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신뢰가 없으면 도약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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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인 말은, 천천히 장애물을 향해 단축구보로 달려간다. 연속 장애물(Oxer)의 높이 90㎝. 장애물과의 거리는 10여m.
이제 몇 발자국이면 말은 도약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전에 말은 판단할 것이다.
무게 78.5㎏인 나를 등에 태우고 장애물을 넘을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장애물 곁으로 회피할 것인가? 630g짜리 말의 뇌는 복잡하게 계산한다.
물론 등에 탄 나에게도 확신은 없다. 말은 지능을 가진 생물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만약 훈련이 없다면 어떤 말도 사람을 태우고 높은 장애물을 넘지 않을 것이다.
말은 이제 장애물 5m 앞으로 근접한다. 앞발을 높이 들고 장애물을 뛰어넘을 것인가? 아니면 급격히 방향을 틀어 나를 낙마시킬 것인가?
나는 이제 판단해야 한다. 말을 믿고 상체를 전경자세(Forward position)로 바꾸고, 말과 함께 장애물을 넘을 것인가?
말이 회피하여 낙마시킬 것을 예상, 투-포인트 자세를 유지한 채 급격한 방향전환에 대비할 것인가? 여기서 필요한 단어는 한가지다. '신뢰'.
인류에게는 예수를 거부하고 부정할 현명하고, 똑똑하고, 과학적인 이유가 수십억 가지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예수의 존재를 신뢰한다. 오직 믿음. 그 한 가지만이 예수를 존재하게 하고, 종교를 굳건히 버티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유, 논리 따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구나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 우리가 한탄하는 모든 문제들은, 서로의 틈을 갈라놓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이고, 똑똑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신뢰, 무조건적인 믿음이 우리 사이를 단단히 묶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신뢰가 깨지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신뢰는 가정과 사회를 떠받드는 반석이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 사이의 그것을 '정'이라고도 일컫는다.
하지만 현실은 자본주의 사회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돈에 기대려고 한다.
돈이 개입되면 신뢰해야 할 대상들은 심각한 적이 된다. 돈은 부부도, 친구도, 심지어 부모 자식 간도 원수로 만든다.
돈은 신뢰의 적이다. 돈으로 신뢰를 사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이미 만연하다."그 일은 잘 안 되었어요", "돈이 적었겠지"
돈으로 산 신뢰는, 더 큰 돈이 개입되면 과자부스러기처럼 간단히 부서진다.
드디어 말은 허공으로 치솟는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우리의 선조들은 비월(飛越)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마 말을 타고 세상을 솟구쳐 오르는 느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
마지막 순간, 나는 말을 신뢰했고 전경자세로 한껏 엎드려 말이 장애물을 넘기 쉽게 도왔다.
말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장애물 가운데로 도약했다. 이윽고 세상은 천천히 느려진다.
곧 우리는 안전하게 착지하고, 나는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드리며 칭찬할 것이다. 나는 말을 신뢰했지만, 말 역시 나를 믿고 마음껏 하늘로 뛰어오른 것이다.
잠시 후 말은 당근을, 나는 캔 맥주 한 개를 들이키며 함께 오늘 훈련의 성공을 자축할 것이다.
신뢰가 없으면 도약도 없다. 사랑도, 우정도, 가정도, 종교나 신마저도,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한다.
신뢰 없는 발전과 성장? 사상누각(沙上樓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