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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too short to drink cheap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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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too short to drink cheap wine?

회원 한분이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오셨다.

"대장님 약주 좋아하시지요? 이거..."
"아 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받아보니 로열 살루트 (Royal Salute - 왕의 예포) 다. 1931년 글렌리벳사가 21년 뒤에 있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위해 21년간이나 오크 통에서 숙성시킨 특별한 위스키. 이런 숲 속에서 산 사나이가 마시기엔 너무 근엄한 술이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거실 L.P.장에 둔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다른 회원 분이 신라호텔에서 가져오신 좋은 와인을 선물 받은 것도 기억났다. 아직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어찌 된 일이지? 선물 받은 좋은 술을 그대로 두고 매일 소주나 막걸리라니. 지난 번에 선물 받은 J&B Jet도 아우들이 다 먹도록 그냥 두었군.

회원 분이 돌아가신 뒤에, 나는 로열 살루트 병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본다. 앞부분에 동그랗게 박힌 금색 이니셜이 익숙하다. 오른 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받쳐 가볍게 흔들어 본다. 자기로 된 병 속의 내용물은 언젠가 빛을 받아 황금 색으로 출렁일 시간을 기다린다. 코는 그 향기를, 혀는 그 맛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입안에 군침이 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Bar의 밴드가 연주를 멈춘다. 필리핀 사람인 밴드마스터가 오른 손을 높이들어 내게 인사를 한다.

"Oh! our friend mr. kim coming!"

마틴이라고 했던가? 아니 그보다는 훨씬 더 흔한 이름이었다. 몸에 맞지 않은 외투를 입은 것처럼, 검은 피부의 필리핀 남자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국식 이름. 어쩌면 폴이나 찰리 정도였을지도 모르지.

검은 정장에 눈부시게 하얀 셔츠를 입고 보우타이를 맨 매니저가 다가와 친근한 인사를 한다.

"김사장님, 안녕하세요? 좋은 밤이지요?"
"네. 술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밤이네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웨이터가 의자를 당겨 그녀를 앉히고 테이블을 세팅한다. 무대에서는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이 연주된다.

"로열 살루트 주시구요! 얼음은 필요 없어요. 밴드에겐 버드 한 병씩 돌리세요."
"네."
"아, 그리고 다비도프 처칠도 한 개, 커트하지 말구요."

웨이터는 뒷걸음으로 물러가고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어깨와 가슴이 깊게 드러난 MANI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팔을 턱에 괴고 나를 바라본다. 목에 걸린 하얀 진주 목걸이는, 더 하얗게 빛나는 피부에 그만 빛을 잃고 만다. 오트쿠튀르의 캣워크 도중, 플래쉬를 마구 터뜨리며 담아낸 사진 같은 얼굴. 긴 속눈썹 위에 검은 마스카라가 공작의 꼬리처럼 뚜렷하다.

그녀의 꿈꾸는 듯한 눈동자는 티티카카 호수처럼 깊고 푸르다. 가늘게 그려진 눈썹은 그 호수의 잘 자란 갈대 같이 매끈하다. 나는 그녀의 잔에 로열 살루트가 채워지는 것을 바라본다. 조명을 받은 크리스털 잔은 닌자의 표창 같은 빛을 뿜는다.

처칠 사이즈의 시가 끝에서 올라오는 푸른 연기가, 짙은 색의 마호가니 테이블 너머의 그녀를 흔들리게 만든다. V넥으로 깊게 파인 부드러운 젖가슴 라인 위에, 시선을 멈춘다. 호박색 마법의 액체는 더욱 음흉한 시간을 꿈꾼다.

Life is too short to drink cheap wine. 조명을 받은 길다란 통나무 널판에는 그렇게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로 양각되어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 말구.'

몸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 때로 낙엽을 만지다가 그 서늘한 감촉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묻어나는지, 한동안 숨이 멎곤한다.나는 기억을 멈추고 병을 다시 내려 놓는다.

어떤 남자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소개로 미모의 여인을 만나 결혼하여 안락하게 산다. 과연 그 남자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인가? 몇 날 몇 밤을, 또는 몇 년을 잠 못 이루고, 때로 눈물로 지새운 그 안타까운 시간들. 쓰고도 달콤한 사랑이 지닌 야누스의 얼굴을 과연 알 수 있을까?

