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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사이키델릭 화장실

본문

예전에 써 두었던 글을 정리중입니다. (매일 조금씩 바뀔지도, 그냥 이대로 방치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이키델릭 화장실

김 명 기

예전에 써 놓았던 글을 정리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일정한 규격으로 갖추어 치워 버려야 할 것 같아서 입니다. 이제 이 글은 이 정도에서 그만 잊혀지고 말겠지요.

[커다란 CF 광고판 위에서 웃고 있는 민수의 얼굴 앞을 지난다. 그 얼굴이 내 키보다도 크다. 그는 이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로 그만한 크기의 격차를 지닌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난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의 那落(나락)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잠시 머무른 사이 주변의 사람들은 성장을 계속한다. 내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사고처럼 누군가의 자아를 멈추게 하는 것.] 때로 그렇게 지칭되어도 되는 것일까? 아무 짓 하지 않아도 시간은 우리를 세탁기 속에 넣고 마구 돌려??버린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그런 것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 도저히 감당 못할 상황으로 넋을 잃고 맴도는 시간 속에 우리는 터무니없이 쓸쓸한 자책을 한다. 뭐가 잘 못된 것일까? 모두들 말한다.
‘사랑은 전쟁이다.’
일부분은 맞다. 우리는 각자의 젊음과 욕망, 그 혼잡한 시간 속에 지독한 전쟁을 겪은 것이다. 그보다 더 깊은 상처의 전쟁이 또 어디 있으랴?
‘죄인? 전쟁 중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것도 그럴 듯 하다.]

- 본문 중에서. -


1. 運河(운하)

겨울을 무사히 넘긴 서식지 여기저기의 電燈(전등)들이 이제 속을 썩인다. 아니 그건 좀 너무한 표현이고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다가 이제 수명을 다하여 켜지지 않는다. 몇 일전 서식지 계단의 전구가 죽어 버렸을 때, 얼음으로 덮인 2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거의 필사적인 탐험에 가까운 동작이었다. 난간을 잡고 더듬거리지 않으면 언제 굴러 떨어지거나, 머리통에 근엄한 인도인처럼 터번을 두르는 부상을 입을지 모르는 절박함.

어느 순간 화장실 형광등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전구의 病勢(병세)가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켜있는 순간 잠깐씩 꺼졌다, 켜졌다. 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런대로 화장실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처리할 수 있었기에 그냥 두었더니, 어젠 아예 Psychedelic(사이키델릭) 조명이 되어 버렸다. 책을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눈을 뜨고 한참을 있으면 어질어질 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듯 변기에 앉아 있기... 이러다가 공중 부양이라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건 조금 지저분하군!’

흔들리는 화장실의 조명에서 보니, 거울 속의 내가 비현실적인 동작으로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세면대를 붙잡고 꼼짝 않고 있는데도 거울 속의 나는 마구 요동하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를 포함한 사물은 다만 빛과 어둠 속을 떠도는 殘像(잔상)으로만 나타났다. ‘우리는 빛으로 잠시 나들이 왔다가, 다시 영원한 어둠으로 돌아가는 존재인가? 그 사이의 잔상이 인생이라면 너무 쓸쓸한 것은 아닐까?’ 머리 속이 조금 복잡해져 왔다.

잠깐 그렇게 멈추어 있는 동안, 세면대 거울 속의 나는 60Hz로 빠른 공진하고 있었다. 어지러움으로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어느새 나의 의식은 현실에서 박리되고, 시간의 벽을 넘어 암스테르담으로 나르고 있었다. 공항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조용했다. 원색에 가까운 표지판이 제법 있었지만 어쩐지 묵직한 색감이었다. 유럽은 그렇게 조금은 莊重(장중)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뉴께르끄 (Niew Kerk: 신 교회) 광장에서 한 동안 비둘기들을 바라보던 나는 작은 물결에 일렁이는 遊覽船(유람선)을 타보기로 했다.

運河(운하)는 거미줄을 닮아 있었다.
“오른쪽을 보세요.”
그 순간 7개의 아치 식 石橋(석교)가 운하에 차례로 나타났다... 확실한 원근감으로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조금은 탁한 운하의 물위로 그림자 진 다리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흐음!’ 어쩐지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이런 장면들을 늘 보니까 그런 그림이 나오는군...’
첫 번째 다리를 바라보며 어쩐지 그 다리 아래를 천천히 통과하고 싶어졌다. 각각의 다리들은 어떤 이름과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몇 번째 다리의 아래를 지나고 있는 것일까? 그 운하 위를 천천히 지나 마지막 다리의 아래로 지나가면 어떤 것이 보일까? 우리가 매일 같이 살아내는 인생에는 몇 개의 커다란 石橋(석교)가 있는 것일까? 암스테르담의 운하, 나는 일곱 개의 다리를 보며 그만 지난 시간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말았다.

“공장 자동화. 라고요?”
나에 대한 소개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뭔가 신기한 신 종족을 발견한 듯 말했다. 인력으로 했던 일들을 자동화 한다는 것은 관리자들에게는 감원을 의미했고, 현장 작업자들에게는 생계의 위협을 의미했다. 나는 옥스퍼드 지의 와이셔츠 팔을 둥둥 걷어붙이고 현장 사람들과 이야기 했다. 제 3의 물결, 정보화와 현장 인원의 재교육, 보다 안전하고 좋은 환경으로 자리 옮기기. 그러나 현장인원들에게는 모두 개소리였다. 중앙 집중식 컴퓨터 제어기계로 대치된 작업장은 그들과는 유리된 곳이었고 그들은 어딘 가로 떠나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결국 불안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눈동자에서 초식 동물의 쓸쓸함을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나의 내부에 있었다. 그런 유목민의 이동은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었고 조류였다. 한참 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무렵, 그 속도와 반비례로 나는 무언가가 상실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매일은 어제를 닮고 있었고, 내일도 어제를 닮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상은 대형 생산라인의 나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메커니즘 속의 일부였다. 가끔 혼자 영화도 보고, 어딘가 멀리 떠나거나 Jazz속에 하루쯤 푹 빠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분명히 뭔가가 몸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있었지만 그 무엇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결핍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다. 나는 자주 초봄의 거리를 걷게 되었다. 그리고 늘 갈증을 느꼈다. 메마른 바람은 이제 4월을 향하여 불고 있었다.

