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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출된 무리 동물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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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출된 무리 동물의 뒷모습

장대비가 천정을 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깊은 숲. 눈을 떠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미혼의 어둠 속. 나는 잠자리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다.

습기 때문인가? 한층 더 농밀해진 대기를 뚫고 마치 살 갗에 직접 스며드는 것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어둠은 단단한 고체가 되어 나를 감싼다. 나는 어둠 그 뒷편의 뭔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응시하며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죽어 버린 것일까? 눈만 감으면 우리는 익숙하게 다른 차원으로 빨려간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피하려 애를 쓰는 무덤 속의 영원한 나머지 시간은, 이런 어중간한 회한으로 끝없이 정지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울 것 까지는 없다. 그리운 것들의 무게가 모두 덜어진 다음이라면, 이런 새벽 잠 같은 영원한 휴식이 뭐 그리 두려울게 있을까?

그러나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아직은 그렇다. 손가락을 꼼지락 거려 본다. 문 밖엔 어느새 여명이 다가와 있다. 검은 밤을 쓸고 지나간 장마비 때문에, 새벽은 짙은 회색으로 아직 현실의 창 밖에서 서성거린다. 나는 덫 같은 잠자리를 털고 몸을 일으킨다. 대지로 부터 간신히 등을 떼어내고, 우드득 거리는 발걸음을 한 발자국씩 옮겨 현관으로 나선다.

비의 커튼이 현관을 가리고 있다. 잠시 현관에 서 비를 바라본다. 예감처럼 5분후면 비가 그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들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내게 특별한 능력이나 확신 따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는 정확히 5분후에 멈춘다.

말들이 더 안락하게 쉴 수 있도록 진행 중인 마장 공사가 장마비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 모든 것은 계획중이고 잠정적이고 이윽고 중지되었다. 말들이 비를 피할 곳이 없다. 원형마장에 방목하여 두었더니 서열을 다시 잡느라고 전쟁이다. 거대한 뒷발로 서로를 차고 몰려 다니고 물어 뜯어서, 공격하는 놈이나 공격을 당하는 놈, 모두 상처 투성이다.

무엇이 이 말들의 야성을 일깨우는 지 모르겠다. 밥이 부족한 것도,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닐텐데, 강한 놈은 집요 할 정도로 약한 놈을 괴롭힌다. 잠깐의 싸움에 이미 승부가 났어도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좆아 다니며 괴롭힌다. 중간에 사람이 개입하여 꾸짖고 말려도 소용없다. 잠시 후면 다시 그들만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동안 가장 강하던 말, 새마가 새로온 말 모카에게 엉망이 되었다. 실은 얼마전에 다친 다리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모카는 새마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몇 일동안 떼어 놓았다가 어제 모카가 많이 얌전해 진 것 같아 잠깐 한 마장에 넣어 보았다. 모카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일직선으로 새마에게 다가가 뒤로 회전하며 두발 차기를 한다. 새마도 지지않고 맞받아 친다.

두 마리의 말은 화약시대 이전의 장수들이 그랬듯이 두 발을 길게 뻗으며 3합을 겨룬다. 뒷다리를 어지럽게 날리던 새마가 마침내 도망을 친다. 모카는 즉시 추격을 개시한다. 물어 뜯고 순간순간 돌며 다시 뒷다리를 날릴 순간을 노린다. 주변에 도열한 다른 말들까지 흥분하여 질주한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모카를 진정시키고 따로 격리한다. 지금까지 본 말 중에, 제 동족에게 이토록 잔인한 녀석은 처음본다.

잠시 마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새마가 슬며시 밧줄을 들어 올리고 나온다. 그리곤 그동안 채찍으로 쳐도 잘 나가지 않던, 외부로 통하는 길로 나서는 것이었다. 천천히 걸어서 제 놈의 지능으로는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무엇이 있는지, 무슨 일이 생길지 전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느릿느릿 떠나는 것이다. 그 뒷모습은 어쩐지 비장했고, 단호한 결심이 엿보였고, 쓸쓸했다.

급하게 전화를 걸어 아래 길목에 있는 아우들을 불렀다. 길이 막히자, 새마는 산 중턱으로 올라간다. 절뚝 거리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길이 끝나자, 더 이상 갈 곳을 모른채 우두커니 선다. 살며시 다가가 목에 밧줄을 끌고 내려온다. 잠깐 저항을 하다가, 그마저도 다친 발때문에 쉽지 않은지 금방 포기하고 따라온다. 하지만 제 집에 다가갈 수록 다시 눈알을 굴리며 도망칠 기회만을 노린다.

