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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치는 밤엔 천국으로 떠나요.

본문

폭풍우 치는 밤엔 천국으로 떠나요.

잠시동안 주변이 조금 어수선해지는 듯 하더니 창 틈으로 숲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대기의 밀도가 높아지는 듯한 느낌은 바로 비가 오기 직전의 징후 같은 것이었나 봅니다. 슬픈 눈동자의 여인이 긴 목을 15도쯤 왼쪽으로 돌리며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이어서 소리 없이 양 볼로 주르륵 눈물이 흐르기까지 그 침묵의 찰라 같은 것이, 비가 내리는 직전 커피 잔이 품어 올리는 옅은 한숨처럼 정적으로 숲에 스며듭니다. 창문 밖은 바로 숲 속이므로 빗줄기가 나무 잎을 핥는 소리가 검은 어둠으로부터 들려 옵니다. 낮게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오두막의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처마 끝에 제법 실한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리는 소리, 드럼통을 두드리는 규칙적인 물소리가 한데 어울려 한밤에 비의 소나타를 들려줍니다.

종일 공허했던 서식지의 숲에 따로 찾아올 손님은 없었지만, 뜻하지 않은 가을비를 그저 반가와 할 수만은 없습니다. 음악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어딘지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작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거실로 나가 오른 손으로, 손이 만들어낸 마술처럼 그곳에 있는 화장실의 불을 켜고 세면대에 물을 받았습니다. 먼저 두어 번 물로 얼굴을 닦고 비누를 거품이 많이 나도록 잔뜩 묻힌 뒤, 두 손 가득 물을 담아 여러 번 얼굴을 씻었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잠시 거울을 봅니다. 시간의 미로에 빠진 한 사내가 붉은 눈으로 마주보고 서 있습니다. 내리는 비를 제외하고는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합니다. 책상에 돌아가 앉자 다시 조금 더 굵은 빗줄기가 어두운 대지를 적십니다. 새벽 2시로 다가가는 밤은 아직 잠들지 못합니다. 그 낮게 숨을 죽여 흐느끼는 듯한 작은 물소리가 예상보다도 더 가까운 곳 그러니까, 가슴 언저리에서 들려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11층인 오피스텔의 창가에 놓인 침대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제법 굵은 빗줄기로 모든 것이 얼룩져 보입니다. 아래쪽 골목길로 승용차 한 대가 동그란 불빛을 끌며 지나갑니다. 전봇대에 달린 가로등 불빛 아래 바늘 같은 빗방울이 땅을 적시는 것이 보입니다. 우산을 쓴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로 사라집니다. 낮게 산머리에 드리운 구름에서 봉운사 쪽으로 번개가 번쩍입니다. 그리고 천둥이 유리창을 뒤흔듭니다. 문틀까지 덜컹거릴 정도로 크게 으르렁거립니다.   

"와아! 굉장한 소리예요."
"음. 그렇지?"

