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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통신 II

본문

산골통신 II

첫 번째 소식 – 웬 발칸 포?

서울 사람이 산골에 와 살면 심심할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서울깍쟁이도 산골에 오면 그저 서울 촌놈일 뿐이다. 산골 마을의 철물점에는 '멧돼지 퇴치기'도 판다. 멧돼지 퇴치기. 이건 밤길을 걷는 여자들이 치한을 쫒는데 응용될 수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몇 대 사다가 서울 촌놈들에게 팔아볼까?

오늘 농약가게에서 발칸 포를 보았다. 산골엔 신기한 것 투성이다.

어? 발칸 포네요.
무신? 파리모기 쫒는 기계다.

생긴 모습이 1/3로 축소된 발칸포를 꼭 닮았다. 6개의 포신도 핑핑 돌아간다. 그러나 이 발칸 포는 비행기가 아닌 파리와 모기 등 해충을 잡는다. 서울 촌놈은 그저 입만 벌릴 수 밖에.

TV 속에서, 늘 붕붕 거리며 한발에 몇 십만 원이라는 포탄을 허공에 날려버리며 연습 사격중인 발칸 포. 전쟁의 아수라장에서 예광탄을 날리며 인간의 목숨을 노리는 발칸 포. 다시 생각해보면 국민의 혈세만 펑펑 쓰는 최신형 발칸 포 따위보다, 이 해충 퇴치 발칸 포는 인간에게 훨씬 유용하다. 얼마나 기특한가?

두 번째 소식 - 저택

저기 저 집을 봐라.
어이구 대단하군요.
응, 36억 들었다 카제.
산골의 아방궁이네요.
저 집 영감이 국민학교도 못나왔다. 돈에 포원이 져서 평생 돈만 벌었제. 건설회사를 해서 수천억을 모았다카이. D건설도 저 집안 사돈이다. 얼마 전엔 사위에게 골프장 지어줬다카이. 장사 자알 된다카데.
자수성가로 코리안 드림을 이루었네요.
영감은 큰집을 지어 슬하에 자식을 다 모아 함께 사는 게 평생소원이었제. 저 집 짓고 아들 3형제더러 들어와 같이 살자고 하니, 다들 싫다카고 한 놈도 안 들어 왔다. 그래 영감 내외만 저 큰집에 오도카니 산다.

산중턱의 거대저택. 아들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살고 웃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려는 영감님의 소원은 결국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의 진정한 행복은 지난세기에 끝나버렸는지도 모른다. 대가족제도의 붕괴와 함께. 우리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을 마구 무단폐기 시킨 결과로.

이 겨울, 영감님 내외는 행복하실까? 사람들은 늘 남의 삶이 궁금하다. 씰데없이!

세 번째 소식 - 말썽의 어원

일을 마친 말들은 마방에 느긋하게 누웠다. 새로 깔아준 톱밥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사료와 티모시 건초를 배불리 먹고는 세상사가 다 귀찮아진 표정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방 벽을 차는 소리가 들린다. 말이 뒷발로 차는 힘은 지프차가 넘어갈 정도라고 하니 가만 두면 벽이 뚫리거나 무너질 것이다.

조용히 못해!

일순 마방 전체가 조용해진다. 말은 겁이 많고 온순한 동물이다. 누군가가 공격을 하거나, 스스로 공격당할 것이라고 예상 될 때만 대응한다. 그런데 이게 참 어이없는 것이, 비닐봉지가 날리거나, 자기 그림자에 놀라서 가끔 날뛴다. 풀을 뜯다 앞발에 밧줄이라도 걸리면, 혼자 풀지 못하고 부상을 입을 정도로 난리를 치는 것이다. 도무지 참을성이라고는 없다.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별 것 아닌 일에 민감한 반응으로 자신과 주위를 힘들게 만든다. 말들이 실려 있는 말차에 심술궂은 한 꼬맹이가 작은 돌멩이와 태권도복 띠를 던졌다. 어디나 말썽꾸러기는 있다. 말들은 그 작은 돌멩이와 띠에 놀라 날뛰다가, 말차의 강철로 된 칸막이를 다 부수고, 자신도 온통 다쳤다. 참 말썽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말썽의 어원을 조사해 보았다. 조선시대 마필 관리의 기록인 찰방해유(察訪解由)에 따르면, 말썽은 말이 성질을 부리는 것. 사소한 일을 문제꺼리로 만드는 것으로, 말이 성질을 부리는 것처럼 괜스럽고 어이없는 일에 대한 표현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임금님이 적장 용골대의 군사에 의해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을 때다. 임금님은 깊은 밤 근심으로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겨울 하늘의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밤의 정적을 깨고 쿵쾅 거리는 소리가 났다. 당장 일직 내관을 불러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고?
네, 말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사옵니다.
말들이? 왜 무슨 일로?
겨울바람 소리에 놀란 모양입니다.
허어, 말들은 성질이 고약하구먼, 말 성질이라니... 말썽이네...

라는 고사에서 말썽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역시 5천년 기마민족인 우리나라다운 결론이다.

지금까지 호오, 과연...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 분들껜 몹시 죄송하다. 말을 키우며 말썽을 부리는 말들을 보니, 갑자기 말썽은 말들이 성질을 부리는 어이없는 일에서 생겨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적어본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니라는 증거 문헌도 없다. 지금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깊이 연구하면 사실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어쨌든 말이라는 동물을 이해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 찰방해유(察訪解由)는 정말로 존재하는 책이며, 조선시대 역참(驛站)의 기록이다. 믿어 주세요.