말은 무리 동물이다. 무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 때 무리의 우두머리였으나, 무리에서 축출 된 무리 동물의 최후는 그렇다. 어쩌면 지금 새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진돗개의 무리들 역시, 예전에 무리에서 벗어난 병약한 동물을 공격하여, 마구 뜯어 먹던 야성이 슬그머니 기억난 것인지도 모른다. 새마의 얼굴엔 긴장과 체념, 그리고 얼핏 얼핏 스치는 죽음의 공포마저 엿보인다. 

밧줄을 단단히 여며, 새마를 따로 격리한다. 그래도 안정이 되지 않고, 이리저리 절룩거리며 돌아다니던 새마는, 마침내 자신의 안전을 확인 했는지 고개를 늘어뜨리고 물을 마신다. 한숨을 돌린 것이다. 새마도 나도 말이다.

얼마전 한 아우에게 말했다.

"사람사는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30%의 사랑과 동정, 70%의 시기와 질투다. 그것은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여 돕는 힘으로 세상은 30% 정도의 구동력을 지니고, 그 나머지는 모두 미움과 시기를 동력으로 한다는 것이다."

"네가 아름다운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지거나, 네가 약간의 재산이라도 불렸다면 너는 침묵해라. 그것은 네가 너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축하 받고 싶어하는 일들이다. 함께 나누고 싶기도 하겠지. 하지만 틀림없이 누군가가 너를 시기하고 질투할 것이다. 이 세상의 근본적인 기반이 긍휼한 사랑이라면 전쟁이 왜 날 것이며, 투서와 고발은 무엇이고, 변호사 따위가 왜 필요할 것이냐?"

"게다가 누군가와의 관계를 방치한다면, 그 관계는 무조건 점점 더 부패하여 악취가 난다. 그러니 누구를 함부로 만날 일이 아니다. 네가 조금씩 성장하면 그 성장과정에는 수 많은 잠재적인 방해꾼들이 있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너의 성장을 질투하는 무리들이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돌리는 힘은 시기와 질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새마는 처음부터 우두머리의 자리에 섰다. 그리고 새로 도착하는 모든 말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새마는 조금씩 허물어져 내렸다. 초컬릿과의 전투에서 앞 발 하나, 모카와의 전투에서 뒷 발 하나, 그리고 새마의 권위를 우습게 보기 시작한 나머지 말들에게 조금씩 도전받고 여기저기 다치고 마음이 쇠약해져 가는 식으로... 

그러고 보니 천만이 넘는 동류들의 도시를 떠나, 이 적막한 숲에서 말들을 돌보는 나도 틀림없이 무리 동물이다. 게다가 축출 된 무리 동물임에도 확실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을 내 어깨에도 새마와 같은 고독이 배어 들어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나 역시 도시에서 축출될 무렵,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돌리는 힘은 시기와 질투에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으니까.

우비를 입고 마사에 올라가 도랑을 판다. 빗줄기는 틀림없이 제 고집대로만 흐른다. 어제 미리 준비하여 두었던 도랑 따위는 약간의 흔적만 있을 뿐. 빗물은 자신의 의지대로 흘러 엉망으로 만들었다. 급한 곳 몇 군데를 손보고 벌써부터 콧김을 뿜으며 아침을 기다리는 말들에게 밥을 준다.

밥을 주고 다시 도랑을 파다 온몸이 후텁지근하게 뜨거워 지고 우비의 안쪽에 땀이 비오듯 흐르는 것을 느낀다. 우비를 벗어버린다. 이래서야 소나기를 맞은거나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더 끈끈하고 척척 감겨들뿐. 나는 상의를 벗고 다시 도랑을 판다. 아무도 오지 않은 깊은 숲 속. 나는 내일이면 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도랑을 파고 있다.

어찌되었건 빗물은 도랑을 타고 언제고 바다로 흘러 갈 것이다. 나는 잔꾀가 가득 들어있는 계획서나 원대한 꿈이 아니라, 작은 삽으로 이렇게 도랑을 파고 또 파서, 언제고 축출된 무리 동물의 무덤에서 기어나오게 될 것이다. 아니라면 적어도 숨 구멍 하나 쯤은 내게 되겠지. 이 마저도 시기하는 강력한 훼방꾼을 만나지만 않는다면...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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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여백님의 댓글

써둔뤼...까뮈의 이방인이란 책이 생각나네...
몇번을 읽다가 10페이지를 못넘기고 잠들었던..
제목만 생각나는 '이방인'
-,.-"

adam님의 댓글

강력한 훼방꾼? 왠지 명기형 자신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랑을 파고 또 파서 외부와 단절된 강을 만드는... ^^;

김명기님의 댓글

햇살 때문에 살인한 장면을 아직 못 읽으셨나 보네요... 꼭 한 번 보세요... ^~^

김명기님의 댓글

아니야 나는 도랑을 파서 세상으로 통하는 창을 만들고 싶어하지. 꼭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것은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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