창 밖이 파랗게 타오르며 격자진 창의 모습을 검은 어둠의 실내에 짧은 순간 인화합니다. 이내 다시 어둠이 그 예리한 빛의 자국을 메워 버렸지만, 망막에 남은 잔상은 시선이 닿는 곳 어디나 격자진 창틀의 모습을 끌고 다닙니다. 그리고 다시 우르르 쿵! 하는 천둥의 소리가 정지 된 공기를 뒤흔듭니다. 볼에 공기의 파동이 확실하게 느껴지도록 강한 음성으로 천둥이 다가 왔을 때, 침대가 출렁거릴 정도로 더 많이 나의 턱 아래를 파고들던 당신입니다. 등을 감아 쥔 당신의 손목에 힘이 가득 들어가 있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 죄 많이 졌구나. 벼락이 무서운 것을 보니..."
"아니에요. 하지만 무서운 걸 어떻게 해요.",
"벼락에 맞는 사람은 굉장히 억울할 것 같아."
"왜요?"
"벼락은 단순한 대기 현상이고 강력한 전기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그냥 우연히 벼락에 맞아도 사람들이 수근거릴 것 아니야? 벼락맞을 놈이라는 오래된 저주와 함께 말이야. 그냥 자연의 희생자가 된 것만도 억울 할텐데... 그렇지?"
"그렇겠어요."
"그러니 벼락은 죽어도 맞으면 안돼. 누명을 쓴다 말이지..."
"난 비오는 날 밖에 안나갈 거예요"
"그럼 뭘 하지?"
"음... 당신이랑 이렇게 하루종일 집안에서 뒹굴 거리지요 머."
"뭐? 당신은 학교도 안가고, 난 회사도 안가고?"
"네. 회사가지 마세요. 내가 김치전 해 드릴게요."
"이런, 당신 말대로 하면 우린 머지않아 거지가 될 거야."
"거지 되면 어때요? 어디 멀리 섬에라도 가서 둘이 살아요."
"고기잡고?"
"네. 고기잡고..."
"좋겠네, 정말..."

"새하얀 모래톱에 통나무 집 하나 짓고 살아요. 조그만 배 하나 띄우고 당신이 고기 잡아오면 내가 모래 위에 펴서 널고, 가끔씩만 도시에 나가서 영화도 보고 필요한 것도 사오고..."
"무척 가난할 텐데?"
"괜찮아요. 내게 당신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이니까요."
"믿을 수 없는걸?"
"정말이에요. 우리 내일 당장 남해안 어디로 떠날까요?"
 "그런 말 마. 내일은 중요한 회의가 있어. 시카고에서 손님이 오기로 되어있지. Man machine interface Software 공급 계약 건으로... 그것만 잘 되면 우리는 제법 덩치 큰 시스템도 수주 받아서 시공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나중에 섬 같은 것은 하나쯤 사도 되지. 그리고 우리는 큰 거북이를 하나 기르는 거야. 갈라파고스 諸島(제도)쯤에서는 거북이가 돌멩이만큼이나 흔 하대지 아마? 우리는 거북이를 타고 섬을 일주하며 탐험 지도를 만드는 거야. 거북이가 잘 훈련되면 그 거북이가 알을 많이 낳도록 하자구. 그리고 거북이로 축구팀도 만들고, 거북이들에게 제식훈련을 시켜서 누군가 우리의 왕국으로 찾아오면 의장 사열을 시키는 거야. 어때? 재미있겠지? "
"피이 순 엉터리."
"섬에 가서 살자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엉터리지."
"이리 와요. 당신 정말 그럴 수 있어요?"
 "당연하지. 당신이 가자는 곳은 어디든 가. 물론 아직은 아니지만, 당신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아니까..."
"당신이 저를 사랑하는 게 아니구요?"
"나? 난 워낙 인기가 좋으니까..."
"에잇! 얄미워라."

입가에 짓궂은 미소를 하나 머금고 당신은 내 어깨를 누르며 침대가 크게 출렁이도록 내 위로 올라왔습니다. 하얀 시트가 벗겨져 침대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당신의 잘 그을린 어깨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고, 어깨에서부터 허벅지로 흘러내린 곡선은 숨막히게 날카로운 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비키니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살집이 많은 당신의 부드러운 둔부쯤에서 멈춘 시선은 그만 길을 잃고 말았구요. 곧게 뻗은 당신의 긴 다리가 마치 바닷말처럼 내 다리를 감고 있었습니다. 따듯하고 부드러운 허벅지의 느낌이, 나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합니다.