"요즘 어떠니?"
"그저 그래요."
나의 대학 후배이며 한 때 국방부에 연관되어 武器(무기) 수입업을 하다가 실패를 겪은 민수를 찾았다. 민수는 새로 밸류에이디드 디자인 쪽의 일을 시작하여 제법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흥! 만 원짜리 한 장도 없어서 놀이터에서 그네나 타면서 흔들거리고 있어 보래지.' 그는 늘 냉소적이었지만 어쨌건 나를 반겨 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지금은 C.F.모델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으니, 참 세상일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로부터 한 동안을 그와 함께 압구정동으로, 신사동으로 함께 쏘다니며 삶과 술잔을 나누었다.

“어? 이게 형 차예요?”
“응...”
“흥 지금 자신이 어떤지를 전혀 모르고 있구만.”
“뭐가?”
“지금 자신을 돌아보라고... B.M.W. Z3에, 알마니 수트에...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무슨 의미인데?”
“脫線(탈선)하기 딱 좋은 상황이란 거지.”
“그럴리가...”
“그럼 나이트에라도 한 번 가볼까?”
“그런데서 30대도 받아 주니?”
“이런이런...”

그를 따라간 곳은 모 호텔 지하의 나이트클럽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를 막게 만드는 엄청난 댄스음악 소리와 빠른 창살같이 가슴을 꿰뚫는 직진의 Neon blue 조명 속에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춤추는 여인들... 가녀린 하얀 두 팔을 하늘 높이 올린 그녀들은 마치 외계행성에서 단체로 여행을 온 사람들처럼 일정한 동작으로 금붕어처럼 몸으로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춤을 추고 있었다.
‘How Gee!’
나는 아직도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춤을 추는 여인들만큼 아름다운 대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은 대상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 아마 자신들도 모르는 열정으로 본능 그 아래에 잠재되어 있는 유혹(?) 같은 것을 짙은 향기처럼 뿜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도 미필적 故意(고의)인가?
“안녕하세요?”
지나치게 다소곳한 인사였다. 아름다운 여자애가 이토록 정중한 인사를 하다니. 그것은 내게 생긴 별일(?) 이었다. 나는 그곳의 분명한 이방인이었다. 웨이터의 손에 이끌려 부킹을 나가던 여자애가 옆자리의 나를 잡고 늘어졌다.
“나 안할래요. 이 아저씨랑 술 마실 거란 말예요.”
조금 취한 듯한 음성과 몸짓이어서 웨이터를 바라보았다.
“그냥 두지.”
웨이터는 난처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만지며, 좁은 좌석 사이의 부글거리며 춤을 추는 열대어를 닮은 여인들의 틈으로 사라졌다. 까만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이며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응 조그만 사업...”
“학생?”
“네... 처음 오셨어요? 이런데?”
“응.”
“재미있어요?”
“아직 잘 몰라.”
“우리 춤추러 나가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우윳빛 피부의 그녀는 프레따 포르떼의 허리와 臀部(둔부)라인을 담아내고 있었다.
“나 춤 잘 못 춰...”
“이 사람 정말 순진하네... 당신 같은 남자를 어째서 여자 애들이 그냥 두었지? 나한테 맡겨요, 당신을 확 바꾸어 줄게요.”
“안 그래도 돼. 그만하라구...”
유리잔을 들자, 사이키델릭의 조명이 잔속에 담긴 얼음 사이로 달그락! 거렸다.

“잠깐 이리로 와요.”
또 다른 여인과 부킹을 하는 민수를 남겨두고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좁은 골목 같은 룸들의 사이를 지나 어딘지도 모르게 구석진 비어있는 방으로 끌려들어 갔다. 문에는 여성의 커다란 性器(성기)가 열에 들뜬 DARKRED로 그려져 있었다. 바라만 보아도 강한 眞空(진공)의 힘으로 빨려 들어갈 듯 1미터가 넘게 커다랗고 정밀한 그림이었다. 밀치듯이 나를 자리에 앉힌 그녀는 지퍼를 내리며 흘러내리듯이 웃었다. 어쩐지 미끌 거리는 웃음이었다.

“알아요? 오늘 밤 당신은 내 거야.”
그녀가 부글부글 끓어 오른 페니스를 가득 베어 물자, 음악은 멈추었다. 공간도 정지했다. 갑자기 주변이 은밀하게 가라앉았다. 좁은 룸 안의 공기는 탁했고 동그란 유리창 안으로는 사이키델릭 조명이 삐져 들어오고 있었다. 어두운 창 밖에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가 보일 때마다, 나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듯 했지만 어떤 의지로도 그 순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엎드린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몇 번이고 크게 출렁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천천히 여유롭게 나의 위로 올라와 앉았다. 짧게 마주친 눈망울 속에는 뭔가 모를 불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순도 높은 열정의 淨火(정화)였을지도 모르지. FUCHSIA 레이저가 국부를 도려내고 있었다. 원피스는 허리께 까지 걷혀 올라가 있었다. 갑자기 음악이 지나치게 빨라졌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아랫입술에 그녀의 이빨이 날카롭게 박혔다. 그러나 통증은 이내 음악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런데 이름이 뭐지?”
“맙소사! 우린 서로 이름도 모르는군요.”

