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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또는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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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또는 사기.

눈을 뜬 것은 커피 빈의 아메리카노처럼 묽은 어둠 속의 새벽. 나는 베개에 코를 박고 엎드려 있다. 어깨 죽지가 끈적끈적하다. 땀을 많이 흘리고 잔 모양이다. 창밖에선 빗소리. 잠깐 잠깐 선잠 속을 뒤척일 때마다 끊임 없이 들려 오던 차갑고 잔잔한 낙숫물 소리.

나는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돌아눕는다. 어렴풋 천정이 보인다. 낯설다. 오래전 유랑을 시작한 이래. 이런 경험이 몇 번이나 있다. 익숙해야만 할 장소, 익숙해야만 할 시간이 이처럼 소름끼치게 낯설다니.

결국 나는 영원히 유목민의 삶에는 익숙해 지지 않을 것인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 새로 산 구두처럼 발꿈치를 깨물고 있다. 늘 새로운 운명. 실상을 안다면 누가 그따위 것을 원할 것인가? 나는 낯설지 않은 어둠. 낯설지 않은 새벽. 낯설지 않은 천정이 절실하다.

여전히 생소한 새벽. 나는 어둠을 응시한 채 빗소리를 듣고 있다.

이런 새벽엔 Leonard Cohen이 필요하다. 그리고 링거처럼 느릿느릿 주사되는 친밀한 우울. 담배연기와 Famous Blue Raincoat., 커피가 몸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스며든다. 이윽고 나는 빈껍질의 시체와 살아있는 인간, 그 사이 어디쯤에 머문다.

꿈 속에 머물던 그녀는 현관문 앞에서 힐을 고쳐 신는다. 나는 그녀가 어둠 속으로 또각또각 사라지는 발소리를 듣는다. 현관 등이 잠시 켜졌다가 혼자 꺼진다. 다시 어둠. 나는 임신중절 직전의 태아처럼 블랙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둥둥 떠다니고, 머지 않아 잊혀진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 잠정적인 새로운 규칙, 불안과 불균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의미. 일상의 리듬 파괴, 신체적인 불규칙, 불면과 불안정한 수면의 반복이다. 어느 정도 익숙해 지기 까지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반환점까지는 치명적이지만 달콤한 유혹, 육체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지독한 피로를 대뇌가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응 맞아, 이런게 사랑이야. 그러니 때로 죽어도 좋아. 알지?

새벽 3시 30분에 멍청하니 깨어있거나, 지하철에서 졸며 두어 정거장을 지나치는 것은 잠시 일상적이 된다. 이런 어리석은 상황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상황의 지속과 종결을 동시에 바라는 모순에게 열심히 물을 준다.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소망.

열에 들뜬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진 사랑을 깔고 안정적인 가정이 하나 이루어지거나, 깔끔한 이별을 이루고 사랑은 잊혀진다. 어느 쪽이든 사랑은 휘발되고, 변질되고,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방의 얼굴에서 열심히 살피는 것은, 통조림 한쪽에 반쯤 지워진채로 기록된 유통기한.

[나만은 영원합니다.] 라는 애초의 문구는 지워지고, 나... 은 ... 합니다. ... 나만은... 나는 영원.... 나... 니다... 모든 것이 그런 식이다. 어느 것 하나 완전한 것이 없다. 그래도 좌절금지. 진정한 사랑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금지. 7번째 무지개 다리를 올라 탈 것. 그래서 행복을 잡아챌 것.

이젠 사막처럼 공허해진 침대에 엎드린 채 나는 생각한다. 다른 몽상처럼 결국 어리석은 생각.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 누가 삶에 더 많은 변화를 주었을까? 그렇게 돌아보다가 보면 그 두사람이 아닌 전혀 엉뚱한 사람이 더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닐까?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그렇다면...

혹시 내 머리 속의 신경계통이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아닌, 가슴 속 어딘가 깊이 숨어 있는 진실. 불투명하고 억눌린 주장.  괌의 탈로포포 폭포(Talofofo Falls) 근처 동굴에서 전쟁이 끝날 줄도 모르고 28년간이나 숨어 살았다는 일본군 패잔병 요코이처럼, 진실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실종자가 되어 생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곤 심장이 멎는 듯한 고통. 잊고 살았던 어쩌면 잊어야만 했던 그 불유쾌한 기록. 방금 소의 심장을 떼어낸 피로 번득이는 도살용 칼처럼, 아름다운 지난 시간 속에  봉인 된 비밀스럽고 진저리 처지는 진실들. 나는 재빨리 판도라의 상자를 밀폐한다. 절대로, 두번 다시 열려서는 안되는 순간들.

"사랑해."
"정말?"
"물론이지."

현재 진행형으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순간. 대뇌피질이 거침없이 흡수하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나는 입을 맞추고 몸을 부둥켜 안을 수 있는 실존적인 존재만을 사랑한다. 나머지는 모조리 운명이 빚어낸 환상 또는 사기다. 

담배연기와 Famous Blue Raincoat, 커피. 아직도 어둠 속에서 낮게 울리는 하이힐 발굽 소리. 귀로 걸어 들어와서 눈 앞의 흔들리는 영상으로, 멀어지거나 또는 가까워지는 그 규칙적인 폭발음. 현관 등이 잠시 켜졌다가 혼자 꺼진다. 또 다시 묽은 어둠.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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