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불에 데인 자욱 같은 것이 아니다.
김명기
61.♡.162.198
2004.06.2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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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랑은 불에 데인 자욱 같은 것이 아니다.
昏絶(혼절)이라도 한 것처럼 깊은 午睡(오수)에서 깨어나니,
다시 복실이와 단 둘이 되었다. 主事(주사)님과 모든 대원들에
게 몇 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텅 빈 서식지에서 발 밑의 복실
이와 함께 Joshua Redman의 Alone In The Morning을 듣고
있다. 그들은 떠나고 나는 남았다. 그들은 어디론가 돌아 갈
곳이 있고, 나는 어디에 있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이다. 따로 놀아줄 사람이 없는 복실이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의자 아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리
둘은 결국 그레이 톤의 정물화가 되어 간다..
일주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빨래 통에 또 일주
일치의 옷가지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시간
은 빛을 잃었다. 손톱과 발톱을 깎고 빨래를 챙기고 아우들의
그리운 얼굴이 보이면 그것으로 새로운 일주일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놀라운 속도로 빨래들은 쌓여가고, 怪奇(괴기) 영화처
럼 빠르게 손, 발톱은 자란다. 나는 그저 흑백의 눈으로, 참견
하지 않고 시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따위를 끼고 사는 사람답지 않게 하루
종일을 모래 먼지 속에서 움직였다. 뻐근한 피곤과 오랜만에
느끼는 보람 비슷한 통증으로, 몸과 마음은 따로 각자의 입장
으로 분리된다. 내 한 몸도 이렇게 입장이 다르니 세상에는
無限(무한)한 입장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지.
한 아우에게서 온 메일을 열어보았다. 낯선 여인의 사진이 첨
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그를 고독의 늪에 수시로 잠기게 하는 그 여인일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하는 아련한 비
누향기 같은, 지난 시간 속의 여인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적중
했다. 문득 나는 그가 가여워 졌다. 그리고 나 역시 가여운 사
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그가 내게 남긴 짧은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떠나간 여자 잊어버리라고,
형은 또 내게 말을 하겠지만
형도 잘 안되면서,
내게 그런 말 쉽게 하지 마오...]
그래, 그런 것은 늘 그렇더구나. 사랑은 불에 데인 자욱 같은
것이 아니다. 어딘가 가지 못할 곳이 생겨나고, 무엇인가 하지
못할 일이 생겨나는, 어린 시절 우리가 지니고 있던 偏食(편
식)으로 먹지 못하는 음식물들의 길고 긴 리스트 같은 것. 여
름날 소나기 개인 저녁 타오르는 노을의 방향으로 걷는 우울
한 골목길, 길게 늘어진 그림자 끝에서 메아리지던 발자국 소
리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심장박동을 조절하지 못하
는 것처럼, 심장에서 생겨난 그리움 역시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득 당신의 사진을 꺼내어 들었다. 얼마만인지도 모른다. 익
숙한,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어도 저녁식사 준비
를 하던 당신과의 거리를 언제나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보지 않아도 이미 뇌리에 刻印(각인) 된
아주 친밀한 미소가 들어 있었다. 잊혀진지 천년은 된 사내가
자신의 사진을 때로 꺼내어든다는 것은 여인들에게 어떠한 느
낌일까? 다만 불쾌한 감정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진 속의 당신은 먼지 자욱한 세월 속에서도 어찌나 사랑스
러운 여인인지,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당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당신의 볼 언저리는 손자욱으로 흐려지고 말았다. 아니 그것
이 분명히 손자욱 때문이었는지, 담배연기로 붉어진 눈동자의
탓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비어버린 정어리 통
조림 깡통이 되어 다시 늪의 한가운데, 깊고 푸른 바닥에 가
로누웠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그리움이 언젠가 심장의 박동과 함께 멈
출 것이라는 豫感(예감)하나를 얻었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측백나무 숲을 따라간 길에서...
www.allbaro.com
昏絶(혼절)이라도 한 것처럼 깊은 午睡(오수)에서 깨어나니,
다시 복실이와 단 둘이 되었다. 主事(주사)님과 모든 대원들에
게 몇 일간의 휴가를 주었다. 텅 빈 서식지에서 발 밑의 복실
이와 함께 Joshua Redman의 Alone In The Morning을 듣고
있다. 그들은 떠나고 나는 남았다. 그들은 어디론가 돌아 갈
곳이 있고, 나는 어디에 있더라도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
이다. 따로 놀아줄 사람이 없는 복실이는 동그랗게 몸을 말고
의자 아래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우리
둘은 결국 그레이 톤의 정물화가 되어 간다..