그 후로 그녀는 몇 번 더 연락했고, 단 한 번 함께 식사를 했다.
“내가 3학년이라면 애인도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 졸업하면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아나운서요. 꼭 해보고 싶어요. 그러자면 따로 학원도 다녀야 하고 너무 바쁘거든요...”
SONIA RYKIEL의 진회색 니트에 감긴 그녀는 그렇게 재잘거리면서 B.B.Q. Rib Combo의 고기 살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조그맣게 토막 내어 입술로 옮겼다.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버드를 한 모금 빨아 올렸다.??금새 새빨간 입술이 촉촉하게 반짝였다.
“하지만...”
“뭐?”
“오빠. 오빠라구 불러도 되지요? 아까 그 차 오빠 건가요?
“응.”
“제법이네. 오빠 정도라면... 여자들 만나는데 별루 어려울 일은 없을거예요. 있잖아요? 먼저 무게를 턱 잡고, 즐거운가요? 오빠처럼 처음부터 반말하면 기분 드러우니까, 그렇게 묻고 나서, 누구랑 오셨나요? 그러는 거야. 이봐요. 오라버니, 여자가 담배를 물면 불을 줘야지...”

“근데 오빠는 늘 J&B 마시나요?”
“응.”
“그 정도면 충분해. 그냥 잠시 한 10분쯤 함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그리고 전화번호라도 받아두면 돼. 하지만 명심할 것은 부킹은 여자애가 왔지만 선택을 남자가 하는 것은 아니야. 다음 날 애프터를 하고 안하고는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선택이라구요.”
뽀얗게 앳된 턱을 조금 당겨 올린 그녀는 예뻤고 어딘지 모르게 자부심까지 슬며시 엿보였다.
“우리 후배 소개해 드릴까요? 아주 예쁜데...”
“아니 됐어. 충고 고마워...”
어린 스승과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머리 위로 첫 번째 아치 식 石橋(석교)가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제법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해왔지만 세상에는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內密(내밀)한 어둠 속의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사이키델릭 화장실의 거울에서는 정신을 차릴 수도 없게 가슴속에 숨어 있던 비밀들이 마구 튀어나오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유람선은 지나치게 빠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運河(운하)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흘러가고 뱃머리에서 갈라져 나온 물결은 길게 주름을 만들며 수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앞은 私娼街(사창가)가 끝없이 펼쳐졌다. 창백하게 하얀 피부를 지닌全裸(전라)의 여인들이 물고기 같은 춤을 추며 유람선을 향하여 손을 흔들었고 검은 피부의 여인은 유리창에 엉덩이를 대고 좌우로 비벼대고 있었다.

영어로 설명하는 안내인이 ‘Photo!’ 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관광객들이 팟 팟!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안내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잘 들어요. 절대로 사진을 찍지 말란 말이오!”

2. 유혹

암스테르담에서 프랑크푸르트를 통해 돌아온 것은 5월이었다. 한 여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조각을 전공하며 로뎅을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혜지였다.

“彫刻(조각)으로 내 이름을 만들어 당당하게 살고 싶어요.”
“까미유끄로델이 알면 질투하겠군.”
“바보같이, 죽은 사람을 질투하나요? 그의 천재성을 사랑하는 것뿐이에요.”
“그래 고마운 일이로군. 만약 로뎅이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에 감사하는 東洋(동양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 로뎅은 어떤 기분일까?”
어쩐지 싱글거리며 웃는 치아가 하얗게 빛나는 해골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로뎅에게는 작품이 남았고, 어찌되었든 그에게 생명은 지난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내가 상관할 것은 또 뭐람.

“나는 나 자신이 파괴될 정도의 지독한 사랑을 원해요. 나는 그 동안 당신을 기다려 온 것일까요?”
DEEP PINK 의 원피스 속에서 빛나는 혜지는 그렇게 말했고, 함께 그녀의 원룸으로 갔다. 두 잔의 커피를 들고 다가오는 그녀를 깊숙이 안았다.
“움직이면 카펫에 커피를 쏟게 될 걸?”
혜지의 목 언저리에 코를 박아 넣고 말했다.
“뜨거운 커피로 샴푸 한번 해 보실래요?”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내 귀에 입술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그러니까 소름이 목 언저리를 달리도록 간지럽고 나지막하게 달콤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당신을 어쩌지요?”
“사랑한대며?”
“사랑해요.”
“그러면 되잖아.”
“그러면 되나요?”
“그렇지...”

혜지는 나의 품속에서 솜씨 좋게 빙그르르 돌았고, 화장대 위에 두 잔의 커피를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고 내려놓았다. 다시 정면으로 가볍게 몸을 돌린 그녀는 나를 안아 퀸 사이즈의 침대로 쓰러뜨렸다. 일렁이는 침대 위에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올린 그녀는 잠시 멈추었고 대기 중의 모든 것도 함께 멈추었다. 푸른색이 감도는 날카로운 빛이 눈동자를 지나갔다.

“후회 같은 것은 평생 하지 않을 거지요? 약속해요.”
“그런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없어. 우리는 神(신)이 아니잖아.”
혜지는 아프게 귓불을 물었고, 나는 그녀를 안은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커피는 조그만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그리고 보람 없이 식어 버렸다. 두 손바닥을 모아 세면대로부터 물을 담아 얼굴에 끼얹었다. 물줄기가 얼굴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이 순간순간 멈추어 서며 정지동작으로 보였다. 사이키델릭의 조명은 서서히 어둠 쪽이 길어졌다.

“이번 축제 때, 우리 科(과) 친구들 소개 해줄게요.”
5월 셋째 주의 축제에서 한 여인과 인사했다.
“같은 과 친구의 여자친구예요.”
“김지영 입니다.”
악수하는 손끝에는, 얼굴의 절반은 눈동자가 차지 한 것 같은 어쩐지 라틴계의 이미지를 주는 아름다운 여인이 미동도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지영의 조금 취한 듯한 눈동자가 감정 없이 열려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한 줄기 지나갔다. 나는 의식적으로 눈길을 피해야만 했다. 옆자리에서 조각 전공학생들이 반은 영어, 반은 서툰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어요?”
“보스턴!”
“그럼 보스턴 백이 왜 보스턴 백인지 알겠네.”
“어머 그런 건 몰라요.”
“그럼 안주 하나 사.”
“뭔가 억울한걸요?”
일부러 혜지의 친구와 농담을 술잔에 담아 이야기를 하고 나서 다시 보았을 때에도 지영의 검은 눈동자는 크게 열린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폭죽이 터지고 스피커로 주위를 두드리는 듯한 댄스 음악이 공간을 점령하자, 누군가가 花壇(화단) 위로 뛰어올라 춤을 추었다. 하얀 목련의 꽃가지 같이 목이 긴 아름다운 여인의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 아래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을 때, 지영이 조용히 물었다.
“여자친구를 곁에 두고 바람을 피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까?”
“그럼 남자친구를 두고 바람을 피는 여자는 어때요?”
“마찬가지겠지.”
다시 바람이 불어 왔다. 따스하고 투명한 바람이었다.
“술 한 잔 주세요.”
“우리 건배하지요.”
“아니, 아니 그러지 말고 다같이 건배!”
10개쯤의 종이컵이 검은 밤하늘 위로 치켜 올려졌다.
“어쨌건 5월이고, 축제니까! 그리고 아름다운 봄날의 밤이니까...”
아스라한 장미 향기가 공간 어디에나 넘실거렸다.????

