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 추가메뉴
어디로 앱에서 쉽고 간편하게!
애플 중고 거래 전문 플랫폼
오늘 하루 보지 않기
KMUG 케이머그

자유게시판

사랑은 불에 데인 자욱 같은 것이 아니다.

본문

사랑은 불에 데인 자욱 같은 것이 아니다.

昏絶(혼절)이라도 한 것처럼 깊은 午睡(오수)에서 깨어나니,
다시 복실이와 단 둘이 되었다. 主事(주사)님과 모든 대원들에
게 몇 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텅 빈 서식지에서 발 밑의 복실
이와 함께 Joshua Redman의 Alone In The Morning을 듣고
있다. 그들은 떠나고 나는 남았다. 그들은 어디론가 돌아 갈
곳이 있고, 나는 어디에 있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이다. 따로 놀아줄 사람이 없는 복실이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의자 아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리
둘은 결국 그레이 톤의 정물화가 되어 간다..

일주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빨래 통에 또 일주
일치의 옷가지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시간
은 빛을 잃었다. 손톱과 발톱을 깎고 빨래를 챙기고 아우들의
그리운 얼굴이 보이면 그것으로 새로운 일주일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놀라운 속도로 빨래들은 쌓여가고, 怪奇(괴기) 영화처
럼 빠르게 손, 발톱은 자란다. 나는 그저 흑백의 눈으로, 참견
하지 않고 시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따위를 끼고 사는 사람답지 않게 하루
종일을 모래 먼지 속에서 움직였다. 뻐근한 피곤과 오랜만에
느끼는 보람 비슷한 통증으로, 몸과 마음은 따로 각자의 입장
으로 분리된다. 내 한 몸도 이렇게 입장이 다르니 세상에는
無限(무한)한 입장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지.

한 아우에게서 온 메일을 열어보았다. 낯선 여인의 사진이 첨
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그를 고독의 늪에 수시로 잠기게 하는 그 여인일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하는 아련한 비
누향기 같은, 지난 시간 속의 여인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적중
했다. 문득 나는 그가 가여워 졌다. 그리고 나 역시 가여운 사
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그가 내게 남긴 짧은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떠나간 여자 잊어버리라고,
형은 또 내게 말을 하겠지만
형도 잘 안되면서,
내게 그런 말 쉽게 하지 마오...]

그래, 그런 것은 늘 그렇더구나. 사랑은 불에 데인 자욱 같은
것이 아니다. 어딘가 가지 못할 곳이 생겨나고, 무엇인가 하지
못할 일이 생겨나는, 어린 시절 우리가 지니고 있던 偏食(편
식)으로 먹지 못하는 음식물들의 길고 긴 리스트 같은 것. 여
름날 소나기 개인 저녁 타오르는 노을의 방향으로 걷는 우울
한 골목길, 길게 늘어진 그림자 끝에서 메아리지던 발자국 소
리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심장박동을 조절하지 못하
는 것처럼, 심장에서 생겨난 그리움 역시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득 당신의 사진을 꺼내어 들었다. 얼마만인지도 모른다. 익
숙한,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어도 저녁식사 준비
를 하던 당신과의 거리를 언제나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보지 않아도 이미 뇌리에 刻印(각인) 된
아주 친밀한 미소가 들어 있었다. 잊혀진지 천년은 된 사내가
자신의 사진을 때로 꺼내어든다는 것은 여인들에게 어떠한 느
낌일까? 다만 불쾌한 감정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진 속의 당신은 먼지 자욱한 세월 속에서도 어찌나 사랑스
러운 여인인지,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당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당신의 볼 언저리는 손자욱으로 흐려지고 말았다. 아니 그것
이 분명히 손자욱 때문이었는지, 담배연기로 붉어진 눈동자의
탓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비어버린 정어리 통
조림 깡통이 되어 다시 늪의 한가운데, 깊고 푸른 바닥에 가
로누웠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그리움이 언젠가 심장의 박동과 함께 멈
출 것이라는 豫感(예감)하나를 얻었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측백나무 숲을 따라간 길에서...

www.allbaro.com
0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포인트 81,347
가입일 :
2004-02-26 08:43:02
서명 :
미입력
자기소개 :
미입력

최신글이 없습니다.

최신글이 없습니다.

댓글목록 9

여백님의 댓글

김명기님의 댓글

네 그때는 정말 아프더군요. 신음 소리도 못낼만큼...

adam님의 댓글

iceberg님의 댓글

마지막 문장이 너무 서글프네요. 말하자면 죽을때까지 그리움에 묻혀산다는거잖아요...
하지만 죽기 전에 그 그리움이 사그라들지 않을까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김명기님의 댓글

그러니 사랑 따위를 함부로 할 일은 아니겠지요.
더구나 진실한 사랑 같은것은...

김명기님의 댓글

adam.... 웃.지.마. ^~^

TheAnd님의 댓글

좋은글이네요.
역시 사랑이랑 불에대인듯 갑작스레 자욱이 남는것이 아니고
가링비에 젖어가듯 처음엔 모르지만 서서히 온통 물속에 잠기듯......
그렇게 온몸에 온마음에 온정신에 스며드는 그런것인것만 같습니다.
- 짧은 생각 -

여백님의 댓글

사랑.. 열정..
왜 난 요것들을 다 잃어버렸을까?
마음속엔 작은 불씨하나 남아 있질 않고..
-,.-"

다~~ 태워버려 더이상 태울 수 있는 게 없지만..
사랑이란 재를 뒤적거리다 봄...
그리움이 먼지되여 펄펄 날리고...

