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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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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새벽

‘이 여자 굉장해졌군.’

연어 떼처럼 자동차들이 회귀하는 분당 수서간 고속화 도로. 비열한 배신과 음모로부터, 내게 단 하나의 은신처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술에 절여진 채 깃발처럼 출렁이는 가로등. 흐려진 눈앞에, 또 하나의 저녁이 상영 도중 끊어진 영화 필름처럼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웅산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택시 속 라디오.

아마 1997년이 아니었을까? 웅산의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틀림없이 Once in a bluemoon 이라고 기억한다. 무대에서 그녀를 소개한 것은 임재홍 사장인지, 색스폰 주자 이정식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밴드 마스터 최세진이었던가? 어떤 이유에선지 그날은 무척 가족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일요일 저녁이면, Once in a bluemoon에 가는 것이 버릇이었다. 토요일 저녁까지 한 주일을 모조리 탕진한술꾼들은, 대개 일요일 저녁만은 자신들의 서식처에 처박혀 꼼짝도 않았다. 분명히 다가올 한 주가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일주일을 탕진하고, 한 달을 탕진하고, 다가올 미래까지 저당 잡혀 탕진했다.

나 역시 그들 중의 하나. 냉정한 월요일을 두려워하며 떠도는 영혼이 되어 시간 속에 맴돌고 있었다. 나는 완벽한 주정뱅이답게, 자신의 연주를 불처럼 뿜어내던 신인 뮤지션들의 연주 속에도 가끔 잠이 들곤 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일요일 저녁엔 신인 뮤지션들이 오디션을 보거나, 연주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 손님이 적었다. 무엇보다 똑 떨어지는 수트 차림이나 숨 막히는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분위기. 시카고에서 즐겼던 jazz club의 편안한 분위기가 피케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종아리를 슬그머니 감싸고 있었다. 어쩌면 웅산을 처음 본 것은 그런 일요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 것도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없다. 그건 다행한 일이다. 망각의 순 작용.

J&B jet. 치즈 크래커. 커트하지 않은 다비도프 처칠 사이즈. 왼손 끝에 닿던 따스하고 작은 목덜미. 하얗게 빛나는 어깨 위를 액체처럼 흐르던 miumiu의 쉬폰 드레스. 그리고 잘 숙성된 스카치처럼 향기롭던 웅산의 jazz를 따라 팔랑거리는 촛불. 웅산은 음성만큼이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불렀다. 무슨 곡이었지? 제법 궁금하지만 물어볼 사람은 없다. 나 만큼이나 웅산의 노래를 좋아했던 그녀는 이미 지난 천년 속에 남겨졌다. 망각의 역 작용.

“집에선 졸업하면 유학가라고 독촉이에요. 하지만 난 당신을 절대로 떠날 수 없어요. 우리 도망가요.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 쯤 가서 애기를 한 세 명쯤 낳아버린 뒤에 돌아오는 거죠. 흥, 그러면 다들 어쩔 건데?”

커다란, 초롱초롱한 눈망울. 검은 마스카라 속의 새파란 흰자위가 내 얼굴 10Cm 앞에서 말하고 있다. 날카로운 샤넬넘버 19는 내 목을 옭아맨다. 나는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아.’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 믿겨지지 않은 일이라고, 다 말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 순간의 진실에 충실한 그녀의 거짓말을 믿는다. 찬란한 오해. 사랑이라고 믿는 막무가내의 열정. 불투명한 약속보다는 현실의 키스, 델 듯이 뜨거운 호흡.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쨌든 합리와 이성 따위는 젊은 여인의 가슴에 절대로 서식하지 못한다. 그 작은 공간은 열정과 광기로도 비좁다. 파란 네온사인이 푸른 시가 연기 속에 흐려진다. 입가의 근육을 조금 끌어당기는 엷은 미소만으로 대답은 충분하다. 오래된 기억이, 현실에 남은 내게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역시 jazz에 기억을 묻어 두는 것은 위험하다.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고, 고통은 방아쇠만 건드리면 즉시 폭발한다. 웅산(Woongsan)의 앨범을 듣는 늦가을 파란새벽. 지금 웅산의 노래를 듣는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일까?  투명한 기억 속을 담배연기처럼 흔들거리며 떠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생각나지 않은 것. 다행이다.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

www.allbaro.com

[사진 :  웅산의 3집 앨범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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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7

circle님의 댓글

최태진....아마 밴드마스터 최세진선생님이겠죠?ㅎㅎ 드럼 연주하시는..
글 잘읽고 갑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네 그렇습니다. 제가 기억력에 문제가 있나 봅니다.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까이꺼대충님의 댓글

뭐.. 전 첨보는 첨 들어보는 건 같은데...암튼
사진상으로는 멋진분이군혀... 기회되믄 함 들어봐야 겠네염

바이올렛하늘님의 댓글

"웅산"이 누굴까???
매우 궁금집니다.
왠지 분위기가 있군요.

핑크레몬님의 댓글

왠지 분위기 있어보여요  멋지네요...^^

김명기님의 댓글

노래는 더 멋지지요. ^~^

박종홍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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