겨우 택시를 잡아 혜지의 원룸으로 돌아가자, 지영이 혜지의 친구에게 매달린 채로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이런 어찌된 일이지?”
“이 언니 너무 취해서 정신이 없어요. 할 수 없이 데려 왔어요, 학교에 버리고 올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혜지의 친구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재빠르게 말했다.
“그건 그렇군.”
이미 여러 차례 토했다는 혜지를 어깨에 걸친 채, 길에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정신을 차린 혜지와 혜지의 친구, 그리고 지영과 함께 몇 캔의 맥주를 바닥에 놓았다.
“남자친구는?”
“그 자식? 보스톤을 따라갔어요.”??
“휴학 중 이예요. 아까 그 자식이랑 다투었죠. 더러운 자식이에요. 내가 바보인가 봐요.”
지영은 단숨에 맥주 캔을 비웠고, 잠시 후 비틀거리면서 침대로 가서 모래더미처럼 무너졌다. 혜지 역시 다시 춤을 추듯 침대로 가서 침대가 출렁거릴 정도로 누워버렸다.
“나도 잘래요.”
혜지의 친구도 침대로 올라가 버리고 바닥엔 나 혼자가 되었다. ‘어쩌지?’ 시간은 새벽 2시가 되었고 베란다 너머로는 별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함부로 놓아둔 바비 인형들 같이 침대에 버려져 있었다. 어둠 속의 침대위에는 상아 같이 빛나는 6개의 다리들이 가지런히 늘어져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통과중인 매혹적인 존재들. 가슴 속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지나치게 확대되어 들려왔다. 노란 가로등 곁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어쩐지 현실감이 별로 없는 몽롱한 5월의 밤이었다.

“우욱!”
침대 쪽에서 토하는 소리가 났다. 지영이었다. 왼손으로 입을 막고 상체를 일으켜 앉아 있었다. 셔츠가 조금 젖어 있었다. 커다란 눈 속에서 동공이 풀린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오른손을 잡고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내린 뒤 화장실로 갔다. 등을 두드려 주었다.
“너무 많이 마셨군.”
그러나 찬물로 입을 몇 번 헹군 다음, 지영은 더 이상 토하지 않았다. 휘청이는 몸을 세면대에 기댄 채 거울을 바라보았다. 아니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았다. 밀폐된 공간인데도 어쩐지 바람이 한 줄기 지나는 것 같았다.
“이거 빨아야겠네.”
그녀는 갑자기 셔츠를 벗어 버렸다. 대리석 같이 매끄럽게 빛을 반사하는 어깨 때문에 갑자기 화장실이 환해져 버렸다.
“어! 이런. 물론 내일 입으려면 빨아야겠지만...”??
흔들리던 지영의 눈동자가 이윽고 조용히 고정되었다.

“나 갖고 싶어?”
“무슨 소리지?”
“나 갖고 싶으냐고?”
“그건...”
“말해요!”
“그래, 거짓 없이 말한다면, 물론! 남자라면 누가 너를 마다하겠어? 169Cm에 50Kg 남짓. 우윳빛 피부, 물결같이 흔들리는??머리카락과 아름다운 눈동자. 그런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알구 있잖아. 난 여자 친구가 있어. 여긴 그녀의 집이구.”
“그러니까, 갖고 싶다는 말이군.”
내 말을 무시하고 잘라버린 그녀는 화장실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스스럼없이??내 지퍼를 내렸다.
“잠깐! 뭐야? 바로 문 밖에서 다들 자고 있다구.”
“그러니까 조용히 해요.”
그녀는 낮게 으르렁거렸다.

펠라치오를 하는 지영의 뽀얀 어깨는, 닿은 손가락이 데어 버릴 정도로 뜨거웠다. 그녀에게 닿은 몸의 모든 부분이 모조리 데어 버릴 정도로 그녀는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녀의 열에 들뜬 신음이 배어 나오는 입을 막는 동작밖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입을 막힌 채 미끄럽게 움직이는 여인과 당황하고 난처해하는 한 사내가 거울 속에서 난폭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친구를 곁에 두고 바람을 피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해요?’??
아까 지영이 던진 말이 자꾸만 귓전을 맴돌았다. 밀폐된 공간, 장미 향기가 지나치게 강했다. 숨을 쉬기가 자꾸만 힘들어 졌다.
‘여자친구를 곁에 두고 바람을 피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구? 제기랄...’
주위가 어두워졌다. 몇 번째인가의 아치 식 석교아래를 지나는 모양이었다.

