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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우주인의 빈 소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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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우주인의 빈 소주병...

잠시, 그러니까 막 펄펄뛰며 출발하는 버스처럼, 시간이 살아서 이동하는 것이 문득 느껴지는 동안, 달이 없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그것은 5분이었을 수도 있고 15분 일수도 있었다. 나의 신체에 생명이 깃 든 태초의 순간처럼, 그렇게 깨어나는 刹那(찰나)에 시간의 길이와 무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 내 삶에 최초의 기억은 무엇이었던가? 나의 뇌가 부팅을 하던 순간, Bios의 바로 뒤에 남은 최초의 기억은 어떤 것이었는가? '옛날에, 옛날에...' 라는 도입부가 없이, 쿵! 하고 멀리에서 대형 폭탄이 터지는 듯한 鈍重(둔중)함이 밀려와, 발 아래를 울리고 있었다.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그런 '잠시'였다.

나는 Chris rea의 On the beach 안에 있었고, 손에 든 술잔이 갑자기 싸늘하게 느껴졌다. 주변은 완전한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고, 귀뚜라미가 일정한 톤으로 백만 전 전부터 울고 있었다. 나는 양서류가 아니므로 당연히 축축하게 젖은 피부로 호흡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둠은 늘어진 팔 위를 기어다니다가 만년필에서 탈출한 검은 잉크처럼, 피부를 핥고 천천히 나의 내부로 스며들었다. 임종을 맞은 어느 포유류처럼 느린 호흡을 하는 나의 내부로, 수면을 지나는 파도가 영원히 닿지 못하는 해저로, 마치 입천장처럼 일정하고 뚜렷한 무늬를 지닌 모래 바닥 같은 나의 메마른 영혼에까지 어둠이 스며들었을 때, 나는 문득 진저리를 쳤다. 어둠과 추위는 절대로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쾌적한 가을의 고적한 밤에 뼈까지 스며드는 寒氣(한기)를 느끼고 있었다.

어깨위로 수은등을 하나 밝혔다. 피부에 닿는 온기는 아니겠지만 나는 나의 공간에 빛을 초대하고 싶었다. 수은등의 샤워 아래에서, 나는 아주 오래 전에 본 아폴로 우주선의 달착륙선을 담은 흑백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섰다. 그것이 사실의 전달인지, 꿈속의 꿈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불규칙한 떨림과 흔들리는 잔상으로 언제까지고 머리 속에서 Replay 되고 있다. 나는 발아래 작은 조약돌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는, 푸른빛의 그늘에 앉게 되었다. 발아래 지표는 수은등이 만든 작은 삼각형의 공간에서 재조립되었고, 과장된 빛과 어둠의 凹凸(요철)에 놓인 현실은 그대로 앙리 마티스의 파란 추상화가 되었다. 빛은 존재하게 되었지만, 한기는 집착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수은등이 만든 月面(월면)에 놓이게 되었다. 바닥도 보이지 않게 깊은 가을밤은, 행성의 외곽에 동그마니 놓일 쓸쓸한 우주인을 양산한다. 달이 '제자리에 있거나' 또는 '궤도를 이탈하였거나'를 따지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어슬렁거리며 月面(월면)을 걷는 Moon Walker(문 워커)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취한 손가락이 또닥거리는 낡은 타자기의 창백한 A4 용지위로 소주병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드리운다. 때로 빈 소주병은 '지나치게 비감한 고독'이라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달과 우주인의 빈 소주병... 가끔은 진공에서도, 소주병의 주둥이를 스치는 메마르고 공허한 바람소리는, 담배연기 속에 담겨 행선지를 알지 못하는 먼 우주여행을 하는 것이다.

여치 한 마리가  타자기에서 가볍게 흔들리는 종이 위로 날아들자,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빗줄기처럼 쏟아진다. 나는 그 고요한 風壓(풍압)에 옷깃이 가늘게 떨림을 느낀다. 비록 논리적이지는 못하다고 하여도, 달에는 바람이 불고, 그리하여 우리의 추억도 늘 제자리에 고정되지 못한 채, 정처 없는 여행자가 되곤 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앞에서 결연히 솟는 담배연기가 곧게 검은 어둠 속의 밤하늘로 빠르게 오르지만, 결국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오류 속으로 떠나게 되는 것처럼...

수은등에 비추어진 것은 무엇이나 무게를 상실한다. 형태와 존재 감은 실재하지만 어떤 사물도 무게를 지니지는 못한다.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아니다. 그리운 것도 고독한 것도 아니다. 달 빛 아래에서는 누구라도 그렇게 표백되고, 투영되고, 질량을 잃고, 한 쪽 날개가 떨어진 나비 같은 추락의 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그림자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질량을 지니지 못한 어떤 것이 되어 Neon Blue에 말끔하게 세탁되고 마는 것이다.

문득 발 아래가 들썩이는 것을 느낀다.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통나무 오두막집의 창들이 한밤에 찍은 사진처럼 殘像(잔상)을 남기며 기차의 흔들리는 차창이 되어 떠난다. 달빛은 그 안에 담긴 무엇이라도 졸리운 기적 소리에 실어, 어디론가 멀리 미련마저도 남지 못할 곳으로 떠나 보낸다. 물론 무게나 존재 감 따위는 처음부터 없는 것이니까, 달나라가 아닌 말머리 성운, 안드로메다, 은하계의 어디라도 가볍게 보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의 달빛은 우주의 어느 곳이라도 서둘러 떠날 수 있는 티켓을 그렇게 濫發(남발)한다. 그래도 지금, 어떤 해변으로도 떠나지 못한다.

