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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는 법

본문

새로 출간 될 소설의 일부 입니다.
7월 말까지는 어찌어찌 되겠지요.
많이 팔아야 원가라도 건질텐데.... ㅡ.ㅡ

"저녁 무렵에 함께 해변으로 나갔어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해변을 거닐다가 야자수 아래에 멈추었어요. 우편엽서에서 보는 것 같은 야자수가 천천히 일렁이는 그런 해변이요. 하지만 야자수는 상상보다도 다섯 배쯤이나 더 거대했어요. 어찌나 큰지 우리는 몸이 조그맣게 줄어든 것 같았죠. 그 아래 새하얀 덱 체어가 있었어요. 가지고 간 타월을 깔고 함께 기대어 앉았어요. 머리위로 지나는 바람이 야자수를 흔들어 놓는 소리가 들렸어요. 습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에 머물고, 눈이 닿는 곳 수평선의 끝에서는 크림슨 레드의 햇살이 태평양으로 침몰하고 있었죠. 조금씩 바닷물은 검어지고, 수평선은 차분하게 끓어오르고... 길게 꼬리를 드리우는 태양의 그림자를 보며, 나 자신도 자꾸만 그림엽서 속의 풍경처럼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욕심이 생겼어요. 어떻게든 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그와 함께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도망 다니지 않고 그와의 시간을 가질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요. 그 조직의 보스를 만나서 기회를 달라고 빌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도 했는데, 결국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쪽
발이나 잘리는 결과가 아마 최선이겠죠. 나도 모르게 하아! 한숨이 만들어
졌어요.
"발 아래로 조그만 게들이 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깜짝 놀랐는데,
곧 익숙해지더군요. 커다란 거미인줄 알았거든요. 게들이 떼를 지어 해변을
돌아다니고 있고, 먼 발치에는 개미들이 모래밭에 길고 조그만 길을 내고 있
었어요.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실크 로드를 조그맣게 축소해 놓은 것 같았어
요. 석양이 드리우는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개미들의 끝없는 길. 중간
에 작은 개미굴도 있더군요. 아마 쉬어 가는 작은 도시쯤 되겠죠. 거리 중간
에 작은 펍이나 모텔이 있고, 여행자들이 시끌시끌하게 떠드는 소리가 새벽
까지 창을 넘어 들려오는 그런 작은 도시요.

"하지만 개미들이 왜 해변으로 곧게 지른 길을 내었을까요?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했어요. 하지만 그 굴 안에서 개미들은 피곤한 하루를 쉬고,
아마 다른 종들의 생명체들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사랑이나
고독, 슬픔도 지닌 채 살아가고 살아가다가 죽는 것이겠죠. 갑자기 모든 것
이 다 덧없는 것처럼 우울하게 다가 왔어요.

"우리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가? 나는 왜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곳에
와서 커다란 야자수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개미들이 허무한 길을 만드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검은 게들은 왜 이 저녁노을의 해변을 채우며 이리
저리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일까? 이윽고 해가 바다 속으로 잠기자, 하늘은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었어요. 상상보다도  몇 배는 더 큰 거대한 야자수가
춤을 추듯 일렁이는 저녁노을 아래로, 동지나해의 멀고 먼 여정을 거쳐 온
바람이 계속해서 얼굴을 스치고,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 것 같았어요.
 
이윽고 예원이 말을 멈추었을 때, 나는 가슴속으로 시린 바람 한줄기가 불어
오는 것을 느꼈다. 예원이 이미 식어서 차가워진 커피 잔에 길고 흰 손가락
을 가져갔을 때, 나는 예원의 어깨를 감아 주고 싶었다. 행복한 순간에도 불
안을 묵직하게 지니고, 애착으로 욕심이 생겼을 때 마다 허무한 바람이 예원
의 볼을 스치는 것을 나 역시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사랑하지 않았으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에 불과한 일들이
고 감정인지도 모른다. 굳이 그렇게 어려운 사랑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예
원은 충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노련한 스나이퍼처럼, 사랑은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다. 나는 상처 입은 예원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슬
픔의 아릿한 맛을, 한 모금 머금은 커피에서 알 수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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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5

adam님의 댓글

어쩌면 사랑하지 않았으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에 불과한 일들...
요글귀 맘에 딱 와 닿네요^^~

iceberg님의 댓글

사랑하지 않는 법 혹은 사랑하는 법이 있어 정말 마음이 컨트롤된다면 사랑의 가장 큰 매력을 놓치는거라 생각합니다.
사랑의 매력이란 이성으로 조절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김명기님의 댓글

가끔 누군가에게 딱 마음에 드는 글귀를 만들어 냈을 때. 나도 아주 행복하지... ^~^

김명기님의 댓글

그러니까 시와 문학이 나오는 것이지... 그 가슴 아픔으로...

넘힘든하루님의 댓글

분명 사랑은 우리에게 많을 것을 부여한 듯 합니다.
사랑하는 중에도 후에도 그것을 통해 알게 되는 많을 것들...
‘사랑하지 않는 법' 혹시 그것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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