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기.

당분간 다시 산에 산다. 멀리 산자락을 굽어보며 말을 달린다. 마분을 치우고, 건초의 향긋한 내음을 맡으며, 하루는 산머리에서 시작하고 산자락에서 끝난다. 세상의 먼지를 털어내고, 주어진 하루를 잘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타인의 겨울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기주의와 거짓으로 나를 감싸려던 사람들. 한 발만 물러서면 모든 것이 비스킷 껍질 같은 조악한 틀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 제 밥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억지 모함까지 하려니, 얼마나 힘이들꼬...

사람이 좀 독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으면 절대 돈 못 벌지요. 김대장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에게는 단단히 갚아 주고, 일의 진행이 어려워 지지 않도록 만들어야지요. 김대장이 돈을 좀 벌고 나중에 조금만 쓰면 다 이해가 되고 고마워합니다.

그리고, 김대장이 돈이 너무 없으니까, 함께 일하는 사람들까지 가끔 남루해 집니다. 동료들이 속상하고 일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결과가 되지요. 일단 자신의 상황을 편안하게 개선시킬 수 있을 정도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일을 하고 돈을 벌자면 악의든 선의든 결과적으로 적이 생기게 됩니다. 그 적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성공의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하지요.

용서, 그거 함부로 쓰면 독이 됩니다. 어디서나 주목 받는 사람이니까, 주변 사람들도 김대장을 지켜보지요. 모함을 받거나, 위기 때 김대장이 어떻게 일을 풀어 가는지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김대장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절대로 약하거나, 부드럽거나, 만만하거나, 착해 보이면 안 됩니다. 돈 버는 데는 그런 것 다 필요 없어요.

하루에 두 번이나 이런 충고를 들었다. 각각 다른 일을 하는 다른 위치의 분들께. 두 분의 공통점은 나름대로 성공하신 사업가라는 것. 결국 내 본성은 돈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쓸모없는 것인가? 매번 당하고 매번 용서하고 잊고, 내게 그런 자격이나 있는 것일까? 독해진다는 것. 용서에 깊은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다.

오전 6시 30분. 여전히 어둑어둑한 산의 새벽. 하루의 첫 담배를 물고 마방을 둘러본다. 말 한마리가 건초를 남겼다. 소화가 잘 안된 모양이다. 말의 배에 귀를 대본다. 조용하다. 말을 끌고 새벽 산행을 나선다. 어둠 속에서 작은 눈송이가 머리위로 내린다. 멀리 동이 터오는 사바는 운해(雲海)에 가려져 있다.

잔설이 쌓인 맑은 개울 앞에서 나는 망설인다. 어쩌나? 나는 독해져야 하나? 나는 착해지면 안 되나? 거짓은 거짓으로, 배신에는 복수로. 욕설에는 욕설로 대해야 하나? 세상은 자꾸 자신을 닮아 가라고 강요한다. 깊은 산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사람사이에 머물고, 사람 사는 세상엔 오염 된 먼지가 그득하다.

나는 이래저래 혀를 차며, 천천히 말을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 하루가 또 산자락에서 머뭇거린다.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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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빙벽] Nikon 똑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