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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여자를 잘 몰라."

본문

"너는 여자를 잘 몰라."

가슴 언저리를 잔뜩 눌러 놓은 듯한 납빛 正午(정오)다. 시간은 느릿하게 저만치 앞서가고, 나는 그의 포로다운 몰골로 하루를 터벅거린다. 그와 나의 걸음 하나 하나는 시계의 내부에서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톱니바퀴의 단순하고 모호한 규칙에 다름 아니다. 꾸준하고, 게으르고, 아무런 의지도 없이 소모되는 허수아비의 하루다. 아니 그러고 보니 이 표현은 정확하지 않군.

나는 허수아비에게,

"당신의 하루는?"

하고 질문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냥 석양 무렵, 차창을 지나는 양수리 들녘의 허공에 둥둥 떠있는 허수아비의 시간을 바라본 제 3자의 시각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익숙한 시간이고, 익숙한 감정이다. 당신이 그리울 때 늘 이렇게 제대로 호흡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납빛 시간이 슬며시 곁에 다가서곤 하였다. 그러니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無聊(무료)한 듯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들이 그렇고, 몇 번이고 시계를 봐도 도대체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시계바늘이 그렇다. 시간은 인식할수록 느리게 흘러간다. 인식하지 않으려 애를 쓰면 더욱 더 느리게 흘러간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면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나, 잠깐만! 이라는 외침 따위는, 늘 떠나버린 버스의 뒤를 쫏는 허탈한 달음박질이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데에도 몇 번이고 정 반대의 입장을 대표하는 생각들이 胸中(흉중)을 오고간다. 무엇을 하건 올곧은 의지나 끈질긴 방향 감각 따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된 것이다.

스스로 중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삶에 생명력과 충만한 기쁨을 주는 단 하나의 등불이 꺼진 사내에게 '남은 생의 진지한 의미' 라는 순진한 목표는 대체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오후가 천천히 산을 넘어 떠날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결국 찾을 수는 없었다. 오후는 그대로 산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그렇게 무의미하게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는 것 자체가 작은 다행으로 다가왔다. 밤이 꿈을 꼼꼼하게 지워버리면 내일엔 또 다른 시간과 또 다른 일상이 다가올 것이다. 이 시대의 희망은 그런 남루한 것이었다.

낮은 너무 늙어 버리고 저녁은 아직 어린 시기, 기대는 너무 늙어 버리고 꿈은 조금 멀리 있는 無風地帶(무풍지대)의 그 어스름으로, 말을 타고 저수지를 돌아 나올 적에 하늘은 그림엽서가 되어 있었다.

나는 말을 멈추었다. 말은 살짝 머리를 돌려 나를 잠깐 바라보았다. 320도를 커버하는 그의 視野(시야)는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나를 살피는 것이다.

아마 의아한 것이리라. 늘 멈추던 곳이 아닌 길 한가운데에 멈추는 일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50을 조금 넘는 아이큐의 두뇌를 나름대로 부지런하게 굴려 보고 있을 것이다. 이윽고 나는 말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라도 말을 건네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누군가가 많이 그리운 모양이야."

"아주 오래 전에 이별했지. 시간은 충분했어. 그리고 다들 그러더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없던 일이 된다고. 그런데 뭔가가 잘 못 되었나봐, 아직 많이 그리워. 때로 숨이 멎을 정도야..."

말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미안, 이제 다시 가자."

말발굽을 따라 굽어진 길이 다시 조금씩 다가올 때, 나는 우편엽서 같은 하늘이 너무 고와서 멈추어 선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뭔데요?"

하고 飛越(비월)이가 하늘이 고울 때마다 멈추어 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살다가 하늘이 고울 때, 당신을 한번 살짝만 그리워하기. 그런 것은 당신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가 사랑 속에 있을 때, 한번도 이야기되지 않은 것이라서 나도 어떻게 해야 할른지 균형을 잡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이 우편엽서처럼 고운 어느 저녁엔 당신도 한 번쯤은 하늘을 바라보곤 할까? 알고있다. 결국 쓸데없는 이야기겠지

"너는 바보야! 여자들은 헤어지고 나면 이러저러하게 변한다구!"

그렇게 이별의 後暴風(후폭풍)으로 주변에서 들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모두 다 틀렸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 본다. 물론 적지 않은 여인들이 진짜 그런 식으로 남자들의 가슴에 커다란 못을 박아 넣었다고 하여도, 그리고 나 역시 아직 아물지 않은 못 자국이 남았다고 해도, 그래도 당신만은 정말로 그런 여자가 아니었으면 한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외로운 우리가 만나서 서로를 더 많이 외롭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상상도하고 싶지 않다.

"너는 여자를 잘 몰라."

여자인 친구가 내게 말했다.

"그래, 나는 알고 싶지 않아. 내가 믿고 있었던 진실이 실상은 진실이 아니었다고 하면, 나는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아. 이 세상의 누구라도 내게 진실 따위를 말하지 말아 줘! 내게 진실을 감당한 힘이 남아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우리가 만나서 사랑한 것! 그 이외의 진실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어. 그게 진실이야."

머리를 감싸쥔, 달이 창조해낸 둥근 조명아래의 무대에서 쓸쓸한 독백을 중얼거리는 사내인 내가 그렇게 어리석은 絶叫(절규)를 했다.