타자기 위의 여치가 수은등 아래의 달나라로 빛을 찾아 뛰어들자,  발아래 엎드려 있던 복실이가 소리 없이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17도 가량 아래로 돌린 시선의 끝에서 벌어진 학살이었고 고요 속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나는 만류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하였으므로 책임을 벗어난 것일까? 반쯤 남은 여치의 몸은 고정되고, 또 다른 무생물이 되어 조약돌 틈새의 긴 그늘에 남아 버렸다.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것들은 언제나 그렇게 반쯤만 남은 것들이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억이나 현재가 되어 눈앞에 존재하는 것들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나름대로의 치유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장나 덜컥거리는 여치의 심장이 묽은 혈액을 쏟아내는 동안이라는 잠정적인 반 토막의 시간들은, 무의미한 진동이 되어 덜덜 떨리는 고통의 시간으로 연장되고, 유보되고, 지연된다.

이별이 다가오고 일상은 반 토막이 되어, 마침내 솟아난 혈액으로 달의 표면을 얼룩지게 할 때. 문제는 늘 그러한 불면의 시간들이었다. 반쯤 생존하고 반쯤 사망한 사랑으로, 달 빛 아래 홀로 서 본 기억을 지닌 자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방금 복실이에게 물어뜯긴 여치의 이름 같은 것은 말이다.

맨발로 달빛을 받아 Neon Blue로 빛나는 월 표면을 걷는다. 신발 두께에 익숙해진 발바닥엔 조그맣고 날카로운 통증이, 눈 위에 찍힌 흔적처럼 발자국을 따라 남는다. 때로 直立猿人(직립원인)의 삶은 발자국마다 짙은 고통으로 점철되는 것이다. 고통으로만 또 다른 고통을 지워낼 수 있는, 일시적이고 무모한 시도로 잉여시간을 채워야 하는 어리석음이, 깎아도 자라나는 손톱처럼 지겹게도 함께 하는 것이다.

"이제는 행복한가?" 라고 묻고 싶은 시간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라고 묻고 싶은 시간이 있다. '치유할 수 없는 반 토막의 사랑과 고독'이 당신이 이 행성에서 내게 전달하고 싶었던 유일한 것이었나? 그렇게 묻고 싶은 달빛 아래의 시간이 있다. 만약 그것이 궁극적으로 존재하여야만 하는 필연의 것들이었다면, 나는 당신의 작은 성공을 축하하고 싶다. 당신이 이룬 것은 충분히 축하 받아야만 할 어떤 것이다. 당신이 선물로 주고 간 '반 토막의 사랑과 고독'으로, 아직 창백한 달빛 속을 거니는 맨발의 우주인은 달착륙선을 닮은 투명한 소주 병 속에 진공 포장된 채, 그림자처럼 무게가 없는 온전한 모습으로 영원히 고독한 宇宙游泳(우주유영)을 하고 있으니까...


측백나무 숲을 따라간 길에서

www.allbaro.com


PS : 땅을 파고 있다는 행위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행동이다. 명백하고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두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왜 땅을 파고 있나요?", "일당을 벌기 위하여, 나를 위한 정원을 가꾸기 위하여"라는 답은 정답이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심심해서, 남의 땅에 ,남을 위해, 대가를 받지 않고 정원 만들기" 같은 것은 절대로 이해 될 수 없는 것이다. 낡은 타자기와 씨름하며 달빛이 전해 준 이야기를 남겨보려 애를 쓴다. "무엇을 하세요? ",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책을 쓰세요?", "아니오. 그냥 씁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명백하고 단순한 행위이다. 그러나 역시 모두에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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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5

iceberg님의 댓글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는 항상 두가지로 대답이 가능한것 같습니다. 생각하기에따라서...
밥을 굶은것도 아니구, 잠자리가 없는것두 아닌구, 집이 없는것이 아닌데두 불행하다구 생각하면 불행하잖아요. 하지만, 이것저것 갖추고 있지 않아도 마음이 행복하면 행복을 느끼는거고... 행복은 맘속에 있는거 같아요.

김명기님의 댓글

내가 나의  시간을 얼마나 살아 가고 있나? 늘 남의 뒷치닥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김명기님의 댓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가 행복의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과 재 작년에는 콘테이너 에서 말 한마리를 키우며 24시간을 내내 느긋하게 살아보았지요. 아아 그 자유로움 이라니...돈? 그런거 별로 필요 없어요.

adam님의 댓글

글을 쓴다는것..모두가 이해하지 못해도..한없는 기쁨입니다. ^^

넘힘든하루님의 댓글

이해는 같은 혹은 비슷한 경험을 통해서만 동요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냥... ” 그냥이라는 말을 들을때도 우리는 자신이 그냥이라는 말을 하던때의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경험만큼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대를 사랑하다면 경험이 없다해도 이해에 노력이 붙을 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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