일주일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빨래 통에 또 일주
일치의 옷가지들이 쌓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게 시간
은 빛을 잃었다. 손톱과 발톱을 깎고 빨래를 챙기고 아우들의
그리운 얼굴이 보이면 그것으로 새로운 일주일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놀라운 속도로 빨래들은 쌓여가고, 怪奇(괴기) 영화처
럼 빠르게 손, 발톱은 자란다. 나는 그저 흑백의 눈으로, 참견
하지 않고 시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따위를 끼고 사는 사람답지 않게 하루
종일을 모래 먼지 속에서 움직였다. 뻐근한 피곤과 오랜만에
느끼는 보람 비슷한 통증으로, 몸과 마음은 따로 각자의 입장
으로 분리된다. 내 한 몸도 이렇게 입장이 다르니 세상에는
無限(무한)한 입장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겠지.
한 아우에게서 온 메일을 열어보았다. 낯선 여인의 사진이 첨
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도 그를 고독의 늪에 수시로 잠기게 하는 그 여인일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하는 아련한 비
누향기 같은, 지난 시간 속의 여인이겠지. 그리고 그것은 적중
했다. 문득 나는 그가 가여워 졌다. 그리고 나 역시 가여운 사
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그가 내게 남긴 짧은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떠나간 여자 잊어버리라고,
형은 또 내게 말을 하겠지만
형도 잘 안되면서,
내게 그런 말 쉽게 하지 마오...]
그래, 그런 것은 늘 그렇더구나. 사랑은 불에 데인 자욱 같은
것이 아니다. 어딘가 가지 못할 곳이 생겨나고, 무엇인가 하지
못할 일이 생겨나는, 어린 시절 우리가 지니고 있던 偏食(편
식)으로 먹지 못하는 음식물들의 길고 긴 리스트 같은 것. 여
름날 소나기 개인 저녁 타오르는 노을의 방향으로 걷는 우울
한 골목길, 길게 늘어진 그림자 끝에서 메아리지던 발자국 소
리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심장박동을 조절하지 못하
는 것처럼, 심장에서 생겨난 그리움 역시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득 당신의 사진을 꺼내어 들었다. 얼마만인지도 모른다. 익
숙한, 그러니까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어도 저녁식사 준비
를 하던 당신과의 거리를 언제나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보지 않아도 이미 뇌리에 刻印(각인) 된
아주 친밀한 미소가 들어 있었다. 잊혀진지 천년은 된 사내가
자신의 사진을 때로 꺼내어든다는 것은 여인들에게 어떠한 느
낌일까? 다만 불쾌한 감정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진 속의 당신은 먼지 자욱한 세월 속에서도 어찌나 사랑스
러운 여인인지,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당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당신의 볼 언저리는 손자욱으로 흐려지고 말았다. 아니 그것
이 분명히 손자욱 때문이었는지, 담배연기로 붉어진 눈동자의
탓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비어버린 정어리 통
조림 깡통이 되어 다시 늪의 한가운데, 깊고 푸른 바닥에 가
로누웠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그리움이 언젠가 심장의 박동과 함께 멈
출 것이라는 豫感(예감)하나를 얻었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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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9
여백님의 댓글
-,.-"
아프~!
김명기님의 댓글
네 그때는 정말 아프더군요. 신음 소리도 못낼만큼...
adam님의 댓글
흑흑...
iceberg님의 댓글
마지막 문장이 너무 서글프네요. 말하자면 죽을때까지 그리움에 묻혀산다는거잖아요...
하지만 죽기 전에 그 그리움이 사그라들지 않을까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김명기님의 댓글
그러니 사랑 따위를 함부로 할 일은 아니겠지요.
더구나 진실한 사랑 같은것은...
김명기님의 댓글
adam.... 웃.지.마. ^~^
TheAnd님의 댓글
좋은글이네요.
역시 사랑이랑 불에대인듯 갑작스레 자욱이 남는것이 아니고
가링비에 젖어가듯 처음엔 모르지만 서서히 온통 물속에 잠기듯......
그렇게 온몸에 온마음에 온정신에 스며드는 그런것인것만 같습니다.
- 짧은 생각 -
여백님의 댓글
사랑.. 열정..
왜 난 요것들을 다 잃어버렸을까?
마음속엔 작은 불씨하나 남아 있질 않고..
-,.-"
다~~ 태워버려 더이상 태울 수 있는 게 없지만..
사랑이란 재를 뒤적거리다 봄...
그리움이 먼지되여 펄펄 날리고...
아~~다쉬
뜨거운 사랑의 열병에 걸리고 잡다..
울앤은 지금 사랑의 열병에 걸렸다고 보고잡다고 하눈데..
난 왜 이리 무덤덤한쥐.. 목석이 돼버렸나?
나의 유일한 낙은 낚쉬..
영화 '반지의 제왕' 골룸처럼 달콤하고 즙많은 물고기 잡는 것..
군데 요 골룸처럼 반지(돈, 명예 기타둥둥)에 얽메여
진정한 나의 '보물'을 잃고 있지눈 않눈지...
-,.-"
태우고 잡네...사랑이란거...
진짜러~~
넘힘든하루님의 댓글
사랑과 함께 이별도 우리에겐 필요한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포기하고... 떠나보내며 그 시간만큼 우리는 성숙해가고 깊어가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