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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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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오전 6시 진공의 숲.

하품 하나를 물고
거실로 갑니다.
커피 포트에 물을 채우고
스위치를 켭니다.

오디오가 깨어 납니다.
CD플레이어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 듯 살아납니다.

Song form a Secret Garden
주변은 물 속으로 가라 앉습니다.
바닥 없는 깊은 해구 아래.

현관을 드나드는 나를 보고
진돌이와 웅이가 펄쩍 펄쩍
뛰어 오릅니다.

특수견 육성 사료.
바가지에 가득 담아
강아지들에게 아침을 줍니다.

나는 웅이를 피해 달아나는
당신을 떠올립니다.

봄 햇살
새하얀 종아리에 매달려
반짝반짝 꼬리 칩니다.

참...
나는 담배 한개피가 모두
재가 되어 사라지는 시간 동안
한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침이
어깨 쯤에 머물러 있습니다.

부엌으로 갑니다.
오늘은 콩나물 국입니다.
모두 어제 저녁에 만들어 둔 것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수트를 꺼내 입으려다,
오늘은 휴일인 것을 알아챕니다.

설거지를 합니다.
이젠 그릇을 깨진 않습니다.
사람은 무엇에나 익숙해 지나 봅니다.
그것이 설령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고독이라고 할지라도.

세탁기에 수건과 셔츠,
세제 한 줌 넣습니다.

아우 이게 뭐예요?
너무 많이 부었어요.

나는 또렷한 그 음성을 듣습니다.
나는 세탁기 속으로 손을 넣어
다시 조금 덜어 냅니다.

하얀 세제 가루가 묻은 손을
바지 가랑이에 함부로 털어냅니다.

나는 다시 한 번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참...

불평하듯 투덜투덜 세탁기가 돌아가고
나는 모르는 체 커피를 마십니다.

Secret Garden은 계속
진공의 숲을 밀도 깊게 채워 줍니다.

창 밖에 아침 찬 바람이 불고,
강아지들은 밥 그릇에 코를 박고
휴일 오전은 시계 속에 못 박혀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나는 생각합니다.
다시는 사랑 따위 하지 말아야지.

가끔 용기를 내어
그 모든 결심을 찬찬히 돌아보면
중심엔 여전히 당신입니다.
나는 참 싫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집어 듭니다.
알랭 드 보통.
첫 장을 펼치다가
이미 읽은 것임을 알아 챕니다.

이건 신기해.
어떻게 이렇게 생각하지?
유럽인들도 사는 건 다 똑 같나봐.
한 번 읽어봐.

당신은 읽어 보았을까?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접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책을 던집니다.

창 밖을 내다 봅니다.
아침이 여전히 어슬렁 거립니다.
식사를 마친 개들
길게 배를 깔고 햇살을 즐깁니다.

며칠 전 잠실역 앞 리어커에서
후리지아를 한 단 집어 들었습니다.
잠시 코에 댔다가
향기가 약하다며 내려 놓았습니다.

폭죽처럼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어제 밤입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건 백화점 쇼 케이스에 넣어 둔
지나치게 미백 된 봄이라는 것을.

잘 지내나요?
당신은 잘 되고 있나요?
내겐 참 쉽지 않습니다.
당신을 잊기란.

세탁기가 알람을 울립니다.
나는 말끔한 수건과 셔츠를 꺼내
가지런히 건조대에 넙니다.

봄 햇살 한 조각.
길게 늘어진 옅은 그림자.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고
창가에 멈추어 섭니다.

눈 앞에
언제 끝날지 모를
길고 긴 휴일 하루가
하염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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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6 08: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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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여백님의 댓글

내가 중딩때 감동 먹은
솔제니치의 '이반제니소비치의 하루'가 떠오른다눈..

하루...관념이 시간..
하루를 펼쳐서 글로 풀었던.. 무려 500여 페이지의 글..
난 하루를 풀면.. 얼마나  풀어낼 수 있을까나..

잠이 깼다.
밥먹었다.
똥쌌다.
일했다.
다시잔다..
끝~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을 찾아보는
하루하루가 됐음 싶다..
안사람 눈동자를 바라보는 단 1초동안에도..
그 숨겨진 수많은 아름다움을 찾아 풀어낼 수 있었음 좋겠다..

단순무식일 풀어내는건..
"이뻐 ~ 이뻐~ 고와 ~고와~ 이뻐 ~ 이뻐~ 고와 ~ 고와~~"
여걸로 500페이지 채울까나?
-,.-"a

김명기님의 댓글

흐흠... 뭐든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

여백님의 댓글

-,.-"a

오늘 나를 담을 수 있는 문구..

나 똥쌌다..
-,.-"

떱떱...

개떡같은 하루일과 됐슴돠~~
실컷일하고 소득없는...

김명기님의 댓글

저런 저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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