가로등이 켜지고 나뭇잎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아름다운 황금색 나무 아래에서 나는 별을 보았다. 내게도 가로등이 필요하다. 나의 삶이 다시 아름다운 생기를 지니도록 녹색이 짙어지는 잎새를 일시에 황금빛으로 빛나게 해줄 그런 생명 가득한 갈등이 필요하다.

나무 껍질을 천천히 쓸어 보았다. 거칠기는 해도 촉촉한 윤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 땅을 보았다. 이제 가로등 따위는 없는 것이다. 내 인생에 아름다운 황금 빛 조명이란 완전하게 고갈되었다. 영원할 것이라던 사랑은 사라지고, 영원한 어둠이 아침을 열고, 영원한 고독이 夕刊新聞(석간신문)을 대문 앞에 던져 놓듯이 쓸쓸한 저녁을 가져오고 있다. 

나는 커피 한잔이 切實(절실)했다. 요즘엔 무엇이 절실해 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런 따위의 절실함이 마음속을 기어다니면 그런 절실함의 정면에 스스로를 내 몰은 나 자신에게 슬그머니 화가 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커피 한잔 따위에 이토록 절실해 지는 자신이라니... 스스로가 너무나 바보 같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절실한 것은 절실한 것이다. 웬일인지 스스로를 속이기는 싫었다. 그리하여 나는 절실한 커피를 마셨다. 이윽고 절실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모든 것이 절실해져 버린 이 절박한 상황을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이 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봄이 시작될 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차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조용한 봄이었다. 그러니 이젠 조용히 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시간의 뒤편으로 퇴장하여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요컨대 봄이 스스로의 꼬리를 길게 드리울 때 나는 하루가 다르게 절실해 지고 있었던 것이다. 야아! 이번 봄은 되게 기네...

"서울은 이미 여름이에요. 여긴 숲이라서 공기가 더 차가운가 봐요."

그런가? 숲이라서 그런가? 그럼 이 숲에 있으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봄은 계속 되는 것인가? 그건 너무 싫구나...

천천히 숲의 달 그늘아래를 걷는 내게 절실한 밤 공기는 다가오고, 조금씩 발자국을 따라오는 절실한 별빛으로 나는 황폐해져 가고 있다. 발아래 낙엽이 채이는 소리, 어제 온 빗방울들이 맑은 시내가 되어 숲을 달려가는 소리가 절실하다.

내게 고갈되어 가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막다른 절실함으로 몰아대는 것은 무엇일까? 밤이 절실한 불면으로 자꾸만 끝을 알 수 없는 미로가 되어 가는 이유는?  시지프스의 신화가 되어 가는 원인은 무엇의 상실에 기인한 것일까?. 나의 질문은 검은 밤의 허공을 떠돌고, 가슴속의 진실은 우울한 발걸음으로 한밤중, 개가 짖는 먹먹한 울림으로 언제까지고 손닿는 거리에서 맴돌고 있다.

오늘밤은 조금 일찍 소주 한잔을 가슴에 부어야겠다. diana krall 의 I miss you so 정도면 오늘 그 절실한 하늘을 잊을 수 있을까? 우편 엽서 같이 예쁜 하늘은, 공들여서 잊어야 하니까. 그래야 길지 않은 뒤척임으로, 잠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나를 가볍게 눌러 어둠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을테니...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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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7

김명기님의 댓글

다시 보니 정말 기네요. 커피 라도 들면서 천천히 보시길,,, ^~^
(꼭 숙제 내좋은 선생님 기분이로군,)

여백님의 댓글

-,.-"

넵...

출근하자마자 들어온 케이머그 지금은 제목만 보고...
한 10분있다가 천천히... 커피음미함서... 잃어야쥐...

여백님의 댓글

여자란...
난 예전에 여자란 이런거라 생각했슴다..
-,.-"

여자란 내 손안에 있는 작은 새다.. 내가 손가락에 힘을 주면 죽어버리고..
내가 손을 펼치면 날아가버리는 새다..
그래 힘의 강약을 잘 조절해야한다..눈...

군데 나이 많이 먹은 세월깨나 먹었다는 여자가 말하더군여..

여자란 내 손바닥위에 놓여진 그릇이다.
여자란 손바닥위에 놓아두고 그저 바라봐야한다.
근데 어느순간 여자가 손바닥에서 떨어져 깨지면..
가차없이 버려라.
다시 주으려 들면 네가 다친다.

-,.-"

역쉬 어렵다눈...

난 떨어져도 한조각 한조각 다시 맞출수 있을 것 같다눈..
내 손, 내 발에 핏물이 고이고 흘러도..

요즘 강력본드 성능 좋다눈..
-,.-"

역쉬 남자는 여자를 잘몰라...d*,.*b

김명기님의 댓글

여자는 또 하나의 우주지요. 바로 나와 동일한 무게의 존재...
있는 그대로를 모두 인정하고 존중해 마지 않아야 할...

에리카님의 댓글

아무것도 모르는것
그것이 그것이 행복한 거랍니다..
에리카 여쏘요~~~
꺄하하~~~~~

김명기님의 댓글

실은 여자들은 자기도 자기를 잘 모르겠다고 한... ^~^

사람이있는풍경님의 댓글

평생을 알아도 모르는게 사람이라는데 누군가를 진정으로 안다는게 가능한 일일까요...단지 이해하려 노력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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