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하우스

갑자기 겨울이다. 창밖의 대기는 방금 이별을 선언한 여인의 눈동자처럼 맑고 싸늘하다. 우리 생각과 마음가짐이 어떻든 겨울은 사람들 가운데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어쨌든 지금은 몇 번이고 Desperado를 들어 주어야할 시기인 것이다. 이글스는 너무 연하고, 마이클 볼튼은 너무 진하다. 대략 west life면 충분하다. 불길함을 품은 찬바람 속에, 한 겨울 발가락의 동통, 앞섶을 헤치고 들어오던 냉기, 눈과 얼음이 만들어 낸 여러 가지 불편들이 떠오른다.

나는 눈삽을 준비하고, 마방의 앞길과 운동장을 녹이기 위해 염화칼슘을 준비하고, 수도관을 열선으로 감는다. 영원할 것만 같은 겨울잠을 위해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처럼, 늦가을은 내게 준비의 계절이다. 지금 약간의 수고를 해 두지 않으면 겨울은 정말 지독한 계절, 또는 굉장한 고단함으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rural life 란 이렇게 낭만적이지 못한 점이 있다. 하지만, 내게 겨울은 대개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다. 장작 패기. 따스한 무쇠 난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나 캐럴, 첫눈, 눈 밭 속의 첼로연주, 말들의 긴 입김, 그리고...

여보, 우리 집은 진정한 커피하우스야.
왜요?
우리 집에서 끓이는 유일한 음식이니까.
미안해요.
당신이 왜 미안해?
당신 밥돌이고 배꼽시계인데, 식사를 못 차려줘서요.
음, 그건 아니지. 오늘도 당신은 새벽 4시에 잠들었잖아. 나는 5시 30분에 깨었고, 우리가 함께 아침을 맞는 때가 한 달에 몇 번이나 될까? 점심때면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저녁 식사 약속은 월말의 퇴근시간 버스정거장처럼 길게 줄이 늘어져 있지. 우리는 일 속에 묻힌 개미나 다름없이 살고 있어. 어쩌면 미안한 건 나지. 대개의 보수적인 남자들의 삶처럼 내가 벌어서 온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당신이 이렇게 혹사당하도록 두고 볼 수밖에 없으니까. 아마 우리 사업은 당신이 없으면 일주일도 못 버티겠지.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요.
어쨌건 당분간 우리 집은 계속 커피하우스가 되겠지.
그럼 다음 이사 갈 집은 싱크대가 더 작아도 되겠네요.
설마...

머지않아, 창밖의 투명한 대기는 탐스런 눈송이가 내리는 겨울 풍경으로 바뀔 것이다. 언론에서는 때 이른 한파니, 엘리뇨에 의한 최대의 한파 또는 매서운 추위, 칼바람을 운운하며 겨울 분위기를 슬슬 고조시키겠지. 올해 우리는 겨울이 지난 것도 느끼지 못 할 만큼 바쁘게 동동거리며 살아내겠지만, 겨울은 또 하나의 개인적인 전설이 되어 언제까지고 따스하게 되새길 추억으로 익어갈 것이다. 당신과 나는 이 창가에서 눈 내리는 도시의 야경을 바라 볼 것이고, 자글거리는 캐럴을 들을 것이고,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맞을 것이고, 계속해서 커피 향이 흔들흔들 머무는 공간에서 깊어가는 겨울을 보낼 것이다. 이곳 우리 두 사람만의 커피 하우스.

눈이 펑펑 내리는 버스 정류장 노점. 노랗게 익은 군밤 한 봉지 들고 뽀드득거리며 당신에게 돌아간다면, 겨울은 오히려 고맙고 즐거운 계절이다. 어쨌든 빙 크로스비 정도라면, 그런대로 느긋하고 편안한 겨울이겠지. 당신, 사랑한다고 말하면 여전히 볼이 빨개질까?
 

즈문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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