가을이 되었다. 시간은 한결같이 모든 것을 매몰차게 뒤로하였다. 마무리가 되고 난 이후에야, 언제나 착각이었다. 라고 판단이 되는 사랑은 이미 꿈을 찾아 떠났다.
“내겐 시간이 필요해요. 해야 할 일이 많아요. 사랑해요. 하지만 당신을 기다릴 수도 나를 기다려 달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쩌지?”
“멈춰요. 이곳에서 이대로...”
혜지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별은 눈앞에 와 있었다. 사랑은 늘 그런 식이었다. 다가오거나 멀어지거나,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전화가 울렸다. 마른 음성으로 지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그녀와 나는 일정한 境界(경계)지역에 있었다. 커피를 마시거나 하는 정도의,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처럼 해야만 하는 지역에 마주 서 있었다. 그리고 연결된 어떤 사람, 그러니까 나의 사랑도 떠났다. 이젠 그 가벼운 이유마저 의미가 사라진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연락하지 말자구...”
“하지만 당신의 그녀는 이미 떠났잖아요.”
“그렇다고 너를 만날 수는 없어. 너완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시간이 필요해. 나를 내버려둬.”
손에든 전화기의 플립을 덮자, 내가 머문 공간은 다시 검은 베일 속으로 얼어붙었다. 나는 시트를 머리 위로 끌어 올렸다.
‘제발 가만히 좀 두라고...’ 몇 번이나 전화가 울렸다. 밤 11시가 넘었다. 전화를 받았다.

“당장에 나를 데리러 오지 않으면 아무 남자랑 자버리고 말걸?”

“그런 짓은 그만둬... 내게 왜 이러지?”
신촌은 늦은 밤인데도 지나치게 밝았다. 깊어지는 가을이 젊은이들의 가슴에 마른 낙엽의 모닥불이라도 지펴 버렸는지 아무도 잠을 자지 않는 것 같았다. 태국의 어느 마을처럼 모조리 大麻草(대마초)라도 피우고 혈기가 넘친 사람들 같이 둥둥 공간에 떠다니고들 있었다. 지영은 이미 많이 취해 있었다.
“진작 데리러 오지. 취해 버렸잖아요.”
“전화하지 말랬지.”
“내가 아무나하고 자도 좋아요? 우리 과 복학생 선배들, 오늘 내가 점점 취하니까. 다들 늑대 수준이더군요...”
“나완 상관없는 일이야. 넌 아름답잖아. 지나치게 영리하고... 그러니까 당연할 수도 있지.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지?”
“Ok! 그럼 숨겨둔 여인으로 해 줘요. 그녀를 만나든 누구랑 사랑하든 나는 그런 것 상관이 없어요. 가끔씩이라도 전화하고 만나고 그리고 안아줘요. 나는 그 정도라도 좋아.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이 어디에 누구와 있든 당신의 일부는 내거야.”
“그래? 아마 나는 너의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겠지, 그러니까 나 하나 정도는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이러니까 남자들은 늘 어린애라니깐, 여자를 조금도 몰라요. 멍청이들.”
눈에 푸른빛을 띠며 미묘한 미소를 입술에 걸고 지영은 말했다. 동그랗게 뜬 두 눈에서 ‘주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고여 나온 눈물이, 볼을 타고 방울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엷은 미소로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창 밖에선 대형 네온사인의 현란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네온의 빛을 반사하며 계속해서 기이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랑해요.”
“하지만 나는 절대로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어.”??
지영는 더욱 깊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린 시절 남의 눈을 피하여 학교 뒷??담장 아래에서 키우던 토끼를 품에 안은 것 같은 가벼운 바람 한 줄기가 손가락 사이로 지나갔다.

“뭐가 사랑이란 거야! 이런 게 도대체 어떻게...”

3. 전쟁

“당신을 갖고 싶어요.”
“이젠 그만해.”
“여기 지직스예요. 나오세요.”
“싫어. 그럴 이유 없어.”
“나오지 않으면 안돼요. 내가 그쪽으로 갈까요?”
“그만둬.”
검은 인테리어의 지직스는 Neon Blue의 조명을 대형 유리벽에 감고 있었다.
“일층 화장실은 혼잡해요. 5층 화장실로 가요. 무서우니까 함께 가줘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지영은 다시 천천히 풀 섶을 지나는 뱀의 움직임으로 온몸을 기대어왔다. 화장실은 비어 있었다.
“이리로...”
밤이 어지러워졌다.
“잠깐! 누군가가 들어왔어.”
또각 거리는 힐의 발자국 소리가 잠시 멈추어 섰다.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돌리는 소리. 물이 쏟아지는 소리...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조금 더 은밀해 졌을 뿐이었다. 지영은 거침없이 절정의 순간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었다.
(이봐 잠시 멈추라고... 누군가가 들어와 있잖아...)??
(그게 무서워요?)

“이제부터 당신을 한 순간도 놓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사귀는 것 아니에요. 우리 그런 일은 하지 마요, 지금이 좋잖아요. 그럼 됐지요?”
“그만둬... 제발”
“그래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이젠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너를 신뢰할 수는 없어.”
“상관없어요. 지난번 남자친구는 헤어지자고 말해 두었어요.”
“너무 심했군.”
“심한 것은 당신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을 절대로 놓아 줄 수는 없어요.”
“그렇게 집요한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어. 스스로 어딘가가 조금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니?”
순간 지영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두 눈 가득히 눈물을 담았다. 그녀에게 새로 생긴 상처에서 배어 나오는 아픔이 전해져 왔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Neon에 반사되어 붉고 푸른색으로 얼룩졌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늘 어쩔 수가 없다. 여자의 눈물은 일종의 덫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해 겨울은 모든 것이 그대로 얼어붙고, 정지된 채였다.

“우리 떠나자...”
“어디로요?”
“홍콩!”

“Air Club이라고 들어보았어?”
“Air Club?”
“Air Club!”
“그게 뭐지요?”
“흠... 비행 중인 항공기의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고 나서 스스로 Air Club에 가입했다고들 한대. 유럽엔 그런 승객들 때문에 난리래더군. 항공사들마다 골머리래.”
“해 봐요.”
“뭐?”
“우리도 Air Club에 가입해요.”
“이런...”

‘고오오오...’ 일정한 排氣(배기)음이 울리는, 보잉기의 화장실은 작은 진동과 뜨거운 열기로 숨도 쉴 수 없었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엷은 판넬의 벽에 쿵! 하고 부딪치곤 했다.
“이러다 화재 경보라도 울리는 것 아닐까?”
“제발 멈추지 말아줘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오자, 맨 뒷좌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명의 중국인 스튜어디스들이 동그랗게 뜬눈으로 바라보았다. 체포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뒤통수에 와서 박히는 視線(시선)이 상당한 따가움으로 좁은 기내 복도를 내내 따라왔다.

