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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없어도 충분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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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없어도 충분한 밤

장마는 어느사이엔가 소강상태에 빠져들었다. 비가 내리지도 않고 뜨거운 폭염이 점령한 것도 아니다. 새벽과 저녁엔 가을을 닮은 바람이 불고, 오전 10시경엔 남태평양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숲을 감싼다.

정오부터 숲은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적도의 무풍지대로 빠져든다. 말들도 개들도, 나무들도 잠든다. 세계는 시에스타에 빠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이 갑작스럽고 일시적인 죽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후가 되어 열기가 더해지면 사물은 더위를 피해 그늘로 숨어든다. 숲은 다시 완벽한 진공의 공간이 되어 적막하다. 킁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아도, 뭔가 알 수 없는 냄새들만 희미하게 뒤섞여 대기 중을 떠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어딘가 숨어 밤을 기다린다.

밤은 서늘하고 아늑하다. 언제까지고 잠들지 못하는 길손들의 대화가 작은 촛불처럼 흔들린다. 옅은 구름에 가린 뿌연 조각달만 끝없이 서쪽으로 흘러가고, 별은 볼 수 없다. 소주에 취한 탓은 아니다.   

끈적끈적한 장마처럼, 마음 어지러운 일이 생겨나고 있다. 처음은 아니다. 언제나 무슨 일을 향하여 방향을 정하면 늘 그래왔다. 돌아보면 나는 벌써 7~8년 간 그때그때 누군가의 집요한 방해를 받고 있었다. 아마 운명은 아직 내게 마음을 풀지 않은 모양이다.

언젠가 아우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 삶의 80% 가량을 좌우하는 질투와 시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뭔가 명분에 맞는 이야기를 꾸며대려고 애를 쓰는 것이 보이지만, 누구나 안다. 그러니 말이나 키우며 숲에 숨어사는 것마저도, 내겐 쉽게 허락되지 않은 일들이다.

대개 사람과 사람사이의 다툼이 그러하듯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고, 자신이 뭔가에서 승리했다는 확신이 필요한 것 일게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결국 쓰레기의 산을 먼저 정복한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나중에 몸에 묻은 냄새와 더럽혀진 옷가지를 애써 빨아야 하는 수고. 그 대가는 그 정도 일게다.

그렇다면 나는 더욱 명징 해져야 하겠다. 주변에 아무리 파리가 들끓는다고 해도, 사람은 먹어야 산다. 열에 들뜨고 구토가 난다해도 결국 사람은 먹는다. 그것이 삶이다. 때로 주변이 아무리 시끄럽다고 해도, 나는 그 속에서 뭔가를 배워야 하고 그것을 글로 써야 산다. 그것이 글로써 밥을 먹을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무명 글쟁이의 암울한 삶이다.

초여름의 새벽.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첫 비상을 준비하는 나비처럼, 내 자신이 마침내 가장 일반적인 나의 자아에서 벗어나, 누구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빛나는 세계의 끝을 볼 수 있는 시기를 기대한다.

그 새벽은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걷기만 하면 언젠가는 맞게 된다. 정말로 꾸준히 멈추지 않고 걷기만 한다면! 그리고 내겐 삶의 상처로 남은, 연필로 그린 거칠고 조악하지만 친절한 지도도 있다. 그러니 바쁠 게 뭐 있겠는가? 아무리 바쁘게 열심히 산다고 해도, 누구라도 끝은 결국 무(無)고 죽음이다. 평상 심을 잃지 말자.

새벽에 비가 많이 내렸나 보다. 나는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별이 없어도 충분한 밤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맑은 새벽공기를 마시며 The Brothers Four 의 Green Leaves of Summer 를 듣는다.

여름은 아직 순진한 눈빛으로 문밖에 서성이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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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3

adam님의 댓글

올만이네요. 명기형~ 무지 반갑습니다.
무더운 여름에 지쳐 잠시 주춤하셨나요?
자주 뵈여~ ^-^

여백님의 댓글

"별빛을 살라 먹고...
 별빛을 살라 먹고~~"

별빛이 없어도 충분한 순진한 눈빛의 여룸...
-,.-"

잔잔히 밀려두는 문구....

김명기님의 댓글

조금 복잡한 일들이 있었지. adam은 잘 지냈어? 휴가는 안가나? 바다의 그 거품 속으로 확 빠져 버리고 싶군... ^~^

김명기님의 댓글

아직은 지치지 않은 새 여름 이잖아요? 미련 많은 장마가 빨리 지나가고 매미들의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여백님의 댓글

순진한 눈빛을 가진 여름이 문밖에서 서성이며 묻는다..

"덥냐?"

-,.-"

"넵"

iceberg님의 댓글

오랜만에 올리신 글 잘읽었어요. 한동안 글을 안 올리셔서 휴가를 보내시다보다 했는데...
올 여름은 10년만에 무더위라더니 정말 아찔하게 덥네요. 너무 더워 휴가를 가느니 차차리 에어컨나오는 사무실에서 일하는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시원한 데서 책이나 보며 이 여름을 보내면 그게 바로 휴가일듯...

김명기님의 댓글

요즘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읽고 있습니다. 참 서양인들은 어쩌면 그리도 집요한지... 조금 질리더군요. 나무그늘과 책, 그리고 해먹과 이가 시릴 정도의 미켈롭 한 병. 최고의 휴가겠지요... ^~^

(酎)클래식님의 댓글

명기형님의 글 오랜만에 읽어봅니다.
형님의 글을 읽어보면 조금 지쳐있는 나의 시계가 여유롭게 되는 듯 합니다
그리구 14일 고기는 사들고 술은 들고 갑니다. 카메라를 사면 첫 출사길이 될지 모르겠어요...

adam님의 댓글

바다요? 곤지암 서식지 만큼 시원하고 따뜻한 바다(?)가 또 있을까요? ^-^

김명기님의 댓글

옷! 첫 출사길. 대단한 영광인걸? 17일 국토 대장정을 떠나니까, 그전에 좋은 모임이 되겠네... ^~^

김명기님의 댓글

내 고향이 강릉이잖아. 내겐 늘 심장을 치는 파도가 있다구... 그 푸르고 깊은 동해... ^~^

넘힘든하루님의 댓글

애주가는 아니지만 밤은 분명 술과 많이 닮아있는 듯 합니다.
아주 깊은 취기로 내면에 깊은 심연속으로 빠지게 만드니까요

에티님의 댓글

좋은 정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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