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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언어는 말똥 사이로 흩어진다.

본문

나의 언어는 말똥 사이로 흩어진다.

창밖의 미드나이트 블루가 점점 엷어질 무렵, 나는 잠자리에서 지난 하루밤의 고뇌를 털고 일어난다. 침대는 어찌나 유혹적인지, 벌써 20여년의 습관에도 불구하고 잠깐 동안씩 떠남과 머무름 사이에서 번민하게 만든다. 대개는 나의 의지가 이겨낸다. 다행한 일이다.

현관문 밖에는 이슬비가 다가와 있다. 이슬비는 늘 아무런 소리도 없이 찾아온다. 층계나무 잎은 부쩍 자라 있었고, 잣나무 이파리 끝에는 밤새 만들어진 맑은 우주가 매달려 있다.

제일 먼저 마방으로 가 말들에게 물을 준다. 몇 몇 얌전한 녀석들은 밤새 물을 마시고 아직도 남은 물로 목을 축일 여력이 있지만, 성질이 급한 녀석들은 물통을 엎지르고 타는 듯한 밤을 보냈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물을 엎어 버리고 나면 결국 목마름의 길고 긴 밤이 되는 것이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지난 밤 자신들이 엎지른 물통은 돌아보지 않고,
'아아 목마르다. 왜 빨리 물을 주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조그만 두뇌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티모시 건초와 말 전문 사료를 밀기울에 섞어 아침식사를 준다. 향긋한 마른 풀 내음이 신선한 아침 공기와 섞여 마사를 채운다. 말들이 서걱 거리면서 풀을 뜯는 것을 보며, 나는 쇠스랑과 플라스틱 오삽을 들고 말똥을 치운다. 동그랗게 뭉쳐져 있는 말똥을 보며 말들이 건강한 밤을 지냈음에 안도한다.

말똥을 치우는 일에 기술이나 복잡한 과정은 필요없다. 그저 톱밥에 말려있는 말똥을 쇠스랑으로 긁어 오삽에 담고 더러워진 세바퀴 수레에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한 일년 쯤 말똥을 치우다 보면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가려내는 눈을 지니게 되고, 대략 40분쯤 걸리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마에 약간 땀이 배이는 정도의 노동이다. 단순한 일에는 늘 상념이 배어든다. 나는 어제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어 되새기며 말똥을 모은다.

'이번에 잘 좀해서 돈을 모아요.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될텐데...'

나는 쇠스랑을 흔들어 톱밥과 말똥을 조심스레 분리하며 나의 일상을 돌아본다. 어쩐지 소용 돌이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이 현기증을 느낀다.

'글쎄요. 누구나 돈은 벌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절대로 하루에 4시간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아요. 이미 저는 중노동 중입니다. 글을 쓸 시간도 없어요.'

나는 그의 이마에 살짝 주름이 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현실 속에서 현실적인 요건을 갖추고 잘 살라고 기껏 충고를 해주었더니...'

그는 영원히 나를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실 속의 그에게 비쳐진 나는 이미 비현실이다. 말똥 속에 섞여든 자갈을 따로 골라내고 세바퀴 수레에 말똥을 담는다.

'내 입장은 이래요. 그 사람이 정말 그럴 수가 있는 것이요?'
나는 돌틈에 박혀있는 말똥을 빼내려 쇠스랑을 모로 세워 애를 쓰며 잠시 생각한다. 그의 직접적인 불만 선상에 내가 놓여 있지 않음은 다행이다. 그러나 내가 속한 공간에서 생겨난 일에는, 어쨌든 내게도 피해갈 수 없는 연좌제가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의 말 속에서 나는 사무라이 복대 속에 감추어진 또 다른 작은 칼을 느낀다.

'나는 그 점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분은 아마 좋은 뜻으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표현 방법에 대한 것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니 당연히 껄끄러운 점이 있겠지요.'

나는 마음 속으로 나직하게 대답한다. 조이가 뒷발로 말똥을 밟고 비켜주지 않은다. 나는 쇠스랑으로 조이의 발굽을 툭툭 친다. 조이는 꼬리를 휙 휘둘러 자신의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게 치고는 귀찮다는 듯이 17Cm 정도 옆걸음을 친다. 나는 조이의 배 밑에 들어가 새로 편자를 한 발굽사이에서 일그러진 말똥을 긁는다.