홍콩의 거리는 쌀쌀했다. 舊正(구정)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란한 조명들이 온통 빌딩들을 감싸고 있었다. 눈에 익지 않은 한자들과 묘하게 차가운 공기와 혼합된 습기가 스멀거리며 어깨 죽지를 차갑게 파고들었다.
“홍콩에서 凍死(동사)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것을 알아?”
“설마 이정도 추위에...”
“영상 13도 가량에서도 사람은 동사해, 低 體溫(저체온)으로... 이곳의 건물들은 난방장치라는 것이 없어. 겨울에도 몸을 녹일 곳이 없지. 늘 에어컨을 틀어야 습기를 제거할 수 있고. 그래서 술 취한 사람들이 길에서 잠을 자다가 저 체온으로 얼어 죽는 거야.”
“그렇군요.”
“아마 사랑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거야.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도 잘 살아왔고, 분명히 그 상대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잘 살아 갈 수 있어. 하지만 사랑의 沸騰點(비등점)에서 조금이라도 낮아지거나 이별이 찾아오면 사람은 때로 입안에 청산가리를 털어 넣거나, 총알을 쑤셔 넣거나 하지. 아니면 몸에 병이 생긴 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먹을 수 없고,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하구...”
“알구 있어요.”
“글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정말이에요.”

빅토리아 피이크의 정상에서 홍콩의 夜景(야경)을 바라보는 지영의 눈동자 안에 별이 떠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였다. ‘사랑... 현실일까? 그리고 정말일까?’ 시간이 흘러가야만 알 수 있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무척 답답한 일이었다. 그때엔 그랬다.

“네. 네. 알겠어요.”
새벽에 호텔로 걸려온 전화는 지영의 집이었다.
“뭐지?”
“합격했대요. 그 벤처 캐피털... 신입사원 연수를 받으래요. 돌아가야겠어요.”
“내일 아침에?”
“네.”
“중요해?”
“중요해요.”
“할 수 없군. 하지만 이번 여행은 너를 위하여 온 것이야. 알구 있어?”
“미안해요.”

홍콩 공항의 라이트 형제가 만든 것 같은 실물크기의 노란 複葉機(복엽기) 아래에서 지영은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녀를 만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녀는 그 커다란 눈망울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에게 미세한 자신만의 구분으로 눈물의 종류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그 종류를 단 하나도 알지 못한 것이 늘 혼란이었다.

회색으로 설계된 공항의 공간은 잿빛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지영은 곧바로 테헤란 로의 혼잡으로 진입했고, 나는 마카오로 떠났다. 시간은 충분했다. Senado 광장의 타일 위에 부랑자 같이 앉았다. 포장된 물결 모양 모자이크 타일로 위에 커다란 소시지와 하이네켄을 놓고 노을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다. 아직은 그리움 같은 것이 생기기 이전이니까, 그 정도라면...’

그러나 내내 머리 속을 떠도는 지영으로 성 바오로 성당까지의 좁은 골목길은 쓸쓸했다. 인파가 너무 많아 어깨를 스치면서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백인 청년들의 틈에 끼어서 짧은 산책을 하면서도 어깨가 시릴 정도로 쓸쓸했다.

“커피 Please!”
돌아오는 마카오 항공의 기내에서 나는 가슴속에서 조그맣게 움츠린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뭔가 잘 못되고 있다. 이런 게 아니야.’ 분명하게 바로 잡아야 할 것을 나는 방치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력한 放置(방치)를 해오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몇 번이고 전화기를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혜지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아직 수첩에는 지워지지 않은 몇 개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뚜우우,’ 세 번의 신호가 울린 후 혜지의 친구가 받았다.
“나 기억하겠어?”
“아 네...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세요?”
편안하지 않은 음성이었다.
“미안해 용건만 말할게. 혜지는?”
“혜지는 며칠 전 한국을 떠났어요.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어요?”
“해봐.”
“이젠 잊으세요. 그러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녀의 친구는 마른 음성으로 바스락 바스락 중얼거렸다.
“그리고...”
“뭐지?”
“홍콩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지요?”
“뭐라구?”
“혜지가 피크 트램에 함께 탔었대요. 맨 뒷자리요.”
지영과 나는 제일 앞자리였다. ‘맙소사...’

좋은 조건으로 입사를 한 지영은, 곧바로 여러 가지 유혹을 받기 시작했다. 퇴근 후 사장이 컨티넨탈 호텔의 펜트 하우스로 불러내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모 방송국의 중견 뉴스 앵커가 은근한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Jazz Bar에서 와인 한 잔 하실래요?] 뭐가 와인 한 잔이야? 멍청이들! 당신 또래의 남자들은 대개 그 모양들인가요?”
나는 그 은밀한 유혹들을 그녀가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지영의 동창생들이 유수한 외국 계 회사의 직원이나 귀에 익은 명칭의 법률회사 사내들과 교제를 시작했다고 지나가는 말투로 내게 말했을 때, 나는 드디어 망설이던 마음을 닫았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어. 그녀는 이제 다 알아. 지영에게 사랑 따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젊음과 함께 묻어 버려야 하는 바보 같은 짓이 될 것이다.’
예상대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을 주고받았다. 마치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이, 예상보다도 더 건조한 이별이었다.????

이별이후 지영과 나는 두 번을 더 만났다. 도시전체의 시계가 점점 느려지던 초여름의 어느 날, 몇 잔술에 정신이 흐물흐물 해져 있을 때였다. 무심코 전화를 집어 들었을 때, 익숙한 음성을 들었다. 술이 확 깨는 음성이었다.

