 캡을 열고 오일을 살핀다. 흔들어 보니 오일은 충분하다. 손가락 끝으로 톱날을 긁어 본다. 아직은 날이 괜찮다. 둥근 줄로 날을 세워 볼까하다가 그대로 쓰기로 한다. 안전 버튼을 누르고 방아쇠처럼 생긴 스위치를 누르자, 굉음을 내며 톱날이 빠르게 돌아간다.

전기톱으로 가볍게 마른 나무를 누르자, 하얀 톱밥이 바짓단으로 쏟아진다. 전기톱은 딱딱한 겉껍질을 헤치고, 나무의 하얀 속살로 비집고 들어간다. 전기톱을 위 아래로 움직여 자르는 면이 둥글게 파이며 한 곳으로 집중되게 만든다. 마침내 나무는 가벼운 비명을 지르며 갈라진다. 다시 나무 둥치를 움직여 40Cm 정도 앞으로 내민다. 다음번으로 장작이 될 가지다. 나는 이 과정을 반복한다.

해가 뜨는 동안, 30분쯤 나무를 잘랐다. 어깨와 가슴에서는 김이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데 손끝과 발가락이 따갑다. 동상이 걸릴 정도로 차가운 날씨다. 이쯤 하자. 충분하다. 나는 문득 옛 사람들의 삶을 떠올린다. 아침에 일어나 30분 정도만 장작을 패면, 온 식구가 하루 종일 따스하게 지낼 수 있다. 남는 것은 장에 내다 팔아서 아내의 고무신과 아이의 참 빗을 사오곤 했겠지. 자연은 넉넉하다.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다. 욕심이 늘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다.

장작을 한 곳에 차곡차곡 쌓아 둔다. 나는 쌓인 장작들의 동그란 단면을 살핀다. 장갑을 벗고 나무가 잘린 부드러운 면을 만져본다. 나는 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좋아한다. 매끄럽게 잘린 나무의 단면은 여성의 젖가슴만큼이나 부드럽다. 장작과 여성, 이 두 가지는 모두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다. 굉장한 내면의 에너지로 세상을 밝힌다. 나는 이미 인생의 얼음 구덩이 속에서, 한 여인의 구원을 받은 적이 있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처음의 과정을 거꾸로 되 집는다. 전기톱을 치우고, 조그만 빗자루로 톱날을 턴다. 전기 줄을 잘 말아서 챙기고, 대나무 비를 들어 톱밥을 쓸어 모은다. 이제 2~3일은 걱정 없이 난로에 장작을 태울 수 있다. 오늘 오후, 뜨거운 장작 난로 곁에는 사람들과 고양이가 모여들 것이다. 커피 잔을 들고,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고소한 냄새를 마구 피워내면서 삼겹살을 구울 것이다.

팔공산엔 쌀알 같은 눈이 내리고 있고, 세상은 적막 속에 정지해 있다.


고성(古城) 아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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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9

가람가솔님의 댓글

요즈음의 김명기님 글들은 한국판, 아니 김명기판 월든...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까이꺼대충(암컷)님의 댓글

잘 읽고 갑니다.. ^^
메리크리스마스~

아치D.님의 댓글

따뜻한 겨울을 느낄수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솔길님의 댓글

김명기님!!
새해에는 하시는 일마다 행운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유대선님의 댓글

ninja7님의 댓글

좋은 느낌이네요 ^^

가시물고기님의 댓글

느낌 좋아요.. 잘보고갑니다...

elzl님의 댓글

좋은 그림 잘보고 갑니다

kohaku님의 댓글

좋은 글과.... 이쁜 사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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