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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네 - 크라잉 넛.

본문

밤이 깊었네 - 크라잉 넛.

오전 1시 43분. 아직 잠들지 못했다. 살아가다 보면 모래처럼 입안에서 버석 거리는 밤도 있는 법이다. 길 잃은 떠돌이 유령들만 배회하는 싸늘한 초가을의 밤.

[항상 당신 곁에 머물고 싶지만
이 밤에 취해 (술에 취해) 떠나고만 싶네요.
이 슬픔을 알랑가 모르겄어요.
나의 구두여 너만은 떠나지 마요.]

크라잉 넛. '밤이 깊었네' 를 500번쯤 반복해서 듣고 있다. 이윽고 나는 몽롱하고 불투명한 납유리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밤 속을 떠돈다. 어쩐지 안타까운 새벽까지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도심의 포장마차 빨간 플라스틱 의자 위에 엉거주춤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익숙한 느낌. 가슴 속 깊은 곳에 살아남아, 멸공 포스터의 나라에 잠입한 빨갱이들처럼 숨을 죽인 기억들.

무슨 일이었을까?
그 수많은 밤들에 나는 왜 잠들지 못했던 것일까?

[가지마라. 가지마라. 나를 두고 떠나지 마라.]

그런 이유였던가?
고작 그런 유치찬란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로 소용없는 우울한 이유였던가?

한신포차의 한 쪽 구석. 낡은 테이블 위에 대책 없이 흔들리는 소주잔을 어떻게든 고정시켜 보려고 애쓰던 일. 어떻게든 버리고, 잊고, 다시 멀쩡해 보려고 몸부림치던 밤과 밤들 사이의 짧은 정오들.

강남구청 옆의 부산 오뎅 집. 연푸른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던 히레사케. 복어 꼬리를 태운 씁쓸한 향기 한 모금을 앞 이빨쯤에 단단히 머금던 저녁. 어깨가 맞닿은 사람들 사이에서, 몇 잔을 마셔도 그 쓴 맛이 사라지지 않던 저녁. 아무리 마시고 마셔도 저녁. 그리고 여전히 저녁. 마침내 뭔가를 깨달은 청춘이 저물어 가던 저녁.

학동 사거리. 밤이면 포장마차의 붉은 포장 위에 늘어진 어깨의 검은 실루엣으로 희망 따위는 완전히 소멸된,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새벽을 기다리는 일. 잊어야만 하는 저녁. 잊어야만 하는 밤. 잊어야만 하는 새벽.

"다들 마시고 죽자!"
"형 그만 마셔요. 이러다 큰일 나겠어."

속눈썹에 까지 눈이 쌓이는 밤. 이 세상의 소음은 모조리 빨아내고, 함박눈만 저 혼자 펑펑 통곡을 하며 쏟아지던 고요한 밤. 가로등이 만들어낸 깔끔한 이등변삼각형의 무대. 오른 손으로, 명랑한 탭댄스를 추는 전봇대를 짚은 채 샛노란 오줌을 정성스레 갈기고, 길고 긴 골목길에 난 외로운 발자국을 돌아보던 고대 앞 닭발 집의 거룩한 밤.

"주아이 한 잔 주세요."
"이것까지만 마셔요. 밤이 깊었어."

그때쯤, 문득 말이 없어진 나를 바라보며 방추 아저씨는 말없이 시샤모 접시를 내밀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진공의 침대로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길. 실신한 듯 깊은 잠에 빠진 자동차들. 바퀴 아래 숨은 도둑고양이의 수염에 빗방울이 타고 앉은, 몇 시 인지도 모를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흑백사진 속의 한 밤.

굴러 들어간 오피스텔. 누구야! 이런 밤에 울고 있는 건. 다 쓸데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니? 맹세만큼, 후회만큼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냐구! 사랑이라고? 오만 대쯤 두들겨 맞아야겠다. 이 머저리.

ToTo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96시간의 하루를 오롯이 반추하던 그 밤. 옷을 입은 채 욕조에 한동안 처박혀 있을 때 문득 시야에 들어 온, 더 이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주인 없는 아베다 로즈마리 민트 헤어 컨디셔너. 제기랄!

[하나둘 피어오는 어린 시절 동화 같은 별을 보면서
오늘밤 술에 취한 마차타고 지친 달을 따러가야지]

크랑이 넛.

묘한 매력을 지닌 그룹이다. '밤이 깊었네.' 라...구?
늘 미소를 싱글거리는 유능한 택배 기사처럼, 어쩌면 그렇게 정확한 시간, 정확한 곳에 사람을 데려다 놓는 것일까? 이봐. 지나치다구.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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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향기님의 댓글

향기 211.♡.244.12 2005.08.25 09:32

어느날 남동생이 들려준 노래 가사중 "밤이 깊었네에~" 를 듣게 됐는데
계속해서 귀를 잡아끄는 멜로디와 크라잉넛의 목소리에 정이 들어
끝끝내 가사를 외지는 못했으면서도 혼자 밤이 깊었네에~ 음음음음... 기억이 떠오릅니당
다시 한번 듣고잡습니다
밤이 깊었네에~~~~ 우물쭈물....

김명기님의 댓글

저도 밤이 깊었네에..... 우물쭈물 이랍니다. ^~^

여백님의 댓글

밤이 깊었네...

-,.-"

국어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눈...

밤이 어떻게 깊을 수 있을까나..
물도 아니고 땅도 아니고...

깊은 밤...

아 오묘하고 아름다운 미학이 들어있는 국어여라~~

namu-soup님의 댓글

함박눈이 펑펑 통곡을 하며 쏟아진다....
명기님 글이 많이 많이 읽기 좋아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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