네 번째 소식 - 똥 이야기

산골 마을의 아침은 분주하다. 먼저 마당에 널린 똥 덩어리들을 치워야 하는 것이다. 한겨울이라 똥 덩이들은 꽁꽁 얼어있다. 현관 앞의 개똥을 오삽으로 퍼서 채마밭에 던진다. 돌처럼 단단하게 얼어서 한참을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쉬운 일이다.

닭들은 똥 싸는데 체면이 없다. 닭들이 지나간 곳은 그야말로 똥밭이다. 나는 투덜거리며 토종닭들이 마방 앞에 싸 놓은 똥들을 치운다. 가끔 고양이 똥도 발견 되지만 아직 쥐똥은 보지 못했다. 논둑길을 지나노라면 고라니와 노루의 똥도 보인다. 이제 새로 말똥도 여기저기 보일 것이다. 가끔은 목장갑 낀 손으로 슬그머니 집어서 던지기도 한다. 그 손 그대로 담배 한 개피를 빼서 입에 문다.

그러나 이런 가축들의 똥이 더럽다고 생각 되지는 않는다. 가축들의 똥은 밭에 던져지고, 그 밭은 힘을 얻어 이번 여름 싱싱한 야채를 생산할 것이다. 짐승의 분변은 그저 순환하는 자연계의 일부인 것이며, 청결의 대상이 아니다. 계곡의 푸른 일급수에는 물고기와 가재들의 똥이 떠다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인간의 똥만은 더럽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만, 사람의 똥은 오리 똥보다 더럽다. 입맛에 맞추어 맛난 것만 먹는 우리의 똥이 어째서 제일 더러운 것일까? 아무리 고귀한 사람이 천하의 산해진미만을 골라 먹어도, 생산하는 것은 오직 똥이다. 만약 그가 똥이 아닌 다른 것을 생산한다면, 이미 죽었거나 죽기 직전인 것이다. 사리(舍利) 아니면 생 똥이겠지.

다섯 번째 소식 - 삼순이

삼순이는 못돼먹은 진돗개다. 이미 두 달이나 함께 살았는데도 나만 보면 그악스럽게 짖는다. 싸가지 없는 개새끼.

집 지키는 데는 최고다 카이. 오늘부터 먹이를 한 번 줘봐라. 그럼 주인인줄 알겠제.

그러나 그런 바램에도 아랑 곳 없이, 몇 번이나 밥을 줘도 삼순이는 나만 보면 주위를 빙빙 돌며 무안할 정도로 짖었다. 슬그머니 부아가 치민다. 나는 소심한 A 형이다.

지난번 삼순이 강아지를 동사(凍死)의 위험에서 지켜준 뒤로, 며칠 만에 다시 삼순이를 만났다. 궁금해서 개집을 들여다보니, 이젠 제법 솜털이 보송한 강아지 네 마리가 코를 맞대고 쌔끈쌔근 잠들어 있다. 열중해서 개집을 들여다보다 뒤에 기척을 느껴 돌아보니 제기랄, 삼순이가 서있다. 난리 났군.

그런데 이게 웬일. 삼순이는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고 핥는다. 손을 펴서 내미니, 내 손바닥에 제 머리를 대고 반가워한다. 삼순이는 내가 제 새끼 살린 것을 아는 것일까? 내가 더 반갑고 고마워서 삼순이를 쓸어주며 한참을 함께 놀아 주었다.

이렇듯 개도 은혜를 안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몇몇 인간들은 정말 개보다 못한 것일까? 이런 건 지식인에 물어 보아야 하나? 허허...

마지막 - 봄소식

이른 아침.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를 틀어 놓고, 흥얼거리며 마당을 쓸고 있었다. 영하의 싸늘한 대기에 볼이 빨갛게 부풀었다. 그때, 아래쪽 계곡에서 뜨끈한 바람이 후욱 불어왔다. 어? 혹시 산불? 갑자기 다급해져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계곡에는 얼음 아래로 개울물이 흐르고, 마른 풀들이 부드러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뭐지? 서울 촌놈은 엉덩이를 긁적이며 하릴 없이 계곡만 바라본다.

그때 다시 한 번 훈풍이 불어온다. 아침 햇살을 함빡 머금은 마른 풀잎들 사이로 바람이 쓸고 올라오자, 그 풀잎의 온기가 쌀쌀한 바람을 데운 것이었다. 아직은 바람찬 2월. 하지만 바람이 따듯한 풀 섶을 지나오며 성급한 봄소식을 알린다. 아하, 봄은 이렇게 오는 것이로구나. 하나 배웠다.

이제 봄은 머지않다. 나는 또 하나의 매몰찬 겨울을 꿋꿋하게 이겨냈구나. 문득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감격스럽다. 이것도 괜한 말썽인가?



숲과 구름사이...

www.allbaro.com

[사진 :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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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6

리기다소나무님의 댓글

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제고향집이 눈앞에 있는거 같습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고향집이 산골에 있으신가 봅니다. ^~^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dEepBLue님의 댓글

전.. 시댁이 떠오르네요..
정~~ 말 시골이거든요...ㅋ

보름인데... 그곳은 별도 달도 정말정말 환하겠어요..
별이 쏟아질것 같겠죠..

그까이꺼대충(암컷)님의 댓글

워낙 서울에서만 산 서울촌녀이라 글을 읽는 동안
며칠 저런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 뿐..
아침에 찬찬히 다 일고
푸근해 지는 마음이 좋습니다..
삼순이 야그는 참 정겹습니다..

누기누기님의 댓글

아... 그냥 잠깐 들어와서 읽어보고 가려다 뭉클한 감동이 밀려 오네요.
마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eyeieye님의 댓글

그래도 파리 모기가 좀 남아 있어야 강남갔던 제비도 날아오고 그럴텐데 요즘 시골에도 통 제비 날아다니는 걸 못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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