처음부터 부자인 사람이 끝까지 부자로 살아가는 인생은, 가난하였지만 노력하여 부와 명성을 거머 쥔 사람의 삶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빈곤한 경험을 지니고, 결과적으로 별 재미가 없다고 무료해 할 지도 모른다.

"내일은 뭘하지요?"

위대한 개츠비에서 F. 스콧 피츠제럴드 는 심심한 부자의 입을 통해 그렇게 말했다.

나 역시 한동안 보석처럼 빛나는 시간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어느 한 쪽만을 누려본 것이다. 나는 실패 했다. 그리고 숲으로 걸어 들어왔다. 어쩌면 신의 특별한 배려로, 나는 또 다른 나머지 한 쪽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소주와 막걸리의 맛을 이제 새로이 알아가고 있다. 거칠고 고독한 시간들. 하지만 삶의 진정한 단면들과 완전한 모양을 짐작하게 해 주는 그 맛은, 점차 혀에 깊게 박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점점 완성 되어가고 있다. 단 맛과 쓴 맛, [왕의 예포] 뿐만 아니라, 소주와 막걸리에 의해 점점 제 모양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로열 살루트를 마시지 않고 누군가에게 선물해 버릴지도 모른다. 아직 호박색 풍요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누군가에게. 지금 다시 그 맛을 새로 혀에 각인하여 둔다는 것은, 아마도 나 자신에게 지나친 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

Jazz가 흐르는 둔중한 시가 하우스의 낮고 두런거리는 대화는 이제 잊혀져 가고 있다. 도시의 혼란에서 숲의 평온으로 돌아온 나는, 소주에 섞인 흉허물 없는 대화와 막걸리의 텁텁한 미소를 안다. 그리고 숙취에서 깨어나는 숲의 새벽에 혼자 중얼거린다.

"perfect!"


Life is too short to drink cheap wine? 웃기는 소리!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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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4

영환군님의 댓글

형님!!! 고거 잘 간직 하셨다가..
제가 그곳에 출장함 가면.. 같이 오붓하게 뚜껑 따심이..
+_+

막강전투조님의 댓글

영환군 갈때 같이 묻어 가고 파...ㅡ.ㅡa

김명기님의 댓글

글쎄 그때까지 이게 남아 있을까? 이렇게 공개적으로 인터넷에 올려두기까지 했는데... ^~^

김명기님의 댓글

이 맛에 길들여진 뒤에는 어쩔려구요? ㅎㅎㅎ

영환군님의 댓글

ㅋㅋㅋ
깃들여 지면.. 담부터 출장갈때 한손엔 칠레산 와인.. 한손엔 스카치 위스키!

막강전투조님의 댓글

저는 세상에서 젤로 맛난 소주 옆구리에 차고 갈께요..ㅋㅋㅋ

김명기님의 댓글

그것 좋지. 애주가가 한 명 늘었군. ^~^

김명기님의 댓글

여기서는 25도 짜리 빨간 딱지의 진로 클래식을 자주 먹고 있지요... ^~^

재미솔솔(시니)님의 댓글

로얄 살루트가 좋은술이구낭..ㅋㅋㅋ 전 산토리의 히비끼가 좋은데.. 아직도 못먹어봄.. 머 일본제 중에서 히비끼가 젤 좋아서리..ㅋㅋㅋㅋ

김명기님의 댓글

산토리 위스키도 좋지요. 하지만 일본 사람이 만든 막걸리 라면 어떤 기분일까요? ^~^

재미솔솔(시니)님의 댓글

하하하.. 일본 막걸리 있는뎅.. 아마쟈께라고.. 머 막걸리 처럼 생겼어요. ㅋㅋㅋ 하지만 달거든요.. 하하하.. 감주죠..

여백님의 댓글

예전엔 명기님의 글이 길고도 길고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명기님의 연인과 명기님의 글을 자주보노라뉘...
모습들이 하나하나 연상돼는 군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김명기님의 댓글

오크 통은 어디에나 있지만 술을 증류하는 피트(이탄)은 스코틀랜드에 밖엔 없다고 합니다. 이탄의 향이 들어가야 진짜 스카치 위스키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모두 원액을 사다가 물을 섞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

김명기님의 댓글

드라마까지야 되겠습니까? 그저 기억의 조각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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