“어디세요?”
“집인데. 잘 지내지?”
“곧 갈게요.”
“뭐? 갑자기 무슨 일이지?”
지영은 어쩐지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그리고 무너져 내리 듯 내게 안겨 왔다.
“안아주세요.”
“이봐 우리는 헤어진 것 맞잖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고. 왜 이러는 거야?”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여자가 남자의 위에 올라앉는 체위가 정신없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남자 친구와 섹스 하다가 갑자기 엑스터시가 와서 깜짝 놀랐대요. 우린 그 자세로 많이 하지 않았잖아요. 이젠 결혼 문제를 신경 써서 남자를 만나야 할 텐데, 아직 남자 친구도 없고 아무나 만나 섹스 할 수도 없고, 그러니 빨리 해줘요.”
현실은 우리가 헤어져야만 할 이유를 수 없이 양산해 냈지만, 몸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며칠 더 이별을 연기했을 뿐이다.

또 한번은 두어 달이 더 지난 후였다. 새로운 계약건과 I.M.F.의 후유증을 힘겹게 관통하고 있던 시기였다. 전화가 왔다. 동감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임재범의 노래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새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와 빨리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구요. 곧장 당신에게 달려오고 싶었어요.”
차에 오르자 지영은 세상이 다 떠내려 갈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검은 마스카라가 눈자위에 번졌다. 뭔가 그녀의 가슴 속에서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억일까? 시간일까? 미련 따위일까? 여하튼 뭔가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쩌면 이렇게 힘들지요? 처음부터 그냥 사귀지 말고 만나자고 했잖아요. 왜 당신은 늘 그 자리에서, 그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냔 말이에요. 바보 같은 사람.”
그날은 아주 오래 동안 고여 썩어버린, 검은 연못 속에서 지영을 안았던 것 같은 기억이다. 물고기도 어떤 생명체도 없는 사후경직의 세계. 몸짓은 언어를 잃었다. 어쩌면 그대로 전화를 끊고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회를 하기에도 우리는 너무 지쳐있었다.

나는 지영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둡고 濃密(농밀)한 것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는 햇살 좋은 카페 같은 곳에 앉아 있다가 문득 그녀를 떠올리곤 했다. ‘지영은 그녀의 방법대로 나를 사랑한 것은 아닐까?’ 그녀 역시 영혼 깊이 사랑을 했지만, 누구나가 그런 것처럼 어렸고, 방법을 몰랐고, 그래서 서툴고 위험한 방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사랑을 위하여, 자신의 사랑을 위하여, 자신만의 방법으로...

우리가 사랑한 것은 누구 한사람만의 일방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의 방법이 묘한 조화를 이루거나 부딪치고 부서진 것이다. 자신의 방법으로 상대방을 사랑해서 때로 기쁨을 주고 때로 상처를 입힌다. 아마 지영은 자신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사랑한, 그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인가?

잠깐 사이키델릭 화장실이 다시 밝음 쪽에 머물 때, 아직도 몇 번째인지 모를 아치 식 石橋(석교)의 아래로 유람선은 흘러갔다. 나는 머무를 만큼 머물렀다.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게 깊숙이 가라앉았다.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수화기에서는 익숙한 음성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야. 잘 지냈어?”
커피 잔을 들여다 볼 만큼의 시간이 정지되었다가 다시 망설이듯 흘렀다.
“생각보다는 괜찮았어요. 홍콩에서는 그녀의 곁에서 무척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술을... 안 드시고는 전화할 수 없나요?”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고... 그 정도는 보아 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여름에 떠나요. 5년 정도는 있을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아예 뉴욕에 머물러 살게 될지도 몰라요. 당신 더 기다릴 수는 없었나요?”
“하지만, 이제는 분명히 이별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저는 행복해 질 거예요. 당신도 될 수 있으면 행복하시기를 바래요.”

일단락이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식으로 여자 애는 여인이 되고 생각보다 23배쯤 강해진다. 순간 나는 귀를 막았다. 눈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아무리 눈을 세게 감아도 선혈이 흐르는 눈동자는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망막 안의 검붉은 스크린에 印畵(인화)라도 된 듯이, 검은 비밀은 계속해서 슬라이드처럼 과거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自愧(자괴) 감이 가슴 속 어디엔가 숨겨진 정화조에서 부글거리며 괴어 들고 있었다. 심장에는 혜지의 시간이 깨어져 덜그럭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사이키델릭 화장실의 형광등은 검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명멸하는 공간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거울 속의 인물은 이제 희미한 발광물질이 되어 망막에 남았다. 그리고 손등을 타고 흐르던 물소리는 ‘행복하시기를 바래요.’ 라고 푸석푸석하게 말을 던지던 혜지의 음성으로 바뀌었다.

커다란 CF 광고판 위에서 웃고 있는 민수의 얼굴 앞을 지난다. 그 얼굴이 내 키보다도 크다. 그는 이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제로 그만한 크기의 격차를 지닌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난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의 那落(나락)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잠시 머무른 사이 주변의 사람들은 성장을 계속한다. 내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사고처럼 누군가의 자아를 멈추게 하는 것.] 때로 그렇게 지칭되어도 되는 것일까? 아무 짓 하지 않아도 시간은 우리를 세탁기 속에 넣고 마구 돌려??버린다.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그런 것은 처음부터 의미가 없다. 도저히 감당 못할 상황으로 넋을 잃고 맴도는 시간 속에 우리는 터무니없이 쓸쓸한 자책을 한다. 뭐가 잘 못된 것일까? 모두들 말한다.
‘사랑은 전쟁이다.’
일부분은 맞다. 우리는 각자의 젊음과 욕망, 그 혼잡한 시간 속에 지독한 전쟁을 겪은 것이다. 그보다 더 깊은 상처의 전쟁이 또 어디 있으랴?
‘죄인? 전쟁 중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것도 그럴 듯 하다.

