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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과 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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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탕과 온탕

2005 한일대학생역사기마탐방 행사를 위한 준비로, 일본의 모 승마학교에 팩스 메시지를 넣었다. 들어가지 않는다. 일본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길고 긴 국제전화번호를 누르면서 손가락이 떨린다. 이런 건 5년 만이다. ‘지이익! 달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낮선 언어가 들린다. 마른 침을 삼킨다.

“모시모시!”
“헬로우?”
“...”
“헬로우? 캔유 스피크 잉글리쉬?”
“스미마셍, 이기리쉬(잉글리쉬) 노!”
“오! 히어 이즈 코리아 영스터스 호스라이딩 클럽. 두유 언더스탠?”
“...”
“와타시노 나메와 김데스, 아나타노 나메가?”
“하이! 와타시와 이라가시 데스”
“오케. 아나타노 갸에샤노 뎅와방고가 용. 록고. 규. 하찌...”
“하이, 하이!”
“데와 아나타노 갸에샤노 팩스 방고가?”
“...”
“팍스 방고!”
“하이 용. 록고. 규. 하찌....”
“아리카토 고자이마스. 아나타노 도테모 친쎄쓰 히토데스(이게 친절한 사람이란 뜻 맞나?)”
“아리카토 고자이마~스” (일본여인들은 마와 스 사이를 길게 끄는 경향이 있다.)

미스 이라가시 양은 한국어와 영어를 못한다. 나는 일본어가 스꼬~시 데끼마스다. 그래서 이런 기상천외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아마 영어나 일어를 잘 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뒤집어 질 것이다. 뎅와 방고는 정확했고, 팍스 방고는 틀렸다. 이라가시 양은 팍스 방고를 다시 알려 주었다. 그러나 정확한 팍스방고 (팩스번호) 로도 팩스가 가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영어 실력이 나와 비슷한 일본여인이 전화를 받았다. 한결 수월했다. 이쪽의 팩스 번호를 알려주고, 시험 삼아 그쪽의 아무 카탈로그나 보내 보라고 했다. 3분, 5분... 기다려도 아무 것도 오지 않는다.

도중에 다른 곳에서 8장짜리 팩스가 왔고, 택배가 두 번이나 왔다. 또 다른 곳에서는 사무실 전화번호로 계속 팩스를 보낸다.

‘제기랄! 정말 정신없군.’

오랜만에 일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유사(有事)히(?) 팩스를 보내고 나니 머리가 뜨끈뜨끈 하다. 그리고 예전 테헤란 로를 주 분포지로 할 때의 일상이 떠올랐다. 맞아, 그때는 이런 게 일상이었다. 나는 적응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숲 속의 느긋한 삶을 즐기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꿈은 공짜가 아니니까.

저녁이 되자, 공교롭게도 혼자가 되었다. 술(戌)시에  이렇듯 공허한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모처럼! 이라고 생각하고 즐기기로 했다. 혼자 뼈다귀 집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도시의 뜨거운 온탕에서 차츰 검은 어둠 속의 교외로 스며들어 간다. 숲 속으로 걸어들어 가자 냉정한 겨울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그리고 다시 야인으로 돌아왔다. 어찌나 추운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의 몸은 간사하다. 잠깐 담장 안의 삶을 살았다고 거친 들녘의 삶을 못 견뎌한다. 하지만 머리 속은 거울처럼 맑아진다. 이제 거침없는 시간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뭔가 제대로 자리가 잡히는 느낌. 허상이 벗겨져 나가고 내 존재의 단단한 바닥이 드러나는 확신.

모처럼 꿈을 위하여 사는 시간이다. 나는 다시 야생마처럼 질주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처럼 버거운 것인가? 를 더듬거리는 대화에서 스스로 느낀다. 혀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는 것이다. 매일 저녁엔 젖은 크래커처럼 피곤에 절어 들었지만, 소주 한 잔으로 모른 척 해 버릴 것이다.

이제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도심과 숲 속,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살게 되었다. 물론 밤마다 흔들거리는 걸음 걸이로 서식지에 돌아가 선 잠을 이루겠지만, 내 인생은 다시 나의 것이다. 나는 고독에 대하여 고독이라고 쓸 것이고, 그리움에 대하여 그리움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AM. 2:00. 노란 전구의 불이 꺼지자, 온 세상은 검은 장막 속으로 사라진다. 무쇠 난로에 장작을 잔뜩 넣고 겨우 잠들었다. 잠깐 눈을 감았나? 핸드폰에서 6:00 알람을 울리고 있었다. 아직도 검은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고, 별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은 늑대의 눈처럼 짙은 회색으로 불투명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은 나는 내 존재와 나의 생존을 확신할 수 없다.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www.allbaro.com


PS : 아참 이라가시 양은 목소리가 도테모 카와이이(귀엽다.) 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에,

“아나타노 보이스가 도테모 카와이이!”

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알아듣거나 말거나 그건 낫 마이 비즈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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