아~~다쉬
뜨거운 사랑의 열병에 걸리고 잡다..

울앤은 지금 사랑의 열병에 걸렸다고 보고잡다고 하눈데..
난 왜 이리 무덤덤한쥐.. 목석이 돼버렸나?

나의 유일한 낙은 낚쉬..
영화 '반지의 제왕' 골룸처럼 달콤하고 즙많은 물고기 잡는 것..

군데 요 골룸처럼 반지(돈, 명예 기타둥둥)에 얽메여
진정한 나의 '보물'을 잃고 있지눈 않눈지...
-,.-"

태우고 잡네...사랑이란거...
진짜러~~

넘힘든하루님의 댓글

사랑과 함께 이별도 우리에겐 필요한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포기하고... 떠나보내며 그 시간만큼 우리는 성숙해가고 깊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전체 50,531 건 - 502 페이지
제목
732 0 0 2004.06.26
효효! 911 0 0 2004.06.26
케이머그사랑 802 0 0 2004.06.26
-별이- 804 0 0 2004.06.26
김훈 1,490 0 0 2004.06.26
이기형 731 0 0 2004.06.25
이쁜챠챠 861 0 0 2004.06.24
본드걸 824 0 0 2004.06.23
잿빛하늘 1,223 0 0 2004.06.23
김명기 1,414 0 0 2004.06.23
여백 824 0 0 2004.06.23
Ryo 1,015 0 0 2004.06.23
하얀그림자 752 0 0 2004.06.23
.maya 744 0 0 2004.06.22
영환군 948 0 0 2004.06.22
★루 988 0 0 2004.06.22
김명기 2,181 0 0 2004.06.22
김명기 1,001 0 0 2004.06.22
케이머그사랑 1,132 0 0 2004.06.22
macuser 1,177 0 0 2004.06.21
주영광 779 0 0 2004.06.21
케이머그사랑 943 0 0 2004.06.21
nara 785 0 0 2004.06.21
사알짜기 1,043 0 0 2004.06.20
.maya 859 0 0 2004.06.20
.maya 1,182 0 0 2004.06.19
suki(수기) 760 0 0 2004.06.18
혼자서도잘해요 810 0 0 2004.06.18
이진호 751 0 0 2004.06.18
아이디어몰 851 0 0 2004.06.17
이현정 824 0 0 2004.06.17
박은진 1,110 0 0 2004.06.17
.maya 1,206 0 0 2004.06.17
잿빛하늘 823 0 0 2004.06.17
케이머그사랑 716 0 0 2004.06.17
조한상 722 0 0 2004.06.17
탐로 849 0 0 2004.06.16
김명기 2,091 0 0 2004.06.16
단영수 781 0 0 2004.06.16
★루 921 0 0 2004.06.16
.maya 833 0 0 2004.06.16
네잎클로버 1,155 0 0 2004.06.15
밝은태양 782 0 0 2004.06.15
영환군 1,241 0 0 2004.06.15
김명기 1,477 0 0 2004.06.14
나라 1,452 0 0 2004.06.14
네잎클로버 871 0 0 2004.06.14
영환군 1,813 0 0 2004.06.14
hongwu 1,538 0 0 2004.06.11
기린디자인 937 0 0 2004.06.11
향기 948 0 0 2004.06.11
이진호 734 0 0 2004.06.11
김명기 1,488 0 0 2004.06.10
촌시렐라 900 0 0 2004.06.10
최가영 785 0 0 2004.06.09
이현정 1,179 0 0 2004.06.09
영환군 782 0 0 2004.06.09
스왕스 939 0 0 2004.06.09
이현정 796 0 0 2004.06.09
향기 766 0 0 2004.06.09
해님이 1,089 0 0 2004.06.09
steven 991 0 0 2004.06.09
.maya 845 0 0 2004.06.09
김명기 1,872 0 0 2004.06.08
향기 840 0 0 2004.06.08
이상기 747 0 0 2004.06.08
스왕스 713 0 0 2004.06.08
신원석 760 0 0 2004.06.08
향기 879 0 0 2004.06.08
향기 820 0 0 2004.06.08
digibook 781 0 0 2004.06.08
빗소리 1,511 0 0 2004.06.08
잿빛하늘 725 0 0 2004.06.07
향기 872 0 0 2004.06.07
김명기 1,397 0 0 2004.06.07
김명기 1,633 0 0 2004.06.07
★루 986 0 0 2004.06.07
jc 763 0 0 2004.06.06
케이머그사랑 884 0 0 2004.06.06
newmedia 3,886 0 0 2004.06.05
오일 797 0 0 2004.06.05
참眞이슬露 721 0 0 2004.06.05
강태구 760 0 0 2004.06.05
yamg 832 0 0 2004.06.05
정정효 743 0 0 2004.06.05
-별이- 803 0 0 2004.06.04
란~쉬리 940 0 0 2004.06.04
★루 818 0 0 2004.06.04
김남희 965 0 0 2004.06.04
케이머그사랑 695 0 0 2004.06.04
모노마토 861 0 0 2004.06.03
힘내힘 882 0 0 2004.06.03
김명기 1,457 0 0 2004.06.03
이미정 831 0 0 2004.06.03
이현정 1,264 0 0 2004.06.03
향기 814 0 0 2004.06.03
민대성 871 0 0 2004.06.03
bulu 991 0 0 2004.06.03
★루 919 0 0 2004.06.03
susie 761 0 0 2004.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