나는 손에 묻은 물을 닦지도 않은 채 화장실 문을 열었다. 방금 100미터를 전력질주라도 한 듯 숨이 턱에 차게 가빴다. 벽에 붙은 스위치를 끄자, 세상은 잠깐 불투명하게 흐려졌다가 맑은 일상으로 돌아 왔다. 나는 마지막 아치 식 石橋(석교)까지 다 지나온 것일까? 암스테르담의 석교를 통과하며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기억해 내려 해도 그저 다리가 탁한 녹색의 물위에 만들어 낸 쓸쓸한 그늘이 머리 위를 천천히 지나던 막연한 느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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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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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9

김명기님의 댓글

끝까지 읽으신 분들은 꼭 감상을 적어 주실 것! (참조하게...) ^~^
길어서 어쩌구 하시는 분은 절대로 침묵하실것! (협박!) ㅎㅎㅎ

adam님의 댓글

글쎄요..그동안의 명기형의 글에선 느낄 수 없던 야릇한 상상을 아니 오감을 자극하고도 남을 만한 글귀들이 눈에 거슬리네요. 섹스라던가 체위 라던가 그런 단어나 묘사 때문만은 아닐겁니다. 적어도 그동안의 명기형의 글에선 삶의 향기와 인간의 내음을 느꼈거든요. 인간의 내음..흠..이런게 인간의 내음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기도 하지만...^^; 명기형..궁금한거 물어봐두 될런지요? 사진속의 검정 원피스의 인물 그 분(?)은 아니겠지요?

김명기님의 댓글

어쩌면 현실은 소설 보다도 더 원초적이곤 하지.
사진 속의 여인? 절대 아니지. 지난 번 책 쓸때 부산의 보일라 팀하고 광안리에 사진 찍다가 좋은 샷이 나온 것 뿐이야. 다리가 아주 예뻐서... ^~^

adam님의 댓글

연출된(?) 사진이군요. 명기형의 그 분과는 무관한..그래도 제법 분위기있네요.^^

iceberg님의 댓글

저도 다 읽었거든요...

미모의 여인과 다른건 몰라도 돈이 아쉽지 않은 남자가 만나 청담동 일대를 배경으로 몽환적인 삶을 사는 모습인것 같네요. 원초적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낮에는 아마도 그들의 원초적 모습을 적당히 가려줄 사회적 지위와 부가 있고, 밤에는 그들이 그날 그날의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게 살수 있도록 수많은 멋진 바와 근사한 그들만의 아지트가 그들의 삶을 써포트를 해주겠지요.
읽고 난 느낌은 이 글이 센슈얼하다는 것과 충분히 일어날 것 같은 일이라는것, 그 두가지 입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어쩌면 그들은 그들대로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결국 지나치게 허무한 것들을 좆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종의 꿈이지요... 탈수를 일으키게 하는...

잿빛하늘님의 댓글

주인공인 '나'에겐 책임감 같은 건 없군요.
우유부단한 지식인의 전형인가요?
원초적 본능을 자신의 지위와 체면때문에 숨기고 있다가 결국 저질러진 일든은 모두 자의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어난 일들로 묘사되는군요. 그리곤 자신은 중심(?)을 잃지 않은양....

아무튼 느낌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섹스와 그 뒤에 밀려오는 허무함...

김명기님의 댓글

연출보다는 우연의 소산이지... ^~^

IDMAKER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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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a 1,105 0 0 2004.05.08
영환군 1,036 0 0 2004.05.08
도희 847 0 0 2004.05.08
O리발 2,054 0 0 2004.05.08
향기 1,301 0 0 2004.05.08
사알짜기 836 0 0 2004.05.08
.maya 972 0 0 2004.05.08
noe 967 0 0 2004.05.07
향기 788 0 0 2004.05.07
초록이 743 0 0 2004.05.07
석가믿는요괴 675 0 0 2004.05.07
.maya 952 0 0 2004.05.07
조건하 788 0 0 2004.05.07
윤미정 827 0 0 2004.05.07
하얀빗줄기 894 0 0 2004.05.07
영환군 871 0 0 2004.05.07
네잎클로버 1,182 0 0 2004.05.06
효효! 879 0 0 2004.05.06
hongwu 922 0 0 2004.05.06
yamg 815 0 0 2004.05.06
상희 691 0 0 2004.05.05
영환군 1,616 0 0 2004.05.05
허인규 787 0 0 2004.05.05
김명기 1,435 0 0 2004.05.05
(酎)클래식 986 0 0 2004.05.04
영쓰 1,096 0 0 2004.05.04
김미정 919 0 0 2004.05.04
윤미정 1,084 0 0 2004.05.04
초록이 885 0 0 2004.05.04
yamg 817 0 0 2004.05.03
초록이 734 0 0 2004.05.03
김명기 1,421 0 0 2004.05.03
이준언 767 0 0 2004.05.03
윤미정 744 0 0 2004.05.02
hotdog 766 0 0 2004.05.02
영환군 829 0 0 2004.05.02
네잎클로버 965 0 0 2004.05.01
막강전투조 791 0 0 2004.05.01
석가믿는요괴 795 0 0 2004.05.01
정지영 848 0 0 2004.04.30
초록이 725 0 0 2004.04.30
mug-mania 867 0 0 2004.04.30
4ebMac 907 0 0 2004.04.29
팀장님 918 0 0 2004.04.29
김명기 1,592 0 0 2004.04.29
김명기 804 0 0 2004.04.29
박철오 838 0 0 2004.04.28
하양이 838 0 0 2004.04.28
하양이 797 0 0 2004.04.28
하양이 875 0 0 2004.04.28
★루 812 0 0 2004.04.28
★루 827 0 0 2004.04.28
★루 864 0 0 2004.04.28
★루 916 0 0 2004.04.28
★루 953 0 0 2004.04.28
★루 727 0 0 2004.04.28
김영아 1,472 0 0 2004.04.27
나라 754 0 0 2004.04.27
김명기 819 0 0 2004.04.27
김명기 1,650 0 0 2004.04.27
김명기 1,800 0 0 2004.04.26
.maya 816 0 0 2004.04.26
★루 1,172 0 0 2004.04.26
향기 1,049 0 0 2004.04.26
김명기 844 0 0 2004.04.25
김종천 807 0 0 2004.04.24
김명기 797 0 0 2004.04.24
필승ROKMC먹깨비 752 0 0 2004.04.24
김명기 2,052 0 0 2004.04.23
젤리 689 0 0 2004.04.23
하양이 980 0 0 2004.04.23
두리 730 0 0 2004.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