'왜 그렇게 독선적입니까? 건방져요. 지가 뭐라고 이래라 저래라야? 이제부터 나는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나는 잠시 허리를 펴고 뒷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대를 꺼내어 문다. 몇 개피 밖에 남지 않은 담배갑은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다. 이럴 때 한 대 남은 담배의 허리라도 부러져 있으면 낭패다. 조심스레 꺼내보니 끝부분만 살짝 구멍이 나있다. 나는 손가락으로 구멍난 부분을 떼어내고 지포의 두껑을 열어 불꽃을 옮긴다. 담배연기가 피어 오르자, 조이는 맑은 눈으로 바라본다가 슬며시 내 오른쪽 볼에다 얼굴을 들이밀고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1미터쯤 멀어지며 윗입술을 까뒤집으며 푸르르 거린다. 비 웃고 있는 것일까?

'조용한 자리를 만들어 한 번 이런 저런 점이 이렇고 저렇다고 말씀을 드려 보시지요. 아마 감정적인 부분이 개입되어서 그렇겠지만, 가장 쓸데 없는 것이 기분이나 감정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리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아니지요. 터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입장을 바라보면 결코 상대방을 흠집내려고 한 이야기들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허리를 굽혀 쇠스랑으로 말똥을 굴릴 때, 나는 그의 굳은 입술을 떠올린다. 가장 쓸데 없는 기분이나 감정이 이번 논쟁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아마 딱 달라 붙어서 그 기분과 감정을 흙탕물로 만들어 버리겠지.

마지막 새마의 마사에서 말똥을 긁어내고, 이젠 제법 수북하게 쌓인 세바퀴 수레 위에 얹는다. 나는 마사의 뒷편, 말똥을 모아둔 곳으로 다가간다. 힘껏 수레를 들어 말똥을 붓는다. 이윽고 나의 언어는 말똥사이로 흩어진다. 분명히 나는 오늘도 그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동일한 얼굴의 사이에서 커피를 끓이고 무관한 행성의 소식에 대한 공론을 나누겠지.

메마른 숲 속으로 이슬비가 스며든다. 까치가 창밖에서 나를 들여다 본다. 나도 까치를 본다. 엷은 유리창 사이로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를 잠시 바라보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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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9

(酎)클래식님의 댓글

저희 동네에도 까치 항상 있죠 나의 자명종 소리처럼 느끼지죠 배고픔 달래기위해서 산새들은 항상 사람들의 움직임보다 더 빠르죠

김명기님의 댓글

도둑까치가 말들을 협박하고 사료를 빼앗아 먹기도 하지. 놀랍지 않아?

김명기님의 댓글

그러다가 가끔은 진돗개들에게 잡혀 먹기도 하고... 여긴 동물의 왕국이야...^~^

iceberg님의 댓글

언어를 표현의 수단이라고 하지만 때론 표현을 막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이런데 말은 저렇게 마음과 달리 나가는 경우... 늘 고운말만 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귀를 막고 마음을 막고, 그리고 열린 입이란...

hongwu님의 댓글

대학 캠퍼스에서 살찐 다람쥐들이 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던 여학생을 위협하고 음식을 뺏어먹기도 한답니다.  저한테까지 대들다가 반응이 없으니까 멋적어서 도망가기도 하구요...  글 제목만 봐도 명기님 글인 줄 알겠더군요.  명기님 글을 읽으니 갑자기 맑은 새벽에 일어나 말똥을 치우고 싶어집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언제고 제 서식지에 오셔서 함께 따끈한 말똥이라도 치우시지요... 오늘 제 책을 주소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두 권이니까, 가까운 분께도 선물하시지요... ^~^

김명기님의 댓글

말똥에서는 그다지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건초향과 어울려 묘한 향기지요... ^~^

넘힘든하루님의 댓글

우리에겐 뱉지 못하고 사라지는 묵언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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