"당신을 꼼짝도 못하도록 잡을 거예요. 그것도 영원히... 아시겠어요?"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칩니다. 잠시 장난꾸러기 같이 나를 내려다보던 당신의 눈동자가 반짝이며 불타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의 입술이 천천히 다가오며 나의 입술을 누릅니다. 달콤하고 탄력이 있습니다. 나는 천천히 하늘을 날기 시작합니다. 조금 빠른 바람을 타고 천천히 넓은 호를 그리고 있는 작은 灣(만) 위를 나릅니다. 진청 색으로 물든 조금 먼 곳의 바다에서부터 에메랄드빛으로 바뀌는 옅은 바닷가로 투명한 햇살이 쏟아집니다.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이 보이고 조그만 배도 보입니다. 거북이들이 이곳 저곳 줄지어 기어갑니다. 눈부신 미소를 띄며 당신이 달려옵니다. 바람을 맞으며 머리카락을 날리는 당신은 새하얀 갈매기가 되어 飛上(비상)합니다. 

쿠르릉! 하는 소리가 눈을 뜨게 만들었습니다. 건물전체가 조금 움찔하고 놀란 것 같습니다. 앰프는 Chopin의 Nocturnes에서 길을 잃었고, Arthur Rubinstein 은 비에 젖지 않는 피아노 소리를 숲 속의 어둠으로 흘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내리고 있는지, 창 밖에는 가을비답지 않게 샤워 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요즘 T.V.에서 흔히 말하는 '국지적인 게릴라 성 호우'인가 봅니다. 어디 가까운 곳으로 우산 하나 들고 산책이라도 나가려면 '토벌군'의 복장으로 오솔길에 나서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너무나 당신다운 유치한 생각이에요."
분명히 콧등을 조금 찡그리며 고양이 같은 입술로 그렇게 말을 하였겠지요, 당신이라면...

비가 많이 옵니다. 이 비가 그치면 많이 쌀쌀해질 것 같습니다. 차가워지는 숲은 조금씩 더 뜨거운 열망으로 타오를 것이고요. 숲 속의 고적한 오두막집은 아마도 계절을 잊은 폭풍 속에 갇힌 것 같습니다. 덧문을 닫고 어두운 현관을 다시 돌아봅니다. 이윽고 음악도 멈추고 시간도 멈추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폭풍우 치는 밤엔, 홀로 우리들의 천국으로 떠나곤 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빈 햇살만 가득한 그 섬나라 말이지요. 당신이 계신 곳에도 비가 많이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비가와도 우리의 섬나라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상상 속에 머물러 있지 않겠지요. 벌써 아주 오래 전에 어디로 떠내려가 버린 것인가요? 비는 멈추지 않고, 창가에 선 사내의 쓸쓸한 그림자는 빗속에 녹아 흐릅니다.
 

비에 젖은 측백나무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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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7

iceberg님의 댓글

이런글을 자꾸 읽다보면 낭만적인 연애와 결혼을 꿈꾸게될것 같아 심히 불안(?)해지네요... ㅎㅎㅎ
정말 사랑한다면 외진 섬에서 영화도 없고, 스타벅스 커피도 없고, 멋진 레스토랑도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작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재미솔솔(시니)님의 댓글

버그님.. 그럼.. 인공위성 안테나하고.. 맥을 가지고 갈가요.. 충전은 태양열로 하고.. 한 일년간 이렇게 살다오면.. 진짜 많이 변해 있을려나.. 하하하.. 그나저나.. 프라이데이랑 같이 가야하나.. 아님.. 마눌님 데리고 가야하나.. 그러나 마눌님은.. 아마도 화를 낼것 같네요..ㅋㅋㅋㅋ

김명기님의 댓글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영화, 스타벅스 커피, 멋진 레스토랑이 다 귀찮아 질 것입니다. 단 둘만 조개처럼 딱 달라 붙고 싶어 질테니까요... ^~^

김명기님의 댓글

맥은 물론 예외! ^~^

iceberg님의 댓글

아직은 안 믿기지만... 한 번 해보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전 사랑을 해도 그런것들이 계속 필요할 것 같거든요... 제가 진짜 사랑을 못해본건지.

김명기님의 댓글

실은 진짜 사랑 따위는 하지 않는 것이 삶을 황폐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네요,...

IDMAKER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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